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 회계불신 고비 넘겼나…증시 '운명의날' 14일 무사히 지나가

  • 입력 2002년 8월 15일 18시 03분


《8월14일은 미국 증권시장에서 Y2K(연도 인식 오류) 문제가 우려됐던 2000년 1월1일로 비유돼 왔다. 연간 매출 12억달러가 넘는 942개 기업 중 695개 기업들의 최고경영자(CEO)와 최고재무책임자(CFO)는 이날 오후 5시반까지 최근에 발표한 분기 결산보고서와 연례보고서가 정확하다는 것을 확인, 서명한 서약서를 증권거래위원회(SEC)에 제출해야 했다. 회계연도가 다른 247개 기업은 올해 말까지 제출해야 한다.》

14일은 2000년 1월1일처럼 무사히 지나갔다. 기업들이 앞다퉈 워싱턴 DC의 SEC 사무실로 몰려간다는 소식이 전해지자 투자자들의 기업에 대한 신뢰도 살아나 주가가 오후에 급등했다. 첨단기술주 중심의 나스닥종합지수는 5.12%(65.02포인트)나 오른 1,334.30, 다우존스산업평균지수는 3.08%(260.92포인트) 상승한 8,743.31에 각각 장을 마감했다.

이로써 엔론으로부터 시작해 글로벌 크로싱, 월드컴 등에서 대규모 회계부정이 적발되면서 미 기업 전체로 확산되던 불신은 한 고비를 넘긴 것으로 보인다. 이번 조치는 하비 피트 SEC 위원장이 6월27일 기업의 신뢰를 회복하기 위해 내린 명령에 따른 것.

SEC는 미제출 기업에 어떤 불이익을 줄지 정하지 않았다. 그럼에도 기업들은 한국의 대입지원 눈치작전처럼 막판에 서약서를 무더기로 제출했다. 제출하지 않을 경우 기업들은 자사의 CEO마저 보증하지 못하는 회계보고서를 발표한 것으로 돼 투자자들로부터 주식투매라는 가혹한 처벌을 받기 때문.

동시에 회계보고서가 잘못된 것으로 판명나면 CEO가 위증죄로 형사고발되거나 투자자들로부터 집단소송을 당할 우려가 있기 때문에 마감시한에 쫓겨가면서 십단위의 숫자까지 확인, 점검했다.

쓰리콤사의 경우 CEO 브루스 클래핀이 홍콩에 체류 중이어서 홍콩에서 클래핀 CEO의 서명을 공증을 받아 9일 제출했다. 제너럴 일렉트릭(GE)과 코닝, 아마존닷컴같은 기업들은 투자자의 신뢰를 앞당겨 회복하기 위해 지난달 이미 제출했다.

SEC는 막판에 몰려든 서류들을 제대로 처리하지 못해 마감시한 이후에도 서약서 제출 기업 수를 제대로 집계하지 못했다. SEC 대변인은 “과반수가 낸 것 같다”고 말했으나 로이터통신은 기업들의 발표와 SEC 자료를 활용, 대상기업 695개 중 90%가 넘는 629개 기업이 이날 서약서를 제출했다고 보도했다. 마감시한을 5일간 연장할 수 있어 19일까지는 거의 대부분 제출할 것으로 보인다.

이 과정에서 △AOL타임워너는 4900만달러 △미국 2위의 소비자금융회사인 하우스홀드 인터내셔널은 9년간 3억8600만달러 △편의점 회사인 팬트리는 지난 2분기동안 1600만달러의 수익을 각각 부풀렸다고 ‘고백’했으며, △굴지의 광고회사인 인터퍼블릭 그룹은 6850만달러를 잘못된 비용으로 처리했다고 실토했다.

앞으로는 지난달 30일 발효된 기업회계부정방지법에 따라 증시에 상장된 1만5000개의 기업 CEO와 CFO가 분기별로 주요 회계보고서의 정확성을 보증해야 한다. 보고서가 잘못됐을 경우 구속 기소될 수도 있다.

홍은택기자 euntack@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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