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比에스트라다 실각위기]시민-군경 합심…제2혁명 임박

  • 입력 2001년 1월 19일 23시 37분


조지프 에스트라다 필리핀 대통령이 ‘시민의 힘’(피플 파워)에 밀려 19일 대통령선거의 조기 실시를 발표했지만 시민과 야당은 즉각적인 사임을 요구해 에스트라다의 축출이 초읽기에 들어갔다.

▽시위 상황〓1986년 독재자 페르디난드 마르코스를 축출하고 시민혁명을 성취하는 시위가 벌어졌던 마닐라 시내 엣사 거리에는 이날 약 100만명의 시민이 모여 에스트라다 대통령의 하야를 요구하는 대규모 시위를 벌였다.

나흘째 시위를 벌여온 이들은 ‘에스트라다의 퇴진’과 ‘필리핀 민주주의 승리’라고 쓰여진 50여개의 대형 깃발을 휘두르며 에스트라다 대통령의 즉각적인 사임을 요구했다.

시민들은 에스트라다 대통령 퇴진운동에 동참한 앙헬로 레예스 참모총장 등 군지도부가 모습을 나타내자 환호하며 ‘필리핀 민주화’를 연호했고 레나도 데 빌리 전 국방장관은 군장성을 한 사람씩 소개하며 “이제 군과 경찰이 반에스트라다 시위에 동참했다”고 선언했다.

정권퇴진운동을 주도하고 있는 가톨릭 지도자 하이메 신 추기경은 반에스트라 운동에 모든 시민의 동참을 호소하며 “나는 에스트라다가 하야할 때까지 여러분과 함께 이 자리를 떠나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시민들은 에스트라다에 대한 즉석 모의재판을 실시해 만장일치로 유죄판결을 내린 뒤 엣사거리에서 멀리 떨어진 금융가까지 인간사슬을 형성하기도 했다.

에스트라다가 해외로 망명할 지 모른다는 소문이 무성한 가운데 그의 요구로 필리핀항공(PAL) 소속 여객기 2대가 마닐라공항에서 미국 샌프란시스코로 떠날 준비를 하고 있다고 PAL 관계자가 주장했다. 그러나 대통령 대변인은 이를 즉각 부인했다.

마닐라공항에는 또 탄핵재판에서 에스트라다 대통령의 변호를 맡았던 변호사와 재계의 친에스트라다 인사들이 줄줄이 외국으로 출국하는 모습들이 목격됐다고 라파즈 현지법인 김중락부사장(41)이 전했다.

이날 밤 늦게 무장한 장갑차 3대가 19일 오후에 대통령궁을 빠져나갔으며 이 차량 중 한 대에 에스트라다가 타고 있다는 소문이 돌고 있다고 목격자들이 전했다.

글로리아 아로요 부통령 대변인은 “에스트라다 대통령이 사임을 조건으로 사면해 줄 것을 요청했으나 거절했다”며 “지금으로서는 그가 하야 외엔 다른 선택의 방법이 없다”고 말했다.

▽시위 배경〓에스트라다 대통령을 축출 위기로 몰고간 도화선은 지난해 10월 루이스 싱손 술루주 주지사가 그의 비리를 폭로하면서 비롯됐다. 도박업계 대부인 그는 30년 친구인 에스트라다 대통령이 사실상 경쟁 도박업체를 세워 자신의 목을 죄어오자 의회청문회에 나가 필리핀 도박업계의 상납고리 정점에는 에스트라다 대통령이 있다고 폭로했다.

이후 에스트라다가 매주 측근들과 최고 10억원의 판돈이 걸린 도박판을 벌여왔다는 측근의 폭로도 이어졌다.

에스트라다 대통령의 무능과 스캔들비리를 비난했던 야당 의원들은 즉각 탄핵안을 제출했으며 탄핵이 처음에는 가망이 없어 보였지만 각료들이 잇따라 사임하고 마닐라와 마카티 등지에서 시위가 격화되자 점점 힘을 갖게 됐다.

지난해 11월 탄핵안이 하원을 통과한 뒤 12월 7일 상원에서 탄핵재판이 시작되면서 그의 사임을 요구하는 시위도 격화됐다. 그는 하야 요구를 거부했지만 재판이 진행될수록 뇌물수수, 주가조작 지시, 비자금 은닉 등 갖가지 비리가 폭로되면서 결국 몰각 위기를 맞게 됐다.

<백경학·권기태기자>stern100@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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