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의 눈]심규선/˝일본 외교 창피하다˝

  • 입력 2002년 5월 14일 18시 47분


가와구치 요리코(川口順子) 일본 외상은 13일 중국 선양(瀋陽) 주재 일본총영사관에서 벌어진 북한주민 망명 미수사건에 대한 기자회견을 하면서 7쪽짜리 보고서를 배포했다.

이 보고서는 중국 경찰의 영사관 진입과 탈북자 연행에 일본 영사의 동의를 얻었다는 중국의 주장을 반박하기 위해 외무성 간부가 현지조사를 통해 만든 보고서였다. 그러나 이 보고서는 오히려 한심하기 짝이 없는 일본 외교관들의 위기대처 능력과 인권의식을 적나라하게 보여주었다.

“(어린아이 등 여자 3명과 몸싸움을 벌일 때) 중국의 무장경찰이 영사관 내에 들어와 있었다는 인식은 없었다.”

“(15분이 지나서야) 처음으로 총영사관 내에 2명이 있을 가능성을 인식하고 급거 총영사관 사무실로 돌아갔다.”

“사태파악을 위해 땅에 떨어진 무장경찰의 모자와 여자의 구두, 볼펜을 주워 여자에게 접근했다.”

“무장경찰에게 ‘비자신청인이라면 사정을 들어보겠다’고 말했다. 그러나 경찰은 ‘비자신청인이 아니다’고 대답했다. (그러나 망명신청자라는 생각은 못했다.)”

일본 외교관들은 그동안 빈번하게 발생했던 북한주민들의 외국대사관 진입사건조차도 모르고 있었던 것일까. 신문만 열심히 봤다고 해도 이렇지는 않았을 것 아닌가.

일본 외교관들의 한심한 대응은 좀처럼 난민을 인정하지 않는 일본정부의 방침과 무관치 않다. 일본은 82년 난민조약을 발효시켰다. 그러나 지난 20년간 일본이 인정한 난민수는 284명에 불과했다. 도쿄신문은 13일 세계 각지의 일본 공관들은 망명자를 포함해 신원불명자는 일절 공관 안으로 들여보내지 않고 있다고 보도했다. 난민문제에 대한 철저한 외면이 결국 이런 부작용을 낳은 셈이다.

일본 언론과 정치권의 질타도 매섭다. 모리 요시로(森喜朗) 전 총리의 한탄이다.

“어린아이가 울면서 (영사관) 땅에 뒹굴고 있으면 먼저 경찰로부터 떼어놓아야 하는 것 아니냐. 일본은 자존심도 없느냐는 (북한주민의) 친척들의 비난이 귀에 따갑고 창피하기만 하다.”

심규선 도쿄특파원 ksshim@donga.com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