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펜 누구인가…튀는 언행 선동가

  • 입력 2002년 4월 22일 18시 04분


인종차별주의자인 장 마리 르펜 국민전선(FN) 당수(73)는 극우 성향과 튀는 언행으로 프랑스 주류 정치권에서 ‘괴물’ 혹은 ‘왕따’ 취급을 받아왔다.

르펜은 “나치의 유대인 학살 캠프는 역사에서 사소한 일” “흑인들이 많은 프랑스 월드컵 대표팀은 진정한 국가대표팀이 아니다” “이슬람 사원 건축을 허가한 시라크와 조스팽은 프랑스의 배신자” 등 인종차별 발언을 서슴지 않았었다.

이 같은 상식 이하 언행에도 불구하고 15% 내외의 고정 지지층이 그의 정치적 자산. 88년과 95년 대선 1차투표에서도 14∼15%의 지지를 얻었다.

이는 이민 반대와 사형제 부활 등 르펜의 극우적 공약이 프랑스 사회의 불만·불안층에 먹혀드는 데다 그의 선동력이 뛰어나기 때문이라는 분석. 이번 대선 유세에서도 르펜은 “프랑스에서 가장 큰 좌파의 지지자는 누구인가”라고 청중에게 물어 “시라크”라는 답변을 유도해내는 수법으로 청중을 휘어잡았다.

상황을 단순화해 군중심리를 자극하는 것도 르펜의 특기. 유세 때마다 “프랑스를 나락으로 내몰고 있는 원인은 단 하나, 이민”이라며 이민 반대에 초점을 모았다. 이 같은 군중 선동 때문에 그는 ‘파시즘의 숭배자’라는 비난을 들어왔다.

르펜은 파리 법과대학을 다니면서 49년부터 3년 동안 극우 학생단체인 ‘라 코르포’의 회장을 맡은 뒤 54년 외인부대에 들어가 인도차이나와 알제리 전쟁에 참전했다. 56년 ‘점원들의 당’을 통해 정치에 투신한 그는 72년 우파 지지자들을 모아 FN을 창당했다.

98년 자신의 부인을 당권 후계자로 삼으려는 기도에 반발해 당내 2인자였던 브뤼노 메그레가 뛰쳐나가 공화국운동연합(MNR)을 창당하자 그의 정치인생도 끝나는 듯했다. FN은 99년 유럽의회 선거에서 지지율이 5.7%로 급락했으며 르펜은 이 선거운동 도중 상대후보에게 주먹질을 한 죄로 기소돼 유럽의원직을 박탈당했다.

그러나 그는 경기침체와 9·11테러, 프랑스 내 범죄율 증가에 따른 불안심리를 등에 업고 재기에 성공했다.

파리〓박제균특파원 phark@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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