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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2000년 11월 8일 18시 58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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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탈리아의 유명한 스키리조트인 돌로미테. 겨울 내내 스키어들의 천국이었던 그곳은 봄으로 접어들면서, 산악의 눈이 서서히 녹아 내리기 시작해서 여름 내내 폭포수의 장관을 이루는 곳이에요. 범접할 수 없는 대자연의 신비함에 취하는 곳입니다.
그에 반해, 스위스가 자랑하는 라인폭포는 좀 다릅니다. 자연 경관도 경관이지만, 폭포 자체를 훼손시키지 않으면서 자연을 완벽하게 즐길 수 있도록 오밀조밀 주변을 디자인해 놓은 솜씨가 단연 돋보이기 때문일 겁니다.
나우네 가족이 라인폭포를 찾은 것은 작년 8월. 겨울의 눈이 녹아내려 강물이 최고조로 불어 오른 한여름이었죠. 취리히에서 30분 정도면 갈 수 있다기에 그날도 당일치기 여행을 떠났습니다. 아담한 교외선 기차를 타고 가는데, 갑자기 사람들이 우르르 일어나 창가로 모여들더군요. 바로 그 지점이 라인폭포가 처음 위용을 드러내는 지점입니다. 역 이름은 슐로스라우펜(Schloss Laufen). 여기서 기차를 내려 오솔길을 조금만 걸어 올라가면 라우펜 성이 나오지요. 이제 나우엄마가 체득한 '라인폭포를 제대로 보기 ABC'를 그대로 전수해 드리겠습니다.
1차 전망 포인트는 바로 이 라우펜 성의 난간입니다. 라인폭포의 머리 꼭대기 지점이라 사진 찍기도 좋은 곳이에요. 여기서 라인폭포의 거센 물줄기가 박력 있게 하류를 향해 뻗어나가는 장관을 즐긴 후 라우펜 성으로 입성하면, 이제부터는 내려가는 계단이니 다리가 약하신 분들은 난간을 잘 잡읍시다.

2차 지점은 라인강의 왼쪽 어깨에 해당되는 지점으로, 라인폭포 양쪽의 바위를 파고 들어가 만든 발코니입니다. 손을 뻗어 폭포수와 물의 유희를 즐기다보면, 신선놀음이 따로 없어요. 우리의 신선놀음이 끝나길 조용히 기다리는 사람들의 행렬. 앗, 좀 길었나? 미안한 마음에 우리 뒤에 서있던 부부 사진 한 장 찍어주고, 다시 계단을 내려갑니다.
이제 동굴 모양의 3차 지점이 모습을 드러냅니다. 이곳은 폭포의 갈비뼈 지점으로, 폭포에 가장 가까이 근접할 수 있는 곳입니다. 폭포에서 불과 2m 떨어진 곳이랍니다. 낙차가 있어 이곳을 지나는 폭포수의 물살은 살인적인 힘을 발휘하지요. 폭포는 가로 150m, 높이 25m, 물살 초속 600m. 가끔 바람에 폭포수가 갤러리의 작은 구멍으로 들이쳐 고개만 빠끔 내밀며 구경하던 관광객들이 물벼락 세례를 맞기도 합니다. 쨍쨍 여름햇살이 있어서인지, 물에 빠진 생쥐가 되어도 너털웃음을 짓고 있군요.
여기서 돌계단을 5분쯤 내려가 만나는 4차 지점은 폭포의 발등 지점으로, 폭포의 전신을 시원하게 올려다 볼 수 있는 곳입니다. 흰 옷자락을 휘날리며 물안개를 피워 올리는 라인폭포의 위용에 숙연해지는 곳이기도 합니다. 자, 이제 묵념은 그만. 유쾌한 폭포 즐기기 코스가 기다립니다.
배를 타고 이동하는 스릴 만점의 5차 지점. 강을 거슬러 올라가 폭포의 한가운데 솟은 바위 위까지 올라가는 겁니다. 안전주의자 나우아빠는 고개를 설레설레. 터프한 나우엄마가 배를 타려 했으나, 세살박이 딸의 간곡한 만류로 구경만 하기로 합니다.
배는 윈드서핑 하듯이 물살을 재주 좋게 넘어서 바위에 정박하는데 성공. 사람들이 조심스럽게 바위에 톱니바퀴처럼 놓여진 계단으로 올라가기 시작하더니, 드디어 스위스 깃발이 꽂힌 바위 정상에서 야호 함성이 들려옵니다. 폭포 사방에서 서로 다른 각도로 폭포를 감상하던 사람들이 일제히 박수를 치며 흥을 돋우어 줍니다. 라인폭포에서의 멋진 사진 한 컷을 원하시는 분은 꼭 시도해 보세요.

강 건너편의 아담한 카페 슐뢰슬리 보트에서 폭포전경을 바라보며 점심을 먹고, 라인강 유람선에 승선. 라인강의 보석이라는 슈타인암라인(Stein Am Rhein)으로 향하는 이 코스는 유럽에서 가장 낭만적인 유람코스로 알려져 있습니다.
푸른 강물 위로 물새같이 미끄러지는 유람선. 강둑 양쪽에는 언덕 위의 작은 집, 선탠과 물놀이를 즐기는 풍경이 평화롭습니다. 슈타인암라인은 라인강의 보석이라는 뜻의 이름에 어울리는 아담한 구시가지와 포도밭이 사랑스러운 마을이지요. 화려한 색채의 프레스코화가 벽면 가득히 그려진 중세기사의 집을 지나, 갖가지 조각과 그림으로 장식된 옛 건물들, 중세풍의 상점과 시장은 타임머신을 타고 그때 그 시절로 돌아가는 즐거움을 만끽하게 해줍니다.

삶은 감자 한입을 베어 물며 기지개를 켜니, 라인강이 내 품안 가득하군요. 나우는 나른하게 낮잠에 취해 있고, 가끔 흰 배가 휘파람 불며 다가왔다 떠나고, 햇살 아래 커피를 마시던 사람들도 떠나기 시작합니다. 긴 오후 햇살이 우리에게도 귀가를 재촉합니다. 꼭 7시간의 라인강 여행. 아쉬운 일장춘몽? 다시 한번 오자고 다짐하며 버드나무 가지 아래서 취리히행 기차시간표를 읽었지요. 물론 다시 가지 못하고 우리는 서울로 돌아 왔습니다.
아침저녁으로 찬바람이 붑니다. 유행성 감기. 꼭꼭 닫혀진 세상의 문, 마음의 문. 은행잎을 밟으며 문득 라인강의 시원한 폭포수를 떠올리게 되는군요. 가슴을 탁 트이게 하는 그 무엇이 그립기 때문일 겁니다.
나우엄마 (nowya2000@hot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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