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유하기
입력 2000년 7월 31일 18시 58분
공유하기
글자크기 설정
꼭 10년전 이라크가 쿠웨이트를 침공하던 날 하루의 긴박한 상황이다. 나흘 뒤 유엔은 이라크에 경제제재를 가했다.
이후 많은 것이 변했다. 한때 중동의 강국을 꿈꿨던 이라크는 국제사회로부터 철저히 고립됐다. 서방의 집요한 제거노력에도 불구하고 사담 후세인 이라크 대통령(63)은 여전히 건재하다. 반면 이라크 국민은 배급식량으로 하루하루를 힘들게 버텨가고 있다. 최근 인도적 이유로 경제제재를 풀어야 한다는 국제여론도 일어나고 있지만 미국은 제재 해제조건인 대량살상무기 및 핵무기 제조 의혹이 풀리지 않았다며 거부하고 있다.
▽걸프전과 그후〓유엔은 이라크의 침공 직후 ‘91년1월15일까지 철수하라’는 최후통첩을 내렸다. 연합국은 최종시한 다음날인 16일 이라크 공격에 나섰다. ‘사막의 폭풍’작전이라 불린 걸프전의 시작이었다. 38개 연합국은 최신 무기와 월등한 장비로 이라크를 일방적으로 공격해 6주만에 전쟁을 끝냈다. 패전국 이라크는 까다로운 종전결의안을 받아들였다. 이후 미국과 영국은 이라크 남북부에 ‘비행금지구역’을 설정했고 지금까지 미영 전투기들이 초계비행하면서 목표지점을 공격하고 있다.
종전안에 따라 유엔은 대량살상무기와 핵무기를 찾아내는 무기사찰단(UNSCOM)을 이라크에 파견, 사찰에 들어갔다. 이후 근 8년간 이라크와 미국 등은 사찰활동을 둘러싸고 밀고 당기는 줄다리기를 계속했다. 이라크는 98년12월 사찰단원이 미국의 정보원이라는 이유를 들어 사찰활동을 거부했다. 이에 대한 보복으로 같은 달 16∼19일 미국과 영국은 바그다드 등 ‘의혹시설’을 공격했다. ‘사막의 여우’작전이었다. 이후 사찰단원에 미국의 정보요원들이 참여한 것이 사실로 밝혀지고 이라크는 지금까지 사찰을 거부하고 있다. 러시아 프랑스 등은 사찰강도를 낮출 것을 제안했으나 기존의 사찰단을 대체할 이라크무기감시단(UNMOVIC)이 설치됐다. 그러나 아직 이라크 땅을 밟지는 못했다.
▽이라크 현상황〓유엔아동기금(유니세프)은 경제제재 10년동안 이라크내 어린이 50만명이 질병과 굶주림으로 숨졌다고 최근 밝혔다. 유엔이 96년 인도적 차원에서 ‘유엔석유식량계획’을 도입하면서 사정이 나아졌다. 이라크가 6개월마다 52억달러 어치의 석유를 팔아 의약품 및 식량을 살 수 있도록 한 조치다. 그러나 식량난은 여전하다. 이라크 국민은 한달을 10달러도 안되는 돈으로 살아가고 있다.
아누 파마 라오 싱 유니세프이라크위원장은 “어린이들이 죽고 교육도 제대로 안돼 이라크는 머지않아 ‘잃어버린 세대’를 맞이할 것”이라고 우려했다.
이에 비해 후세인 등 집권층은 여전히 영화를 누리고 있다. 미국의 포브스지는 최근 19개의 궁을 소유한 후세인은 석유밀수 등으로 번 돈으로 재산이 60억달러(약 6조7200억원)에 달한다고 전했다. 후세인의 장남 우다이(35)과 차남 쿠사이(33)는 요직을 차지하고 있다. 바그다드 시내 유명 상점은 사치품이 넘쳐난다.
▽제재해제 전망〓후세인을 제거하기 위한 경제제재는 되레 후세인의 집권기반을 강화하고 애꿎은 이라크 국민만 고통을 주고 있다는 비판이 최근 일고 있다.
미국의 한 민간단체는 지난달 이라크에서 배급식량을 받으며 고통체험에 나섰다. 또 수잔 서랜던, 마틴 신, 팀 로빈스, 리암 니슨 등 할리우드 스타도 ‘어린이의 생명을 앗아가는 경제제재를 풀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호세 라모스 호르타 동티모르 주교 등 노벨수상자 3명도 7월 28일자 뉴욕타임스지에 광고를 싣고 해제를 요구했다. 특히 마틴 신은 6일 워싱턴에서 시위를 벌일 계획이다.
그러나 미국정부의 입장은 단호하다. 전문가들은 11월 대선전까지는 미국의 입장변화는 없고 그후로도 오랫동안 그럴 것이라고 말한다. 특히 이들은 경제제재가 해제된다 해도 복구에는 엄청난 시간과 비용이 들 것으로 보고 있다. 인프라 복구에만도 수천억달러에 20년 정도가 걸린다는 것.
영국 두르햄대학의 아노쉬 에테샤미 교수는 “이라크 국민이 전쟁의 상흔을 이겨내고 자신감을 얻기까지는 시설복구 기간보다 훨씬 오랜 세월이 필요할 것”이라고 말했다.
<윤양섭기자>lailai@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