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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2003년 1월 3일 18시 39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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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25전쟁은 1953년 7월27일 유엔군과 중국군, 그리고 북한군이 정전협정을 맺으면서 일단 막을 내렸다. ‘정전’이란 서로를 향해 총부리를 겨누는 전투행위는 멈췄지만 국제법상으로는 전쟁이 완전히 끝나지 않은 것을 의미한다.
정전협정으로 인해 한반도는 분단과 대립이라는 전쟁 이전상태로 되돌아갔고, 반세기가 흐른 지금도 남북간의 냉전적 틀은 여전히 존재하고 있다. 전쟁이 끝나면 정전협정을 평화협정으로 대체함으로써 대결을 종식시키는 것이 보통이지만 남북한은 그렇지 못했다. 이젠 평화협정이란 말조차도 기억에서 사라져가고 있다.
▽평화협정체결을 위한 역사=평화협정을 맺기 위한 노력은 이미 49년 전에도 시도됐다. 정전협정이 체결된 이듬해인 1954년 4∼6월 제네바에서는 한국의 평화와 통일을 논하기 위한 국제 정치회의가 열렸다. 서방측에서는 유엔군 참전 16개국과 한국이, 공산측에서는 구 소련과 중국, 북한이 참가했다.
이 회의에서 유엔 참전국측은 남북한 토착인구 비례에 의한 유엔 감시하의 자유민주주의적 총선거로 통일정부를 수립하고, 한국문제에 대한 유엔의 권위를 인정해야 한다고 요구했으나 공산측은 남북한 동수로 구성된 전국선거위원회에 의한 동시 총선거 실시와 유엔군 철수를 주장해 결국 합의에 이르지 못했다.
북한은 1974년부터 평화협정을 제의했으나 한결같이 체결당사국은 미국이어야 한다고 주장해 왔다. 남한은 정전협정의 직접 당사자가 아니라는 논리였다.
제성호(諸成鎬) 중앙대 교수는 북한측의 이 같은 주장에 대해 “미국은 동맹국인 남한의 당사자 지위를 배제하기 어렵고, 세계전략 차원에서도 북-미만의 평화협정체결은 불가능하다는 판단에서 북한측의 주장을 일축해 왔다”고 말했다. 미국은 베트남전이 끝난 뒤에는 베트남측과 평화협정을 맺기는 했지만 이는 철수 명분을 만들기 위한 것이었기 때문에 유엔결의에 따라 침략자 응징 차원에서 참전했던 6·25전쟁과는 성격이 다르다는 것이다.
남한은 북한측의 주장에 직접 대응하기보다는 ‘남북 당사자 주의’만 강조해 왔다. 다만 김대중(金大中) 대통령은 2000년 9월 “남북한이 평화체제에 합의하고 미중이 이를 지지, 보장하게 한다”는 이른바 ‘2+2 방안’을 제시한 바 있다.
허문영(許文寧) 통일연구원 연구위원은 “한반도 문제 해결의 중심은 당사자인 남북한이어야 한다”며 “평화협정은 남북이 주체적으로 체결하고 미중이 보장하며 러-일이 협력하는 체제가 바람직하다”고 밝혔다.
미국의 연구기관 헤리티지 재단의 래리 워첼 아시아 담당 국장은 2001년 5월 “미국이 아닌 유엔과 북한이 평화협정을 체결하도록 해야 한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평화협정의 조건과 전망=그 당위성에도 불구하고 평화협정에 대한 성급한 접근은 경계해야 한다고 전문가들은 지적한다.
남북간에 초보적인 수준의 군사적 신뢰구축마저도 확보하지 못해 북방한계선(NLL)에서 무력도발이 빈발하고 한반도 평화를 유지하는 합법적 틀인 정전협정이 수시로 유린되는 현 상황에서 평화협정을 논의하는 것은 시기상조라는 지적이다. 여건이 무르익어야 본격 논의도, 서명도 가능하다는 것이다. 특히 한반도 핵 위기가 고조되는 현 상황에서는 더욱 그렇다.
윤덕민(尹德民) 외교안보연구원 교수는 “평화협정에 서명만 한다고 평화가 오는 것은 아니므로 서명에 앞서 실질적인 평화 구축 과정을 공공히 해야 한다”며 “종이뿐인 평화체제는 오히려 안보를 위협받는 상황을 초래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제 교수는 “남북관계를 규율하는 국제법인 정전협정의 부분적 정상화를 통해 군사적 신뢰구축을 쌓아가는 게 중요하다”며 “평화를 깨면서 평화협정을 만들겠다는 것은 모순”이라고 말했다.
여건이 성숙돼 남북간에 평화협정이 논의될 경우 주한미군 주둔 여부는 물론이고 유엔사령부와 한미연합사령부의 지위도 새롭게 정립해야 한다. 허 연구위원은 “평화협정을 체결하면 한미동맹과 미일동맹의 변화를 수반할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성동기기자 esprit@donga.com
▼평화협정, 4단계 밟아라▼
평화협정이 ‘찢어지기 쉬운 종잇조각’이 되지 않으려면 정치적 군사적 신뢰구축, 군비통제, 군비축소의 단계적인 평화구축 노력이 필수적이다.
1단계 정치적 신뢰구축은 2000년 6월 남북정상회담을 시작으로 이산가족 상봉, 경의선 철도 도로 연결공사로 이어져 왔다. 특히 경의선 연결공사는 비무장지대(DMZ) 내 지뢰제거, 군 직통전화 개설 등 군비통제의 기초를 마련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2단계인 군사적 신뢰구축은 북한이 군사력을 체제유지의 근간으로 삼는 한 논의가 쉽지 않을 전망이다. 군사훈련 병력이동 규제, DMZ 내 현장감시소 공동운영 등 단계별로 문제를 풀어나가는 방안을 고려할 수 있다. 이 단계의 관건은 북한이 재래식무기의 수출입신고에 대한 유엔협약에 가입하고, 대량살상무기(WMD) 개발을 포기하느냐에 달려 있다.
3단계 군비통제는 완전한 군사적 신뢰확보를 통해 평화체제로 이행하기 위해서 대규모, 또는 DMZ 일대 군사훈련을 중지하거나 우발적 전쟁방지 및 평화협정 체결 등이 이뤄져야 한다.
평화정착의 최종 단계인 4단계 군비축소는 공격용 무기의 후방배치, 남북한 병력감축, 주요 무기 상호감시 등을 통해 상호 기습공격 능력을 제거하는 과정이다.
통일연구원 정영태(鄭永泰) 선임연구위원은 “이 모든 과정의 전제조건은 남한을 진지한 대화 상대로 인정하려는 북한의 태도변화가 있어야 한다는 것”이라며 “군축의 경우 한미간의 긴밀한 조율이 필요하고, 이를 대북 협상의 지렛대로 삼는 지혜를 발휘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윤상호기자 ysh1005@donga.com
▼평화협정 '10대 프로세스'▼
한반도의 휴전 상황을 평화체제로 전환하기 위한 국제평화회의가 이미 1954년 4월26일부터 6월15일까지 제네바에서 개최됐다는 사실을 기억하는 사람은 많지 않다. 당시의 주역들이 대부분 세상을 떠났기 때문이다.
당시 한국측은 변영태(卞榮泰) 외무장관을 수석대표로 해서 양유찬(梁裕燦) 주미대사, 임병직(林炳稷) 주유엔대사, 홍진기(洪璡基) 법무차관 등 4명으로 대표단을 구성했다. 필자는 제네바 회의를 담당하는 외무 정무국 제1과장이었다.
회의에서 유엔 참전국측은 기존의 유엔 총회결의가 천명한 2대 원칙을 강조했다. 첫째, 한국 통일은 남북한 토착인구 비례에 의한 유엔 감시하의 자유민주주의적 총선거에 의해 이뤄져야 한다는 것이었다. 둘째, 유엔이 한국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권위와 권능을 가지고 있음을 인정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비록 회의에서 합의가 이뤄지지는 않았지만 회의종료에 앞서 16개 참전국은 평화통일의 2대원칙을 공동성명으로 재확인했다.
위와 같은 사실에 근거해 필자는 다음과 같이 평화협정 10대 프로세스를 제안한다.
①제네바 정치회의가 냉전시대에 개최됐고, 이후 남북정상회담 등 한반도에 많은 변화가 있었지만 그 회의가 천명한 평화통일의 원칙은 아직 살아 있다.
②정전상태인 휴전하에서 비무장지대를 횡단하는 경의선 연결, 금강산육로관광 등은 그 원대한 목적에도 불구하고 무리한 것이다. 평화조약체결이 선결돼야 한다.
③평화조약체결을 위한 국제회의는 유엔이 주최해야 한다. 16개 참전국들은 평화회의 개최를 요구하는 결의안을 유엔 총회에 제출해야 한다. 이 평화회의에는 역사적 이유로 일본을 특별히 초청하는 것도 좋을 것이다.
④평화조약은 남북한간의 안전보장 군비축소 경제협력 민간교류, 공유하천 및 환경문제, 국군포로와 납북자 및 탈북자 문제를 포함한 모든 문제를 다뤄야 한다.
⑤이 조약의 효력은 유엔안전보장이사회 상임이사국이 보장하도록 한다.
⑥평화조약 발효 후 미국과 일본은 북한을 승인하고 수교해야 한다.
⑦한시적으로 비무장지대에 유엔평화유지군을 주둔케 한다.
⑧평화조약 발효 후 남북한은 통일될 때까지 서로 대표부(대사관)를 설치하고 통상적인 외교관계를 유지한다. 단 같은 민족이므로 완전한 독립국가가 아닌 1국 2체제와 같은 특수관계를 유지한다.
⑨남북한이 체결하고 있는 조약은 각자 그대로 유지하며 주한미군은 한국과의 조약하에 계속 주둔할 수 있다.
⑩재외공관은 합의에 따라 서로의 이익을 대표한다.

기고 최운상 교수
■최운상(崔雲祥) 교수는 ▶1925년 황해도 은율군 출생 ▶서울대 법대 졸, 미국 워싱턴 조지타운대 정치학 석사, 미 하버드대 법학 박사 ▶외무부 정무국장 ▶주 유엔 공사 ▶주 인도 이집트 모로코 자메이카 대사 ▶미 하버드대 초빙교수, 일본 도쿄국제대학 교수 ▶경희대학교 평화복지대학원 교수(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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