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 구제역 도축서 기적생존 송아지…당국 도살정책 완화

  • 입력 2001년 4월 27일 18시 38분


농장주의 아들 로스군이 피닉스를 껴안고 있다
농장주의 아들 로스군이
피닉스를 껴안고 있다
암송아지 ‘피닉스’가 영국 정부가 구제역 확산을 막기 위해 무차별적으로 실시해온 도살 정책을 바꿔 놓았다.

영국 정부는 26일 최근까지 하루에 40건의 발생빈도를 보이던 구제역이 15건으로 줄었다며 구제역 발생지 인근 농장 가축에 대해서까지 발병에 관계없이 도살해온 정책을 완화하겠다고 발표했다.

정책 변화에 가장 큰 영향을 준 것은 영국 데번주 액스민스터 인근 클레어런스 농장의 암송아지 ‘피닉스’다. 4월13일의 금요일에 태어난 이 송아지는 구제역에 걸리지 않았지만 불길한 출생일 때문인지 5일뒤 같은 농장 70마리의 소, 47마리의 양과 함께 구제역 확산 방지를 위한 독(毒)주사를 맞았다. 그러나 23일 농장 소독을 위해 방문한 방역요원들은 이 송아지가 숨진 어미소 곁에 기적적으로 살아있는 것을 발견했다. 이 송아지에게 독 주사를 놓는 것을 빠뜨렸을 가능성이 있다고 판단한 방역요원들이 다시 도살하려고 했지만 주인 프레드 보아드가 눈물을 흘리며 가로막았다. 보아드는 몰려든 기자들 앞에서 “이 송아지를 불사조 ‘피닉스’라고 이름지었다”며 “어미 없이 젖병을 물고 있는 이 어린 것을 누가 죽일 수 있느냐”며 호소했다.

초롱초롱한 눈망울에 티없이 맑아보이는 피닉스의 얼굴 사진이 모든 신문 1면에 실렸다. 많은 영국인들이 이를 가슴아프게 여겼으며 의회에서도 “정말 죽여야 하느냐”는 논의가 분분했다.

피닉스 도살을 강행할 방침이던 영국 정부도 비판 여론이 들끓자 결국 토니 블레어 총리가 ‘피닉스’를 살리기로 결단을 내렸다. 영국 언론들은 ‘피닉스’는 구제역 파동으로 실의에 젖어있던 영국 농민들에게 한줄기 빛을 던졌다고 전했다.

<권기태기자>kkt@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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