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比 '시민혁명' 이모저모]'피플 파워'에 '뇌물권력' 항복

  • 입력 2001년 1월 20일 16시 43분


‘피플 파워’가 15년 만에 필리핀을 휩쓸었다. 부정 축재와 뇌물 수수, 여성편력 등 파렴치한 행동으로 탄핵위기에 몰렸던 조지프 에스트라다 대통령은 결국 민중의 분노 앞에 무릎을 꿇었다. 부패한 대통령이 물러나자 시위대와 필리핀 전역에서는 축제 분위기가 연출됐다.

▼에스트라다 술취해 횡설▼

○…에스트라다 대통령이 20일 사임했다는 소식이 전해지자 대통령궁 주위에서 하야를 요구하며 철야시위를 벌이던 7만5000여명의 시위대는 열광했다. 곧 이어 글로리아 아로요 부통령이 취임선서를 했다는 소식에 이들은 얼싸안고 축가를 부르며 하야 투쟁의 승리를 자축.

아로요 부통령은 이날 낮 12시반경 마닐라 시내 에사 성당 앞 광장에서 필리핀 가톨릭교계의 최고지도자인 하이메 신 추기경과 군 장성, 각료 등이 지켜보는 가운데 힐라리오 다비데 대법원장 앞에서 대통령 취임선서를 거행. 이곳은 1986년 페르디난드 마르코스 전 대통령을 축출한 시민혁명이 일어났던 장소로 그동안 반 에스트라다 시위의 거점이었다.

○…에스트라다 전 대통령은 19일 아로요 부통령이 3명의 특사를 보내 사임시한을 정해 최후통첩을 할 당시 술에 취해 있었다고 특사 가운데 한 명이었던 에르네스토 에레라 의원이 전언. 특사가 즉각 사임할 것과 정권이양에 협조할 것을 요청하자 이미 술에 취해 있던 에스트라다는 “시간을 달라” “나를 쏴죽이지 그러냐”는 등 횡설수설했다는 것.

▼총성울려 한때 긴장고조▼

○…에스트라다 대통령의 사임 발표 직전, 대통령궁 주변에서 시위가 벌어지고 있는 가운데 3발의 총성이 들려 한때 유혈사태로 가는 것이 아니냐는 우려가 일기도. 총성은 대통령궁 앞에서 시위대 일부와 에스트라다 대통령의 지지자들 사이에 몸싸움이 벌어지는 가운데 들렸으며 경찰은 현장에서 남자 한 명을 연행했는데 필리핀 언론은 “총성은 시위대에 대한 경찰의 경고 사격으로 보인다”고 보도.

에스트라다 전 대통령의 사임 요구 시한(현지시간 오전 6시) 직후인 이날 6시반경 행진을 시작한 시위대는 대통령궁에서 멀지 않은 곳에서 진압 경찰과 대치하며 바리케이드를 사이에 두고 험악한 분위기를 연출.

○…에스트라다 전 대통령의 사임이 임박해진 19일 밤 수도인 마닐라 시내에는 50여만명이 몰려나와 불꽃놀이를 하며 축제분위기를 만끽. 불꽃이 칠흑같은 밤하늘을 빛낸 가운데 시민들은 엄지손가락을 밑으로 내리며 “에스트라다 즉각 사임하라”는 구호를 외쳤다. 마닐라 시민은 1986년 시민혁명 당시에도 불꽃을 쏘아올리며 마르코스 퇴진 시위를 벌인 바 있다.

○…세계적인 신용평가 기관인 스탠더드 앤드 푸어스(S&P)는 필리핀이 정정불안을 빨리 해결하고 정상을 되찾지 못하면 국가 신용도가 크게 떨어질 가능성이 있다고 전망. S&P는 성명을 통해 “정정불안을 빨리 해소하고 경제운영에 힘을 모아야 투자자의 신뢰를 얻어 금융시장 붕괴를 막을 수 있을 것”이라고 경고. S&P는 “정정이 불안하면 부실한 금융분야가 급속히 악화돼 차관 도입을 늘릴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지적.

○…미국 워싱턴 주재 필리핀 대사관은 에스트라다 대통령이 사임을 발표하기 전날인 19일 글로리아 아로요 부통령을 공식 통치권자로 인정한다는 성명을 발표해 주목을 받기도.

대사관은 에르네스토 마세다 대사가 권한을 아리엘 아바딜라 부대사에게 넘기고 연말휴가를 떠난 뒤 발표한 성명에서 “국민의 뜻이 대통령의 퇴진에 있는 것으로 믿는다”면서 시위대의 ‘즉각 퇴진’ 요구에 동조.

▼백악관 시위대 지지성명▼

○…미국은 에스트라다 대통령이 5월 조기선거안을 제시하며 사실상 사임의사를 밝히기 하루전인 18일 백악관 국가안보회의(NSC) 대변인 성명을 통해 사실상 반 에스트라다 시위대를 지지. 성명은 “미국은 마닐라의 법치 상황과 자유 민주주의의 형세, 예를 들어 평화시위의 권리가 존중되는 지 등에 대해 면밀히 주시하고 있다”며 시위대를 간접 지지. 국무부 대변인은 20일 “클라크 공군기지에는 훈련용 공군기가 대기중이지만 에스트라다 대통령측으로부터 미국으로 가기를 희망한다는 언질은 받지 못했다”고 전언.

<홍성철기자·외신종합연합>sungchul@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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