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는 21세기의 로마제국”…英언론 공통점 분석

  • 입력 2002년 9월 24일 18시 28분


미국의 정치유머사이트에서 조지 W 부시 미 대통령에게 로마시대의 검투사 옷을 입혀놓았다.
미국의 정치유머사이트에서 조지 W 부시 미 대통령에게 로마시대의 검투사 옷을 입혀놓았다.
최근 영국에서 화제가 되고 있는 TV프로그램은 로마제국을 해부한 영국의 채널 4TV의 6부작. 21일 첫 회인 ‘로마:모델제국’이 나가자 시청자들은 로마가 아닌 미국을 떠올렸다. 이 프로그램을 제작한 영국 일간지 가디언의 조너선 프리들랜드 기자는 18일자 가디언에 기고한 글에서 “고대사 전공 학자들도 로마와 미국의 제국적 속성이 유사함에 깜짝 놀랄 정도였다”면서 “미국이 ‘21세기의 로마’라는 인식이 싹트고 있다”고 주장했다.

그는 “그동안 진보진영의 용어였던 미 제국주의를 9·11 테러 이후에는 미 보수진영에서도 받아들이고 오히려 제국으로서의 적극적인 역할과 책임을 강조하는 추세”라고 전했다. 다음은 ‘로마:모델제국’에 나타난 미국과 로마제국의 공통점.

군사력이나 언어(라틴어와 영어)로 세계를 지배하고 있음은 쉽게 알 수 있다. 그러나 로마에서도 9·11 테러와 같은 사태가 일어난 사실은 잘 알려져 있지 않다. 기원전 80년 그리스 왕 미스리다테스는 특별한 날을 정해 그리스 내에 있는 모든 로마인을 살해하도록 지시했다. 그리스 전역에서 로마인 8만명이 목숨을 잃은 사건을 접한 당시 로마인들은 충격을 받았으며 9·11테러 이후 미국 언론이 그랬던 것처럼 똑같은 질문을 던졌다. “왜 우리는 그렇게 미움을 받고 있는가.”

로마 역시 창 끝으로만 세계를 정복한 것은 아니었다. 맥도널드 햄버거와 스타벅스 커피, 디즈니 만화, 코카콜라처럼 로마의 피정복민들은 로마식 긴 겉옷(토가)과 목욕, 중앙난방 시스템을 선호했다.

CNN방송이 미 군사작전을 24시간 중계방송함으로써 미국에 대한 두려움을 전파시키듯 로마시대에는 콜로세움에서의 검투사 경기를 통해 무력에 대한 공포를 심었다.

모든 길은 로마로 통했다. 길이 로마의 해외원정 출구이자 상업적 번영의 통로였다면 미 국방부가 군사적 목적으로 개발한 인터넷은 현대판 로마의 길이다.

미국이 자랑하는 인종적 다양성도 미국만의 특성은 아니다. 로마 역시 세계의 모든 민족을 포용, 다양한 사회를 형성했다. 흑인 미 대통령은 아직 나오지 않았지만 로마에서는 북아프리카 출신의 흑인 셉티미우스 세베루스가 황제가 되기도 했다.

물론 미국은 식민지를 거느리지 않고 있다. 하지만 미국은 40여개국에 군사기지나 기지 사용권을 갖고 있으며 유엔회원국 190개국 중 132개국에 미군을 파병하고 있다. 군사 교두보 확보는 식민지 경영의 현대판이라고 할 수 있다.

로마시대도 식민지통치를 현지인에 위임했다. 영국의 서식스에서는 토지두브누스가 친(親)로마 괴뢰정권의 우두머리가 됐으며 서기 60년 영국의 다른 지역에서는 로마에 항거하는 봉기가 크게 일어났으나 서식스만은 예외였다. 국내의 반미정서를 억누르고 있는 호스니 무바라크 이집트 대통령과 페르베즈 무샤라프 파키스탄 대통령을 떠올리게 한다.

한때는 로마의 후원을 받던 세력이 로마반군으로 성장하는 것도 친미정권이던 사담 후세인 이라크 대통령이나 미 중앙정보국(CIA)으로부터 훈련을 받았던 오사마 빈 라덴이 반미로 돌아선 것과 유사하다.

영국제국에 맞서 독립을 쟁취한 미국인들은 미국을 제국으로 부르는 데 거부감을 갖고 있다. 무엇보다 로마가 멸망했다는 사실이 로마와의 비교를 꺼리게 하는 이유. 반미주의자들은 미국의 이라크 침공이 로마를 멸망에 이르게 한 지나친 힘의 과시와 같다고 주장하고 있다. 하지만 미국이 지금 로마제국의 초기에 와 있는지, 또는 말기에 와 있는지는 미래의 역사학자들만이 말할 수 있을 것이다.

홍은택기자 euntack@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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