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美 유대계 여성 ‘복수-희망의 스토리’ 책 펴내

  • 입력 2002년 4월 11일 17시 22분


“테러에 대한 진정한 복수는 용서와 화해입니다.”

복수심에 불타 10여년간 아버지에게 총격을 가한 팔레스타인 테러범을 추적하다 마침내 테러범과 화해에 이르게 된 과정을 담은 유대계 미국인 여성의 수기가 잔잔한 감동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한때 워싱턴포스트의 기자였던 로라 블루멘펠트(38)가 최근 책으로 펴낸 ‘복수-희망의 스토리’가 그것. LA타임스는 10일 “블루멘펠트씨의 얘기는 최근 격화되고 있는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의 유혈분쟁을 어떻게 해결해야 하는지에 대해 깊은 영감을 주고 있다”며 내용을 상세히 소개했다.

▽복수심에 불타다〓86년 아버지를 따라 예루살렘을 찾은 그는 평생 잊을 수 없는 끔찍한 일을 당했다. 관광 도중 그의 아버지가 팔레스타인인이 쏜 총탄에 머리를 맞은 것. 다행히 생명만은 건질 수 있었다.

이후 그의 머릿속은 온통 ‘반드시 복수하겠다’라는 일념뿐이었다. 히브리어와 아랍어에 능통했던 그는 워싱턴포스트의 기자로 채용돼 98년 이스라엘로 건너갔다.

곧바로 아버지가 총을 맞은 현장부터 찾았다. 이후 사건 현장을 찾아보는 일은 일상사가 돼 버렸다.

▽범인을 찾다〓이스라엘 법원 기록을 뒤져 어렵사리 범인을 찾아냈다. 복수의 칼을 간 지 12년 만의 일이었다. 범인의 이름은 오마르 카티브. 카티브씨는 25년형을 선고받고 복역 중이었다. 그는 피해자의 딸이라는 사실을 숨기고 범인과 가족을 만났다.

막상 범인을 만나 얘기를 듣다 보니 기자로서 범행 동기에도 관심이 갔다. 그러면서도 마음 한 구석엔 복수에 대한 충동이 끊이지 않았다. 번민 끝에 이란의 최고 성직자도 만나고 복수심에 불타는 아랍인들도 만나 많은 얘기를 나눴다. 복수와 관련된 역사적 사례도 공부했다.

그리고는 복수는 동물적인 본능일 뿐이라는 결론을 내렸다. 물리적인 복수는 아무런 의미가 없음도 알게 됐다. 진정한 복수는 테러범으로 하여금 자신의 잘못을 깨닫게 하는 것이었다.

▽범인을 용서하다〓그는 테러범을 용서키로 하고 99년 범인의 가석방을 위한 법원의 청문회에 나갔다. 그는 법정에서 범인을 용서했음을 상기시키며 가석방을 청원했다. “위험하지 않겠느냐”는 판사의 질문에 그는 “우리 가족이 카티브씨를 용서했으니 이젠 이스라엘이 용서할 때”라고 말했다. 그러나 법원은 가석방을 불허했다.

그는 지난달 처음으로 아버지와 함께 테러범의 집을 찾았다. 카티브씨 가족들로부터 뜨거운 환영을 받았다. 카티브씨 가족들은 “이전에 우리는 모든 것을 정치와 이데올로기라는 관점에서만 바라봤다”며 용서를 구했다. 그와 아버지는 그들을 용서했다.

그는 수기를 맺으면서 “중동의 평화를 바란다면 꽉 막힌 정치문제부터 풀려고 할 것이 아니라 나와 비슷한 처지에 있는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가족들이 서로 만나고 이해하도록 하는 일부터 시작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하종대기자 orionha@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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