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탈레반정권 고립 양면작전]美 식량-라디오 투하 심리전

  • 입력 2001년 10월 9일 18시 39분


난민용 구호식량
난민용 구호식량
“아프가니스탄 국민은 미국의 관대함을 알게 될 것이다.”(조지 W 부시 미국 대통령)

“수백만명에 달하는 아프간 난민 구제는 동맹국의 군사 협력만큼 시급하다.”(토니 블레어 영국 총리)

부시 대통령과 블레어 총리는 7일 아프가니스탄 공습 직후의 개전(開戰) 연설에서 이번 전쟁이 ‘인도주의를 동반한 전쟁(Humanitarian War)’이 될 것임을 선언했다. 군사심리 전문가들은 이 같은 두 정상의 발언이 또 하나의 전쟁인 심리전의 개시 신호라고 말한다.

미국은 8일 새벽 아프간 난민 거주지에 1일분 배급식(HDR) 3만7500개를 투하했다. 대형 C17 수송기 두 대가 살포한 배급식(레이션)은 개당 900g짜리(5200원 상당)로 미국 국기인 성조기가 들어 있으며 이슬람 신도들의 식생활을 고려해 동물성 음식은 포함시키지 않았다는 것.

노란색의 이중 플라스틱 용기 표면에는 영어 스페인어 프랑스어로 “미국 국민이 주는 식량 선물입니다”라는 문구와 함께 한 남자가 숟가락을 입으로 가져가는 그림이 그려져 있다.

미국은 아프가니스탄 국경 인근에 방송 장치를 갖춘 EC130 항공기를 밤낮으로 띄워 놓고 대민(對民) 방송에도 착수할 예정이다. 난민들이 미국의 선무(宣撫) 방송을 들을 수 있도록 라디오도 투하할 계획이다.

이에 그치지 않고 아프가니스탄에 문맹자가 많은 점을 감안해 그림과 기호가 많이 들어간 전단(leaflet)을 살포할 방침이다. 미군은 걸프전 때는 “이 지역이 24시간 안에 폭격 당한다”는 전단을 살포해 이라크군을 공포의 도가니로 몰아 넣는 심리전을 구사하기도 했다.

이에 앞서 부시 대통령은 4일 아프간 난민들에게 3억2000만달러(약 4160억원) 상당의 식량 의약품 월동용품 등을 제공할 것이라고 발표했다.

그러나 난민구호를 명분으로 한 미국의 식량공수에 대해 대부분의 유럽 언론과 구호단체 들은 실효성 없는 비현실적인 방안이라며 비판적인 입장을 취하고 있다.

영국의 파이낸셜타임스는 윌리엄 쇼크로스의 칼럼을 통해 “미국이 떨어뜨리는 식량은 상징(Token)에 불과한 수준”이라며 “기아에 허덕이는 아프가니스탄 난민들을 구하기 위해선 매달 5만t의 식량을 떨어뜨려야 하는데 이는 사실상 불가능하다”고 지적했다.

BBC방송도 구호단체인 ‘크리스천 원조’ 관계자의 말을 인용해 공습 개시로 파키스탄에 있는 구호단체들이 겨울이 오기 전에 아프가니스탄으로 들어갈 수 없게 됐다고 전했다. ‘국경 없는 의사회’도 9일 성명을 내 “한 손으로 총을 쏘면서 다른 손으로는 약을 주는 것이 무슨 효과가 있겠는가”라고 비판했다.

<파리〓박제균특파원>phark@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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