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일교포 기업인 야망과 성공]'고덴샤' 고기수사장

  • 입력 2000년 8월 21일 16시 25분


"인터넷과 위성방송 등의 보급으로 사실상 국경이 사라졌지만 언어의 장벽은 아직도 두텁습니다. 이 숙제가 해결될 때야 비로소 진정한 지구촌이 완성될 수 있겠지요."

일본 오사카(大阪)에 본사를 둔 자동번역소프트웨어 전문업체 고덴샤(高電社) 고기수(高基秀·66)사장의 말이다.

그는 제주도 출신의 재일교포1세다. 오사카 도심을 벗어난 아베노(阿倍野)구 본사는 낡은 5층 건물이었다. 연구인력이 70여명에 불과한 중소기업이다. 그러나 3층과 4층 개발실 안에 들어서니 대기업 못지 않은 연구개발 열기로 뜨거웠다. 이들은 일본 한국 중국 동남아 각국에서 모인 연구자가 수많은 언어가 등장하는 인터넷 세계를 자동번역을 통해 통합해낸다는 '현대판 바벨탑'에 도전하고 있다.

고덴샤는 이달초 인터넷 홈페이지 자동번역서비스인 'J서버'를 시작했다. 위성방송 자동번역시스템은 완성단계에 와있다. J서버는 온라인상태에서 한국어 중국어 일어 영어로 된 홈페이지를 동시번역해주는 서비스다. 고덴샤의 번역홈페이지(www.j-server.com)에 들어가 원하는 홈페이지 주소를 입력하면 곧바로 원하는 언어로 번역돼 나타난다.

고사장은 광고 없이 서비스를 시작했는데도 매일 접속건수가 수천건씩 늘어나 네티즌의 자동번역에 대한 갈증이 어느 정도인지를 실감하고 있다 고 말했다. 이 서비스가 성공할 것을 확신하는 강한 어조였다.

이밖에 일본 위성TV의 문자방송을 각국 언어로 동시번역하는 시스템 개발도 기술적으로 거의 완성됐으며 이를 위해 필요한 번역기능이 내장된 튜너나 TV겸용 컴퓨터 등 하드웨어 문제가 약간 남아 있는 상태다. 일본 위성방송 안테나가 200여만대 이상 보급된 한국의 시청자에게도 반가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이 프로젝트는 일본 우정성 외곽단체인 통신방송기구로부터 2900만엔의 선진기술형 연구개발조성금을 지원받았다.

고덴샤는 92년 이후 자동번역소프트웨어인 j·서울(일어-한국어) j·런던(일어-영어) j·베이징(일어-중국어) 등을 잇달아 개발하면서 통산성 등으로부터 6차례, 총 3억여엔에 이르는 지원금을 받았다. 98년 10월 '정보의 달'에는 통산성 우정성 등 9개부처로 구성된 정보화월간추진회의로부터 우수정보처리시스템상을 받았다. 재일교포 기업이 일본 정부의 표창과 지원금을 받은 것은 거의 드문 일이다.

예순을 넘은 고사장은 얼핏보면 첨단 정보기술(IT)분야에 어울리지 않는 한물 간 구세대같다. 하지만 그는 개인용 컴퓨터 태동기부터 소프트웨어 개발에 눈을 돌린 '원조(元祖)벤처인' 이다. 전기공사업을 하던 그는 70년대 후반 개인용 컴퓨터가 나오자 소프트웨어업은 자금과 설비 없어도 머리만 있으면 가능한 사업 이라고 확신했다. 2년간 밤낮으로 컴퓨터를 배운 뒤 79년 고덴샤를 세웠다. 와세다대에서 독문학을 전공한 경험을 살려 언어관련 소프트웨어를 시작했다. 81년에는 일본에서 최초로 22개국 언어를 동시지원하는 다국어 워드프로세서 '마이레터'를 개발했다. 당시 일본언론매체는 '첨단 소프트웨어 개척자'라며 이 제품을 앞다퉈 소개했다.

"번역소프트웨어 개발때는 시행착오도 많았지요. 특히 한국어는 한자를 별로 사용하지 않아 '김(金)'을 식용 '김(のり)'으로 번역하는 등 오류도 발생했지요."

고사장은 20여년간 축적된 언어처리 기술과 방대한 언어데이터베이스 덕분에 현재 일한번역 정확도는 95%, 일중번역은 80%로 일본 최고수준에 이른다고 자랑했다.

그는 요즘도 새벽 4시면 일어나 새로운 번역거리를 찾아 세계 각국의 인터넷 홈페이지를 순례한다. 그는 "뿌리는 한국에 있지만 아시아인이라는 의식을 갖고 번역작업을 통해 아시아를 하나의 문화권으로 만들겠다 며" 인터뷰를 마쳤다.

<오사카=이영이특파원기자>yes202@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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