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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2001년 10월 5일 00시 05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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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날 추락 여객기 인근을 비행하고 있던 아르메니아항공 여객기의 기장 등이 공중폭발을 목격했다고 증언함에 따라 기체결함 등 사고 보다는 폭발물 폭발에 의한 추락이 힘을 얻고 있는 것이다. 러시아 비상대책부 관리들도 폭발 소식이 전해진 지 얼마 지나지 않아 “테러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고 발언하기 시작했다.
폭발한 여객기 항공사가 러시아 소속이라는 점, 그리고 여객기의 출발지가 이스라엘이며 승객의 전부 또는 대다수가 이스라엘인이라는 점도 이번 폭발이 테러에 의한 것이라는 추정을 가능하게 하는 요인이다.
러시아의 경우 하루 전인 3일 러시아 내 이슬람교 최고 지도자인 탈가트 타주딘이 이슬람 극단주의자들에 의한 테러 가능성을 경고하는 등 다종교 다민족 다인종 국가로서 항상 테러 위협에 노출돼 있다. 이슬람권인 체첸과의 내전이 테러를 부르는 요인이며 게다가 최근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이 미국 주도의 대(對) 테러 전쟁에 대한 지원을 약속, 러시아 내 이슬람 극단주의자들을 자극했다. 물론 러시아 밖의 이슬람 극단주의자들도 러시아에 대해 적개심을 품을 수도 있다. 푸틴 대통령은 특히 1일 북대서양조약기구(NATO) 본부가 있는 벨기에 브뤼셀을 방문해 미국 특사로부터 오사마 빈 라덴이 미국을 상대로 한 테러에 연루된 증거를 직접 청취한 후 테러 조직에 대한 자금줄 차단, 테러 수사 지원, 구소련 소속 중앙아시아 국가들에 대한 대미 협력 권고 등의 노력을 할 것이라고 선언했다.
이에 따라 이날 폭발이 테러에 의한 것일 경우 배후에는 체첸 출신이 있을 것이라고 전문가들은 보고 있다. 체첸 출신 테러리스트들은 올 3월15일에도 터키 이스탄불 공항에서 모스크바행 Tu-154 여객기를 공중 납치해 러시아군의 체첸 공격을 중단할 것과 여객기가 아프가니스탄으로 갈 수 있도록 해 줄 것을 요구한 바 있다. 러시아 정부는 최근 몇 년간 모스크바 등에서 발생한 여러 차례의 폭발 테러도 체첸인들의 소행으로 보고 있다. 이와 함께 빈 라덴의 테러 조직인 알 카이다와 깊숙이 연계돼 있으며 9월11일 미국 동시다발 테러에도 개입한 것으로 알려진 우즈베키스탄의 ‘이슬람 운동’이 개입했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고 전문가들은 추정하고 있다.
알 카이다가 직접 뛰어들었을 가능성도 있다. 미국 연방수사국(FBI) 등은 빈 라덴이 2∼3건의 추가 테러를 준비 중이라는 증거를 테러 이후 체포된 용의자 등의 진술을 통해 입수했다고 밝힌 바 있다. 이들은 도널드 럼스펠드 미 국방장관이 중동 및 중앙아시아 순방을 마치고 귀국하면 미국이 아프가니스탄에 대해 공격을 개시할 것으로 예상됨에 따라 ‘사전 경고용’ 테러를 저질렀을 가능성이 있다는 것.
전문가들은 또 이스라엘을 상대로 한 테러 가능성에도 무게를 두고 있다. 미국이 테러와의 전쟁을 벌이고 있는 상대가 이슬람 국가인 아프가니스탄과 이슬람교도인 빈 라덴이기 때문에 자연히 이슬람의 적인 이스라엘이 보복대상이 된다는 것이다.
이스라엘에는 전체 인구의 19%에 해당하는 팔레스타인인들이 살고 있으며 이들은 지난해 9월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간의 분쟁이 발생하자 이스라엘 국적에 대해 극도로 혐오감을 가져왔다. 이들은 지난해 10월 이스라엘 내에서 시위를 벌이다가 13명이 숨지기도 했으며 8월에는 팔레스타인 출신 이스라엘인인 모하메드 흐베이시가 이스라엘 나하리야에서 자살 폭탄 테러를 하는 등 유혈투쟁을 계속하고 있다.
전문가들은 최근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간의 분쟁 종식 움직임에도 불구하고 이스라엘군에 의한 팔레스타인인 희생자가 발생하는 상황 등에 불만을 품은 팔레스타인계 이슬람 극단주의 조직이 보복에 나섰을 가능성도 있다고 보고 있다.
그러나 이런 추정에도 불구하고 정확한 폭발 원인이 곧바로 밝혀질 것 같지는 않다. 비행기가 산산조각나 흑해의 깊은 바닷속에 가라앉았기 때문에 블랙박스 회수는 물론 설사 테러범이 타고 있었다 해도 시신을 찾아내기가 쉽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권기태기자>kkt@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