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 테러 대참사]이륙직후 "기수 돌려라"…곧장 돌진

  • 입력 2001년 9월 12일 18시 32분


전 세계를 경악시킨 미국에 대한 동시다발테러는 어떻게 발생했을까. 네 군데에서 거의 비슷한 시각에 여객기가 납치되면서 시작된 이번 사건의 전말을 목격자 증언과 외신 보도 등을 토대로 재구성한다.

11일 오전 8시경(현지시간) 미국 보스턴 로건 국제공항. 로스앤젤레스행 아메리칸항공(AA) 소속 767 여객기가 굉음을 내며 날아올랐다.

비행기가 이륙한 지 15분가량이 지났을까. 아랍계로 보이는 승객 세 명이 자리에서 일어섰다. 수상한 낌새를 챈 여자 승무원 한 명이 막아서다 이들이 휘두른 흉기에 찔려 쓰러졌다. 이들은 승무원들을 위협해 조종실에 진입해 순식간에 비행기를 장악했다.

이 때 한 젊은 승객이 휴대전화로 마침 샌프란시스코에 있는 아버지에게 전화를 걸고 있었다. “우리는 납치당했어요. 범인은 3명이고 폭탄을 갖고 있어요. 승객들도 죽였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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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종실을 장악한 테러범들은 조종사에게 “기수를 뉴욕으로 돌려라”고 위협했다.조종사가 조종실 내 마이크를 켜 둬 테러범들이 말하는 소리를 지상의 항공관제사들은 똑똑히 들을 수 있었다. “우리는 더 많은 비행기를 납치했다. 바보짓 하지 마라. 너는 다치지 않을 것이다.” 오전 8시40분경. 조종사를 위협하고 있던 테러범의 눈에 뉴욕의 ‘자유의 여신상’이 들어왔다. 테러범은 기다렸다는 듯이 조종사를 살해하고 직접 조종간을 잡았다. 잠시 후 92명을 태운 여객기는 마치 영화의 한 장면처럼 110층짜리 세계무역센터의 북쪽 건물을 들이받고 폭발했다.

AA 소속 여객기가 테러범에 의해 장악됐을 무렵인 오전 8시14분, 보스턴 로건 국제공항에서 또 한 대의 767 여객기가 로스앤젤레스를 향해 이륙했다. 오전 9시5분, 승객과 승무원 등 65명을 태운 유나이티드항공(UA) 소속의 이 여객기는 테러범들에 의해 장악돼 빠른 속도로 세계무역센터 남쪽 건물을 들이받았다. 두 건물은 각각 오전 9시50분과 10시29분 차례로 무너져 잿더미로 변했다.

영화에나 나올 법한 기습 테러로 미국은 물론 세계의 눈과 귀가 뉴욕 맨해튼으로 쏠린 오전 9시경, 워싱턴 DC의 덜레스 국제공항.

승객 등 64명을 태운 로스앤젤레스행 AA사 소속 보잉 757 여객기에 탑승한 또 다른 테러범 일당이 초조하게 이륙을 기다리고 있었다. 이들의 목표는 국방부 청사.

이륙 후 조종실을 장악한 테러범이 공격 지점을 탐색하고 있는 사이 객실에서는 다른 테러범이 승객과 승무원을 한편으로 몰아넣고 있었다. 어수선한 틈을 타 한 여성승객이 재빨리 휴대전화를 꺼내들었다. 시어도어 올슨 미 법무차관의 부인이자 힐러리 클린턴 상원의원의 전기 작가이기도 한 바버라 올슨이었다.

“비행기가 납치됐어요. 테러범들은 칼로 무장했어요.”

부인의 전화를 받은 올슨 차관은 곧바로 법무부 비행기납치통제센터에 연락한 뒤 부인에게 조종사와 연락을 취하는 것이 가능하냐고 물었다.

“조종사에게 뭐라고 해야 하나요?” 바버라의 안타까운 외마디가 끝나기도 전에 여객기는 국방부 청사 서쪽을 들이받고 폭발했다. 오전 9시40분이었다.

오전 9시58분경, 펜실베이니아주 웨스모어랜드 카운티 인근의 911 응급전화센터의 전화벨이 울렸다. 뉴저지주 뉴어크 국제공항에서 오전 8시경 샌프란시스코로 출발했다가 실종된 UA 소속 767 여객기의 탑승자 45명 가운데 한 명이 화장실에 숨어 비행기가 납치됐음을 알려온 것이다.

“비행기가 내려가고 있어요. 폭발소리가 들렸고 기체에서 연기가 나요.”

여객기는 잠시 후 피츠버그시 남동쪽 130㎞에 있는 서머싯 카운티 공항 북쪽에 추락해 폭발했다.

외신은 이 여객기가 조지 W 부시 대통령의 별장인 캠프 데이비드를 공격목표로 하고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고 보도했다. 일부에서는 이 여객기가 테러 공격을 감행하기 전에 미 당국이 격추시켰을 것이라는 추측이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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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성철기자>sungchul@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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