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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2001년 10월 4일 18시 35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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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 25일 북부동맹 수도인 파이자바드의 공항에 도착하니 공항 시설물 대신 모래 바람이 휘날리는 활주로 주변 곳곳에 널린 탱크와 야포의 잔해가 가장 먼저 눈에 들어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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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동차로 파이자바드 시내에 들어서니 한 사람이 겨우 지나갈 수 있을 정도로 좁은 황톳길과 짐을 실은 노새를 몰고 가는 사람들, 돌과 흙으로 엉성하게 만든 토굴 같은 집들이 옹기종기 늘어선 거리가 전부였다. 길옆을 따라 흐르는 개울에서는 물 마시는 가축들 틈에서 주민들이 몸을 씻거나 빨래를 하고 있었다.
언덕에 올라가 시내(?)를 내려보니 현대식 건물이라고는 커다란 접시 안테나가 달린 2층짜리 하얀 벽돌 건물 한 채밖에 없었다. 북부동맹 부르하누딘 라바니 대통령의 관저였다. 이곳에 50만명이 살고 있다는 북부동맹 사람들의 말을 믿을 수가 없었다. 하긴 방 하나에 10여명이 살기도 한다니 건물의 크기나 숫자로 주민을 계산하는 방식이 맞을 리가 없다.
파이자바드에서 북부동맹군의 근거지인 판지시르 지역으로 자동차로 이동하며 목격한 아프간인의 삶은 더욱 처참했다.
7일 동안 아프가니스탄을 누비며 본 포장도로는 카불 북쪽의 바그람 공항 근처에서 본 50여m의 아스팔트길이 유일했다. 먼지 때문에 숨도 제대로 쉴 수 없는 길에서 노새에 소금 비누 등 생필품을 가득 싣고 가는 상인들과 마주쳤다. 이들은 이웃 파키스탄과 이란 그리고 탈레반이 점령하고 있는 카불 등에서 물건을 가지고 와 바자르(시장)에 내다 판다.
바자르가 있는 바하라크에 들러보니 주로 조잡한 중국 물건 사이에 어디서 가지고 왔는지 한국산 ‘마일드88’ 담배도 보였다. 스웨덴계 병원에서 12년 간 일하다 전쟁통에 병원이 철수하자 시장 입구에 개인병원을 낸 의사 모하마드 아니프(38)는 의료 수준과 보건 상태를 묻자 “약이 없어 죽어 가는 사람들을 볼 때 가장 괴롭다”는 말로 대답을 대신했다.
전란의 가장 큰 피해자는 어린이들. 기자가 마을을 지날 때마다 누더기 같은 옷을 입은 아이들이 몰려들어 자동차와 카메라를 신기한 듯 쳐다봤다. 7, 8세 정도의 아이들이 땔감을 실은 노새나 양을 몰고 가는 모습은 어디서나 흔히 볼 수 있었다.
판지시르의 북부동맹군 초소에서 2명의 15세짜리 소년병과 마주쳤다. 12세 때 군대에 들어왔다는 이들의 손에는 러시아제 칼라슈니코프 소총이 쥐어져 있었다.
난민 캠프를 보고 싶다는 부탁에 북부동맹의 한 관리는 “무슨 난민 말인가? 우리는 20년째 전 국민이 난민처럼 살고 있다”고 말했다.
그러나 북부동맹 치하에 살고 있는 아프간인들은 대부분 탈레반에 대한 반감을 드러내며미국의 탈레반 공격을 담담하게 받아들였다. 바하라크의 서점 주인 아소므딘 다와트(40)는 “미국이 우리나라를 공격한다는데 기분이 좋을 리가 있겠나. 하지만 우리는 이제 전쟁이 지겹다. 탈레반이 있으면 전쟁은 계속된다. 차라리 이번을 마지막으로 전쟁이 끝났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파이자바드·바하라크(아프가니스탄)〓김기현특파원>kimkihy@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