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의 눈]이영이/일본식 경영의 몰락

  • 입력 2002년 3월 18일 18시 39분


세계 최대 소매유통업체인 미국의 월마트와 일본의 대표적인 슈퍼체인 세이유(西友)가 자본제휴 계획을 발표한 14일 오후.

세이유의 모그룹인 세존그룹 내 주요 계열사 수뇌부는 발칵 뒤집혔다. 주력사 중 하나인 세이유를 월마트가 사실상 매수하기로 합의했는데도 나머지 계열사들은 발표 때까지도 이를 새카맣게 모르고 있었던 것.

지금껏 세이부백화점, 패밀리마트, 크레디 세존 등 주력사 사장들은 계열사 매각 등 주요사항에 대해선 수시로 정보를 교환하는 것이 일반적이었다. 또 주력사 경영진이 한 달에 몇 차례씩 만나 그룹 전체의 사업전략을 논의하는 ‘간사회’도 있다. 일종의 공동운명체처럼 움직여 왔던 것인데 이는 한때 일본 기업을 세계적 수준으로 끌어올린 일본식 경영으로 간주되기도 했다.

그러나 ‘일본식’은 불황과 함께 힘을 잃기 시작했다. 세존그룹 주력사들은 2000년 7월 계열사인 세이유 환경개발이 5500억엔의 부채를 안고 도산한 이후에는 각자 살아남기에 안간힘을 써 왔다. 세이부백화점과 요시노야 패밀리마트가 이토추상사로부터, 세존 생명보험이 제너럴 일렉트릭(GE)으로부터 자본을 끌어들이기도 했다. 세이유의 독자적인 매각 결정도 공동운명체식 경영이 더 이상 통하지 않는다는 판단에서 나온 것.

월마트와의 자본 제휴에 대해서도 일본 유통업계는 커다란 변화가 일어날 것으로 보고 긴장하고 있다. 연간 매출규모 29조엔, 종업원 130만명의 월마트가 세이유의 기존 영업망을 이용해 소비자를 공략할 경우 유통시장에도 지각변동이 일어날 것이란 관측이 나오고 있다.일본 유통업체가 외자를 끌어들인 것도 이번이 처음이다.

그동안 ‘일본식〓세계 최고’라는 자부심을 가져온 일본 기업들이 10년이 넘는 장기불황 속에서 마침내 그 한계를 자각하고 살아남기 위해 몸부림치고 있는 것이다.

이영이 도쿄특파원 yes202@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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