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엔저]내년 한국경제 최대 복병

  • 입력 2001년 12월 18일 18시 52분



엔화가치가 급격히 떨어지며 한국경제에 비상이 걸렸다. 엔-달러 환율은 조만간 달러당 130엔선까지 오를 것이라는 전망이 지배적이다. 일본 정부는 140엔까지 오르는 것도 받아들이겠다는 태도이며 일본경제의 펀더멘털을 제대로 반영할 경우 150엔까지 갈 수 있다는 예측까지 나오는 실정이다. 한국으로서는 엔-달러 환율에 못지않게 원-엔 환율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원-엔 환율이 100엔당 1000원이하로 하락할 경우(엔가치가 떨어질 경우) 대일(對日) 수출경쟁력을 유지할 수 있는 산업은 거의 없다. 1년여의 침체국면에서 겨우 벗어날 기미를 보이던 한국경제가 엔저(低)라는 복병을 만난 셈이다. 새해 최대 화두로 떠오른 엔저에 따른 영향과 대책, 전망 등을 알아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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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기침체의 터널 끝에서 가까스로 기지개를 켜고 있는 한국 경제가 ‘일본 엔화 약세’라는 복병을 만났다.

최근 들어 엔화 가치가 가파르게 떨어지고 있지만(엔-달러 환율 상승) 원화 가치는 국가신용등급의 잇단 상승과 경기회복 기대감이 맞물리면서 오히려 강세(원-달러환율 하락)를 보이고 있다.

수출업계는 이에 따라 “일본 제품에 비해 가격 경쟁력이 떨어져 손해 보고 수출해야 할 실정”이라며 아우성이다. 정부도 ‘엔화 약세, 원화 강세’를 방치할 경우 수출이 크게 줄어 내년 경제운용 계획에 차질을 빚을 것으로 보고 대책 마련에 부심하고 있다.

대외경제정책연구원은 18일 엔-달러 환율이 내년에 130엔선을 넘어 한국의 수출경쟁력을 약화시킬 것이라고 내다봤다.

▽엔화 약세, 내년 경제의 악재로 부상〓엔화 가치가 떨어지면 일본 제품은 미국 등 주요국 시장에서 가격 경쟁력이 높아진다. 이는 전자 자동차 조선 철강 등 일본 상품과 치열하게 경쟁하는 한국 수출품의 가격 매력도가 그만큼 떨어진다는 뜻.

이들 업종은 IT(정보기술) 경기가 침체에 빠진 와중에 한국 수출을 떠받친 버팀목이어서 한국경제에 미치는 타격은 클 수밖에 없다.

산업연구원(KIEP)에 따르면 일본 엔화가치가 10% 떨어지면 한국 수출은 27억달러, 수입은 8억달러 줄어 연간 무역수지 흑자 감소폭이 19억달러에 이르는 것으로 분석됐다.전문가들은 “일본경제 상황을 고려할 때 엔화가치의 하락은 어느 정도 불가피한 측면이 있지만 너무 빨리 큰 폭으로 떨어진다는 점이 문제”라며 결국 한국 정부가 외환시장 개입을 통해 원화가치 하락을 유도할 것으로 보고 있다.

한국경제연구원 허찬국 거시경제실장은 “엔화 약세의 진행 추이에 따라서는 자칫 정부가 세운 내년 경제운용의 기본틀 자체를 수정해야 할 상황이 올 수도 있다”며 “엔화가치가 떨어지면 수출 경쟁력을 유지하기 위해 원화가치 하락을 감수해야 하는데 이 경우 물가상승을 부추길 위험이 크다”고 지적했다. 엔화가치 하락이 ‘한국 수출감소→경상수지 흑자 감소→성장률 하락’과 ‘원화가치 하락→수입물가 상승→인플레’ 등 두 갈래의 악영향을 미칠 수 있어 엔저 변수에 적절히 대응하지 못하면 ‘저성장 고물가’라는 난관에 빠질 수도 있다는 것이다.

▽업계마다 수출차질 비상〓무역협회가 최근 기업들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실시한 결과 국내 기업들은 100엔당 1073원 정도가 돼야 채산성을 맞출 수 있다고 응답했다. 현재 원-엔 재정환율이 100엔당 1010∼1020원인 점을 감안하면 일부 업종에서는 이미 출혈 수출을 감수하고 있다고 무역협회는 설명한다.

자동차 가전 철강 조선 등 업계는 엔화 추이에 촉각을 곤두세우면서 시나리오별 수출대책을 마련하고 있다.

신승관 한국무역협회 조사역은 “전세계 시장에서 한국의 최대 경쟁상대는 아직까지 일본”이라며 “내년 3,4월경부터 본격적인 영향을 미치겠지만 일본과 경합관계에 있는 업체는 불안할 것”이라고 말했다.

현대자동차는 파업 여파에 엔화 약세까지 겹치자 당초 목표로 했던 ‘올해 연간 수출 100만대 달성’이 어려울 것으로 보고 있다. 특히 엔화약세가 장기화할 경우 현대차 전체 수출의 40% 이상을 차지하는 북미시장에서 일본업체들이 할인판매에 나서 판매여건이 더욱 나빠질 것을 걱정하고 있다.

전자업계도 엔화가치가 10% 하락하면 TV VCR 등 주요 가전제품의 시장에서 고객이탈 현상이 본격화할 것으로 예상했다. 삼성전자와 LG전자는 주력 수출품을 중심으로 강도 높은 원가절감에 나설 방침이다.

철강업계는 가격 경쟁력이 높아진 일본 철강업계가 내수침체를 타개하기 위해 내수감소 물량을 수출로 돌리면 20년만에 최저치로 떨어진 철강가격 회복이 더 늦어질 가능성을 염려하고 있다.

다만 엔화표시 차입금이 많은 현대하이스코, 동국제강, 동부제강, 포항제철 등은 엔화약세가 경영상 득이 될 수도 있다는 입장이다.

<박원재기자>parkwj@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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