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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2002년 8월 11일 18시 36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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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정부의 이라크 침공을 준비하고 있는 가운데 대서양을 사이에 두고 미국과 독일 지식인의 논전이 치열하게 전개되고 있다. 독일 정부는 미국의 이라크 침공계획에 대해 미국의 우방국 중에서 가장 강력히 반대하고 있어 정부와 민간을 아우르는 대립 양상으로 발전하고 있다.
전쟁론에 관한 한 고전적인 이 주제가 수면으로 부상한 것은 2월13일 미 지식인 60명이 미국의 대 테러 전쟁을 지지하는 공개서한에 연대서명하면서부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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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서한에는 그동안 문명의 귀결점을 놓고 대립해 온 하버드대학의 새뮤얼 헌팅턴 교수(‘문명의 충돌’ 저자)와 존스 홉킨스대학 프랜시스 후쿠야마 교수(‘역사의 종언’ 저자)가 나란히 서명했다. 조지 워싱턴대학의 애미타이 에치오니 교수와 상원의원 출신 시러큐스대학 대니얼 모이니헌 교수 등도 참여했다.
이들은 “테러와의 전쟁은 도덕적으로 정당한 것이며, 자유와 인류의 존엄성 수호를 위해 필요한 것”이라고 선언했다.
약 3개월 뒤인 5월2일. 신학자 프리드리히 쇼르레머, 작가 페터 루엠코르프, 크리스토프 하인, 구엔터 발라프 등 독일 지식인 103명은 미국의 아프가니스탄 전쟁과 이를 지지한 미국 지식인들을 규탄하는 공개서한을 발표했다.
이들은 이 서한에서 “9·11 테러 보복을 위해 아프간에서 4000여명을 대량 학살한 것은 어떤 명분으로도 정당화할 수 없다”며 “미국 지식인들이 무고하게 숨진 아프간인에 대해 어떤 언급도 하지 않는 것에 대해 개탄한다”고 밝혔다.
그러자 미국 지식인들이 8일 이번에는 독일 지식인을 직접 겨냥한 공개서한을 발표했다. 이번에는 자유주의적 좌파 지식인으로 분류되는 윌리엄 갤스턴과 마이클 발저도 참여, 모두 66명이 서명했다.
“민간인 피해자 수를 최소화하려는 대 테러전쟁과 민간인 피해자 수를 극대화하려는 테러행위를 동일시하는 독일 지식인의 ‘도덕적 색맹’에 슬픔을 금할 수 없다.”
이들은 “무력의 사용과 관련한 문제에서 도덕적인 구분을 회피하려는 독일 지식인에 대해 실망했다”고 덧붙였다.
함께 서명한 정치학자 진 엘시타인은 “독일 지식인들에게 반미주의가 새로운 민족주의가 되지 않았는지 우려된다”고 말해 독일 지식인들의 전쟁 반대 저변에 반미주의가 깔려 있다는 의혹을 제기했다.
이에 대해 독일 언론들은 “미국 지식인들이 반격을 가해왔다”(주간지 슈피겔), “양국 지식인의 논쟁이 새 국면에 접어들었다”(일간지 프랑크푸르터 룬트샤우)며 재반격에 나섰다.
일간지 프랑크푸르터 알게마이너 차이퉁은 독일 지식인들의 말을 인용해 “인간의 존엄성은 미국인뿐만 아니라 아프간인에게도 적용된다”며 “이처럼 도덕적으로 근본적인 문제에 대해 분명한 입장을 취할 책임이 미국 지식인들에게 면제된 게 아니다”라고 반박했다.
홍은택기자 euntack@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