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A서 '제2의 로드니 킹 사건'발생

  • 입력 2002년 7월 10일 14시 34분


9일 미국의 TV 방송사들은 백인 경찰관이 10대 흑인 장애인 소년을 거칠게 폭행하는 장면을 주요 뉴스로 되풀이해서 방영했다. 이는 로스앤젤레스 교외 잉글우드 시의 한 주유소에서 6일 저녁 발생한 사건을 한 관광객이 비디오 카메라로 찍은 것이다.

화면은 흥분한 표정의 경찰관 제레미 모스가 등 뒤에 수갑을 차고 있는 흑인 소년 도노반 차비스(16)를 번쩍 들어 순찰차 뒷 트렁크에 얼굴을 내팽개친 뒤 주먹으로 얼굴을 때리는 충격적인 광경을 보여줬다. 다른 경찰관 3명은 이들과 한데 뒤섞여 있었지만 폭행엔 직접 가담하지 않았다.

☞MSNBC에서 보도한 동영상 보기

당시 경찰은 유효기간이 지난 번호판을 부착한 채 운전하던 도노반의 아버지를 단속하고 있었으며, 도노반은 주유소 편의점에서 포테이토 칩을 사가지고 나오다 봉변을 당했다고 미 언론은 전했다.

경찰은 도노반이 단속 경찰에 먼저 달려들었다고 주장했으나 도노반의 변호사는 이를 부인, 그가 실제론 비디오 장면보다 더 많은 폭행을 당했다고 상반된 주장을 폈다.

91년 로스앤젤레스에서 발생한 백인 경찰관들의 흑인 로드니 킹 구타사건을 연상시키는 이번 사건은 즉각적으로 인종차별 논란을 촉발했다. 도노반이 발달 장애로 특수학교에 재학중이라는 사실이 여론을 더 악화시켰다.

수십명의 흑인들이 잉글우드 시청에 몰려가 거세게 항의했고 이에 대해 흑인인 루즈벨트 돈 시장은 "중죄를 저지른 모스 경찰관은 파면돼야 마땅하다"며 그를 직위해제했다. 법무부는 연방수사국(FBI)에 진상 조사를 긴급히 지시했다.

미국인들은 로드니 킹 사건이 92년 로스앤젤레스 폭동으로 비화됐던 악몽을 떠올리며 사태의 진전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워싱턴=한기흥 특파원 eligius@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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