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건 직후 중동 지역의 무장단체들이 일제히 관련 사실을 부인하고 나서 현재로선 배후가 누구인지를 추정하기는 힘들다.
하지만 미 국방부와 군사 전문가들은 이번 테러의 엄청난 규모와 치밀함에 비추어 볼 때 사우디아라비아 출신의 국제 테러리스트 오사마 빈 라덴(48)을 제일 유력한 배후 인물로 추정하고 있다. 그를 제외하면 이처럼 연속적인 대형 테러를 감행할 수 있는 인물이나 단체가 현재 지구상에는 없다는 분석이 지배적이기 때문.
미 국무부는 6월 빈 라덴이 미국과 이스라엘에 대한 테러를 계획하고 있다는 정보를 입수하고 그의 움직임을 모니터해온 것으로 알려졌다. 빈 라덴은 최근에도 세계 각국의 미 대사관을 공격하려는 계획을 세웠다가 포기했다는 것이다.
그는 1993년 뉴욕 세계무역센터 폭발 사건을 비롯해 98년 케냐 및 탄자니아 미 대사관 폭탄테러, 작년 10월 예멘에서 발생한 미 구축함 콜호 폭탄 테러 등 수많은 테러의 배후인물로 지목돼 왔다.
런던의 항공전문가 크리스 예이츠는 11일 “이번 공격을 주도한 테러 단체는 최상급이다. 극소수의 테러 단체들만이 이 같은 공격을 수행할 능력이 있다”며 “빈 라덴을 가장 먼저 의심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그러나 사건 직후 빈 라덴측은 자신들의 범행이 아니라고 부인했다고 CNN방송은 전했다. 빈 라덴에게 은신처를 제공해온 아프가니스탄의 탈레반 정부도 이날 긴급 기자회견을 갖고 “아프가니스탄은 이번 테러와 관련이 없다”고 발표했다.
최근 중동 분쟁이 격화되면서 미국과 이스라엘에 대해 큰 반감을 갖게 된 팔레스타인의 무장테러 단체도 의심받고 있다. 자살폭탄 테러로 유명한 무장투쟁 단체 지하드나 하마스도 공격의 배후로 거론된다. 그러나 이들도 일단 자신들과는 관련이 없다고 부인하고 나섰다.
다만 지하드의 한 고위 관계자가 “미국에서 발발한 동시 테러사건은 미국의 최근 중동 정책이 빚은 결과”라고 말해 어떤 형태로든 아랍계 무장세력이 개입했을 가능성이 있음을 시사했다.
<이종훈기자>taylor55@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