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시 “환율은 시장에 따라 움직여야 한다”

  • 입력 2002년 6월 26일 17시 59분


▼美‘弱달러’용인…韓-日-EU ‘희비’▼

조지 W 부시 미국 대통령이 25일 공개적으로 달러화 하락을 방치하겠다는 뜻을 밝혀 달러화가 또다시 하락했다.

캐나다 카나나스키스에서 열리고 있는 G8 정상회담에 참석한 부시 대통령은 이날 “환율은 시장 상황에 따라 움직여야 한다고 본다”며 “달러화는 시장의 판단에 따라 적절한 수준을 찾아갈 것”이라고 말했다.

이에 따라 유로화 대비 달러화는 뉴욕외환시장에서 한때 2년8개월 만에 최저치인 98.11센트까지 떨어졌다가 97.86센트로 마감됐으며 엔화 대비 달러화도 전날보다 0.40엔 떨어진 121.36엔에 거래됐다.

달러화 하락을 바라보는 각국의 시선은 미묘하다. 유럽은 일단 환영하는 입장이고, 한국과 일본은 대외경쟁력 저하를 우려하고 있다. 파이낸셜타임스는 25일 “달러화 하락 속도가 빨라지면 세계 경제가 붕괴될 것”이라며 “적절한 시점에 미 정부가 시장에 개입해야 한다”고 경고했다.

▼“환영”EU “수입가격 하락 인플레 억제”▼

유럽연합(EU)은 달러화 약세를 반기는 분위기다. EU 집행위원회 대변인은 24일 “지난해 이후 유로가 과소평가돼 유로 랜드 경제를 반영하지 못했다”고 말했다.

EU는 무엇보다 수입품 가격 하락에 따라 인플레이션 억제 효과가 크다고 판단하고 있다고 월스트리트저널은 전했다. 골드만삭스는 유로화 가치가 10% 오르면 그해 상품가격 상승을 0.9%포인트 억제하고 다음해에는 0.3%포인트 억제한다고 내다봤다. 인플레이션을 2%로 억제하려는 유럽중앙은행의 목표 달성도 쉬워졌다. 자본투자 유치에도 파란 불이 켜졌다.

그러나 장밋빛 전망만 있는 것은 아니라고 파이낸셜타임스 경제칼럼니스트 마틴 울프는 지적했다. 갈수록 높아지고 있는 EU 경제의 대외의존도를 고려하면 수출전선에 비상이 걸릴 수밖에 없다는 것. EU는 올해 1·4분기 들어 무역은 0.8%포인트 늘어난 반면 역내 소비는 0.7%포인트 줄어드는 등 대외의존도가 심화되고 있다. 전문가들은 유로화 가치가 10% 오르면 국내총생산(GDP)은 0.8%까지 떨어질 것으로 분석하고 있다.

▼“당황”일본 “車-가전 수출경쟁력 상실”▼

달러화 급락에 가장 당황하고 있는 나라는 일본. 장기적인 경기불황으로 가전제품과 자동차 수출로 ‘연명’하고 있는 상황에서 일본 경제의 가격경쟁력 상실은 사실상 ‘재앙’이라고 월스트리트저널은 전했다.

이에 따라 일본 중앙은행은 24일 이달 들어서만 5번째로 외환시장에 개입했다.

시오카와 마사주로(鹽川正十郞) 일본 재무상은 “앞으로도 시장 동향을 주시, 필요에 따라 조치를 취할 것”이라고 말해 추가 개입을 배제하지 않았다. 월가에서는 “일본은 달러 약세를 막는 최후의 지지세력”이라고 인정할 정도다.

그러나 전문가들은 “현 상황에서 달러 약세는 불가항력적”이라고 진단하고 있다.

파이낸셜타임스는 뱅크 오브 아메리카 도쿄지점 외환전략가 마셜 기틀러의 말을 인용해 “일본정부가 엔화 환율을 달러당 130엔대로 억지로 맞추려고 한다면 분명히 실패할 것”이라며 “다만 적극적인 개입 정책으로 달러화 폭락 속도를 어느 정도 완화할 수는 있을 것”이라고 전했다.

▼“우려”한국 “원화절상 속도 엔화보다 빨라”▼

한국 정부는 무엇보다 GDP의 절반에 이르는 수출전선에 먹구름이 끼지 않을까 우려하고 있다고 파이낸셜타임스는 전했다. 한국 정부는 최근 들어 외환시장에 개입하겠다는 의지를 내비치고 있다. 한국은행의 한 외환분석가는 “원화의 절상 속도가 엔화 등 다른 통화보다 훨씬 빠른 데 대해 매우 우려하고 있다”고 말했다.

정부는 엔화에 대해 비공식적으로 10 대 1의 환율을 지키려고 노력하고 있지만 회의적인 시각도 적지 않다. 바클레이 아시아 분석팀장인 데스몬드 서플은 “외자 유입으로 인해 외환수지 흑자가 계속될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HSBC 경제분석가인 마이크 뉴튼은 “최근 수년 동안 한국의 수출전략은 가격경쟁에서 품질경쟁으로 이행하고 있다”며 “원화 가치 상승에 따른 피해는 한국정부의 우려만큼 크지 않을 것”이라고 분석하기도 했다.

곽민영기자 havefu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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