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 “ABM탈퇴는 큰 실수” , 美 "합의 해놓고…"

  • 입력 2001년 12월 14일 17시 57분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은 13일 “미국의 탄도탄요격미사일(ABM) 협정 탈퇴 결정은 실수”라고 비판했으나 ABM 체제를 대체할 새 안보체제 구축을 미국에 제의하는 등 사실상 ABM 체제 붕괴를 현실로 인정했다.

푸틴 대통령은 이날 TV성명을 통해 “양국이 각각 핵탄두를 1500∼2200기까지 줄이고 미사일방어와 공격용 전략무기 감축과 관련해 이미 맺어진 기존 합의를 문서화하자”고 미국에 제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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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것은 러시아가 강하게 반발할 것이라고 예상해온 점이나 러시아 정치권 일각에서 1, 2단계 전략핵무기감축협정(STARTⅠ·Ⅱ) 탈퇴를 주장하고 있는 분위기에 비춰 이례적으로 차분한 반응으로 분석되고 있다.

이와 관련, 콜린 파월 미 국무장관은 14일 미국의 ABM협정 탈퇴는 과거에는 생각도 할 수 없었던 협력의 일환으로 러시아와 “조율된 것”이라면서 “조지 W 부시 대통령이 자신의 결정을 푸틴 대통령과 사전에 협의했다”고 밝혔다.

파월 장관은 이날 영국의 일간지 데일리 텔레그래프와의 회견에서 이같이 말하고 “일부에서 파국을 예상했던 것과 달리 미국과 러시아간에 군비경쟁이 일어나지 않을 것”이라면서 “사실 러시아가 우리의 탈퇴통보를 듣는 순간 핵무기를 우리 수준으로 감축하기로 동의했다”고 덧붙였다.

러시아의 일간지 이즈베스티야는 이날 ‘계획된 실수’라는 제목의 1면 머리기사에서 “미국의 ABM 협정 탈퇴는 사실상 지난달 텍사스 미-러 정상회담에서 합의된 것으로 알려졌다”면서 “이런 관점에서 미국의 이번 결정은 양국 간의 ‘신 관계’를 상징하게 될 전망”이라고 보도했다.

한편 푸틴 대통령은 미국에 대한 직접적인 대응 대신 다른 핵보유 국가 및 주변국과의 국제 공조로 미국의 일방적인 안보전략을 견제할 움직임을 보였다. 특히 푸틴 대통령은 13일 장쩌민(江澤民) 중국 국가주석과 아탈비하리 바지파이 인도 총리에게 전화를 걸어 “세계의 전략적 안정을 위해 함께 노력하자”고 제의, ‘3각 동맹’의 구축에 시동을 걸었다. 크렘린궁은 “장 주석 등이 미국의 ABM 협정 탈퇴와 관련한 러시아의 입장에 전적으로 공감하고 국제사회의 전략적 안정을 위해 함께 노력할 것을 약속했다”고 밝혔다.

<선대인기자·모스크바〓김기현특파원>kimkih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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