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테러참사 두달 사회학자 3인 인터뷰]"내부결속 굳어져"

  • 입력 2001년 11월 11일 18시 34분


《9·11테러 이후 미국은 그 이전과 확연히 구분되는 다른 사회로 변해가고 있다. ‘테러’라는 적의 출현으로 다양한 인종들이 무지개처럼 힘을 모으면서 다인종 사회의 결속력이 급속히 강화되고 있는 반면, 사회 구성원들의 일상 속에는 안전에 대한 불안감이 깊이 뿌리내리고 있다. 세계평화를 외치면서도 전쟁에 의존하지 않을 수밖에 없는 국가적 좌표에 대한 회의도 깊어지고 있다. 지난 두달간 미국이 겪어 온 사회구조적 변화를 미국 내 저명 사회학자 3명과의 전화인터뷰를 통해 진단해 본다.》

▼마이클 만(UCLA大)▼

“지금 나타나고 있는 미국사회의 결속력 역시 진정한 의미에서의 화합이라기 보다는 두려움과 혼란을 공유하는 미국인들이 서로 의지하는 일시적인 현상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UCLA대학 마이클 만 교수(사회학)는 요즘 미국인들의 정신상태를 ‘도덕적 공황’(모럴 패닉)’으로 정의하면서 “영국인으로서 내가 보는 요즘 미국인들의 모습은 과거부터 테러와의 위험에 노출돼온 유럽인들의 차분한 모습과는 차이가 있다”고 지적했다.

그는 전쟁이 장기화되면 미국 사회는 베트남전 때처럼 전쟁을 지지하는 보수(국수)세력과 이에 반대하는 온건, 진보파들간의 새로운 갈등구조가 형성될 것이라고 예측했다.

그는 또 “테러참사 후 아랍계 미국인들은 적대심의 표적이 되고 있다”면서 “상당수 아랍계들이 경찰, 소방직을 지원하고 군대에 자원 입대하려는 것도 자신들에 대한 사회적 불신을 해소해 보려는 노력”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보안과 안전이 중요시됨에 따라 개인과 시민사회의 자유 침해가 불가피해질 것”으로 내다봤다.

<김정안기자>credo@donga.com

▼신기욱(스탠퍼드大)▼

“91년 걸프전 당시 미국의 생생한 공습장면을 여유롭게 시청하던 미국인들의 모습은 어디서도 찾아볼 수 없습니다.”

신기욱 미국 스탠퍼드대 사회학 교수 겸 한국학선임연구원은 테러 참사 이후 미국의 변화된 모습에 대해 “얼마전 공항에서 잠시 긴 줄에서 벗어나 두리번거리는 한 남자에게 경찰이 다가가 조사하고 주위 사람들도 민감하게 반응하는 것을 보고 미국인들의 심리적 불안감을 실감했다”고 말했다. 상대방을 경계하고 감시하는 분위기가 확산되고 있다는 것.

신 교수는 “안전한 장소로 여겨졌던 대학교에서도 탄저균 소동이 벌어진 적이 있다”고 전하면서 “미국 정부가 ‘조국안보국(Agency for Homeland Security)’을 만들 정도로 미국이 안전하지 않은 곳이라고 미국인들이 절감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 같은 심리상태를 반영해 일반인들 사이에 안녕하십니까(How are you?)’라는 인사말 대신 ‘(돌발사태나 불안감에)잘 대처하십니까(How are you coping?)’라는 인사말이 널리 쓰일 정도라고 그는 전했다.

<김정안기자>credo@donga.com

▼알렉산더(예일大)▼

“무지개 색깔처럼 다양한 인종들이 화합을 통해 빛을 낼 수 있다는 이른바 레인보우(rainbow) 론이 다시 힘을 얻고 있습니다.”

‘현대사회이론의 흐름’ 이란 저서로 국내에도 잘 알려진 미 예일대 사회학과 제프리 알렉산더 교수는 "전쟁과 테러는 비극적인 일이지만 이로 인해 인종과 계층의 차이를 넘어 강력한 결속력(solidarity)이 형성되고 있다" 고 말했다.

그는 특히 "흑백 갈등이 현저히 사라지고 아시아, 라틴계 등이 더 적극적으로 이번 전쟁을 지지하고 있다" 면서 "미국에선 아랍계 미국인 대 기타 다양한 인종들간의 대립,갈등의 모습도 나타나고 있다" 고 설명했다.

알렉산더 교수는 또 "60년대 운동세력이자 미국의 베트남 참전에 강하게 반대했던 상당수의 진보세력들도 이번 전쟁의 정당성을 강하게 주장하고 있다" 고 전했다.

그는 또 "역경을 딛고 부를 쌓아 존경을 받는 뉴 리치 (new rich) 대신 소방관과 경찰관들이 새로운 '미국의 영웅' 으로 떠오르고 있으며 이들에 대한 사회적 인식도 매우 높아지고 있다" 고 말했다.

<김정안기자>credo@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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