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로셰비치 체포 안팎]美지원중단 압력에 '단죄' 선택

  • 입력 2001년 4월 1일 18시 37분


▼밀로셰비치 체포 안팎▼

유고정부가 1일 슬로보단 밀로셰비치 전유고연방 대통령(60)을 전격 체포한 것은 일단 국제사회의 전범처리 압력에 무릎을 꿇은 것이다.

미국과 유럽 각국은 1999년 코소보 내 ‘인종청소’와 관련해 전범으로 기소된 그를 헤이그 유고전범재판소에 세워야 한다며 보이슬라브 코슈투니차 대통령을 압박해 왔다. 코슈투니차 대통령은 국내 밀로셰비치 전대통령 지지세력의 반발을 의식해 국내법으로만 사법처리하겠다고 맞서왔다. 그러나 미국이 경제지원 중단을 들먹이며 압박을 가하자 결국 전격 체포하게 된 것. 이런 정황으로 미루어 유고정부는 먼저 권력남용 횡령 등 부패혐의로 기소한 뒤 국내외 상황을 저울질해 보다가 밀로셰비치 전대통령을 국제법정에 넘길 가능성도 있다.

북대서양조약기구(NATO)군의 78일간에 걸친 공습으로 피폐해진 경제를 살리기 위해서는 경제지원이 절실한데 만일 자금지원이 없으면 자칫 정권 기반마저 위태로워질 수도 있다.

사실 코슈투니차 대통령은 올 들어 밀로셰비치 전대통령을 체포하기 위한 준비를 해왔다. 2월에는 라데 마르코비치 전 비밀경찰 총수 등 밀로셰비치 전대통령 측근을 잇따라 체포했으며 세르비아 의회도 관련법률 개정을 통해 그를 국제전범재판소에 넘기려는 움직임을 보여왔다. 최근 여론조사 결과도 밀로셰비치 전대통령을 국제법정에 세워야 한다는 의견이 56%에 이른 것도 체포 결정에 힘을 실어주었다.

<윤양섭기자>lailai@donga.com

▼유고법원 사법처리 전망▼

체포된 슬로보단 밀로셰비치 전 유고 대통령은 국제전범 혐의와는 별도로 유고 사법당국에 의해 암살 미수, 부정부패, 공문서 위조, 납치 교사, 권력 남용 등 다섯 가지 혐의로 국내에서 재판을 받게 될 전망이다.

첫번째 혐의는 99년 야당 지도자인 부크 드라스코비치를 암살하려 한 혐의. 2월 체포된 라데 마르코비치 전비밀경찰국장은 밀로셰비치의 지시에 따라 사건이 이루어졌다고 증언했다.

두번째 혐의는 부정부패. 지난해 9월부터 11월 사이 스위스로 금 173㎏을 몰래 빼낸 다음 처분하고 매각 대금 110만달러(약 14억원)는 그리스와 키프로스 은행에 넣어 둔 것으로 알려졌다.

세번째 혐의는 공문서 위조. 정부의 고급 빌라를 사유재산으로 신고하며 문서를 위조한 것. 문서위조 혐의가 인정되면 최고 3년의 징역을 선고받을 수 있다.

네번째는 유괴 혐의. 밀로셰비치에 대해 비판적이던 이반 스탐볼리치 전 유고 대통령이 지난해 8월 조깅 중 납치당한 사건의 배후로 지목받고 있다.

다섯번째 혐의는 권력 남용. 지난해 9월 대선때 패배가 확실시되자 연방선관위에 압력을 넣어 경쟁자였던 보이슬라브 코슈투니차 후보(현 대통령)가 50% 득표에 실패한 것처럼 조작했다는 것이다. 밀로셰비치가 철권통치를 하며 저지른 비행은 수없이 많지만 유고 경찰은 우선 유죄를 입증하기 쉬운 이 다섯 가지 혐의를 이유로 체포한 것으로 보인다.

<백경학기자>stern100@donga.com

▼인종청소 지휘자 '도살자'▼

▽밀로셰비치는 누구=그는 과거 세르비아 제국의 영광을 되찾자는 대(大)세르비아 를 기치로 89년 세르비아 대통령으로 당선돼 한때 국민적 영웅으로 추앙받던 지도자. 그러나 이후 10여년 간의 통치기간 동안 발칸반도를 살육과 증오의 땅으로 만든 장본인.

그는 90년대초 6개 공화국으로 구성된 유고연방이 여러나라로 쪼개질 때 크로아티아와 보스니아-헤르체고비나 등지에서 세르비아 민족주의 반군들을 지원했다. 이 때부터 그는 발칸의 도살자 라는 별명을 얻었고 99년 코소보내 알바니아계 주민들을 대량학살했다. 이같은 인종청소 혐의로 같은해 6월 전범으로 기소됐다. 지난해 9월 유고 대선에서 코슈투니차에게 패하면서 나락의 길로 빠져들었다.

<윤양섭기자>lailai@donga.com

▼체포연행 과정-세계 반응▼

밀로셰비치 전 유고 대통령은 경찰이 집을 포위하자 ‘자살’ 위협을 하며 최후까지 저항을 시도했다. 무장경호원들이 총을 쏘며 맞서기도 했지만 결국 그는 독재정권 시절 ‘손발’이었던 유고 경찰에 체포됐다.

○…베오그라드 중앙 교도소로 곧바로 이송된 밀로셰비치는 판사로부터 간단한 인정심문을 받은 다음 구속, 수감됐다고 블라단 발틱 법무장관이 밝혔다. 발틱 장관은 “통상 30일인 구속기간을 연장할지는 아직 결정하지 않았으며 모든 조사는 6개월 내에 마칠 것”이라고 밝혔다. 밀로셰비치는 30시간이 넘도록 경찰과 대치한 탓인지 매우 불안정한 심리상태를 보였으며 세계 각국 보도진의 뜨거운 취재경쟁 속에 교도소로 이송된 뒤 기진맥진해 인정심문이 한때 늦춰졌다고 현지 언론매체들은 보도했다.

○…경찰과 대치한 상태에서 밀로셰비치는 권총을 휘두르며 “체포되느니 차라리 죽음을 택하겠다”며 정부측과 협상을 시도하기도 했다. 보이슬라브 코슈투니차 대통령이 즉시 비상각료회의를 소집해 “한 개인 때문에 국가적 위기가 생기는 것은 용납할 수 없다”고 체포 의지를 거듭 밝히자 밀로셰비치는 투항을 결심한 것으로 알려졌다.

○…1일 새벽 4시반경 경찰 특수부대 60여명이 집에 진입한 뒤 5발의 총성이 울렸다. 밀로셰비치의 딸 마리아(32)가 아버지가 체포되는 것을 보며 분통을 이기지 못해 하늘을 향해 난사한 것. 30시간 동안 경찰의 포위망 속에 갇혀 있던 밀로셰비치는 저항을 포기한 채 체포됐다. 50명 가량의 경호원은 술에 취해 있었으며 기관총 수류탄 로켓발사기 등으로 중무장하고 있었다고 현지 언론매체들이 전했다. 수백명의 밀로셰비치 지지자들은 집 주변에서 체포작전을 비난하다 경찰에 의해 강제 해산됐다.

○…그동안 밀로셰비치를 국제전범재판소에 세우도록 요구해온 유엔과 미국 유럽연합(EU) 등 서방권은 체포 소식을 듣고 환영했다. EU는 “밀로셰비치의 체포를 위해 국제사회가 기울인 노력을 환영한다”고 말했다. 코피 아난 유엔 사무총장의 대변인은 “밀로셰비치 체포가 그를 국제적인 단죄로 이끄는 계기가 되길 바란다”고 논평했다. 조지 W 부시 미국 대통령은 “유고 국내에서의 처벌로 끝나지 않고 국제전범 혐의에 대한 재판까지 이어질 것을 기대한다”며 필요한 경우 수사에 적극 협조하겠다고 밝혔다. 그러나 러시아는 외무부 대변인 성명을 통해 “밀로셰비치 체포는 유고 국내문제로 국제사회는 유고에 대한 내정간섭을 중단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밀로셰비치가 지난 15년간 조성한 비자금은 최고 27억파운드(약 5조2000억원)에 이르며 이를 추적하기 위한 국제적 노력이 이뤄지고 있다고 선데이 타임스가 1일 보도했다.

추적작업은 스위스 키프로스 그리스 리히텐슈타인 등지로 확대되고 있으며 스위스에만 밀로셰비치의 동생과 부인 등 35명의 이름으로 예치된 2700만파운드(약 520억원)가 동결된 상태라고 이 신문은 전했다.

<백경학기자·모스크바〓김기현특파원>stern100@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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