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법원 "친자식 아니어도 아버지 의무 다해야"

  • 입력 2000년 5월 2일 19시 57분


미국 펜실베이니아주에 사는 제럴드 미스코비치는 얼마 전 아내와 이혼하면서 다섯살짜리 아들의 DNA검사를 사설검사기관에 의뢰했다. 부모가 모두 푸른 눈을 가졌으나 아들 존의 눈동자는 갈색이라는 사실이 마음에 걸렸던 것. 검사 결과 존은 미스코비치의 아들이 아니었다.

그러나 펜실베이니아주 가정법원은 미스코비치에게 아들을 위해 매달 537달러의 양육비를 내라는 판결을 내렸다. 양육비는 아이들이 최소한의 경제적 보호를 받도록 하는 것이 목적인 만큼 비록 ‘생부’는 아니지만 그동안 아버지 역할을 해왔다면 이후로도 아버지의 의무를 해야 한다는 것이 판결의 요지. 미스코비치는 도저히 승복할 수 없어 대법원까지 갔으나 법은 끝내 그의 편이 아니었다.

미국에서 최근 미스코비치의 사례와 같은 양육비 소송이 급증하고 있다. 통계에 따르면 미국 어린이의 10∼30%가 생부가 아닌 ‘아버지’와 살고 있는 것으로 나타나 앞으로 소송이 엄청나게 늘어날 것이 분명하다. 실제로 지난 10년간 양육비 소송과 관련한 친자확인을 위해 DNA테스트를 신청한 아버지의 수가 3배 이상 급증했으며 98년에만 24만8000명이 신청했다.

이와 관련해 크리스천사이언스모니터지는 2일 이혼에 따른 양육비 소송이 급증하면서 ‘아버지는 어떤 존재인가’에 대한 논쟁이 일고 있다고 보도했다. ‘주법(州法) 통일 전국위원회’와 ‘미 법률연구소’는 최근 ‘아버지의 역할’을 새로 규정하기 위한 친권법 개정 작업에 돌입했다. 이들이 추진중인 새 법의 특징은 아버지의 역할 가운데 자식을 낳는 것보다는 기르는 것에 더 비중을 두는 것.

미국의 19개주가 채택하고 있는 현행 친권법은 혼외출산아를 포함해 결혼생활 중에 태어난 모든 아이를 친자로 간주해 아버지가 양육비를 부담하도록 하고 있다. 다만 자녀가 5세 미만인 경우에 한해 친자가 아니라는 혈액검사결과를 증거로 제출하면 양육비 부담을 경감 또는 면제토록 하고 있다.

남성들은 이 같은 법에 대해 반발하고 있다. ‘차별에 반대하는 아버지들의 모임’은 “내 자식도 아닌데 20년씩 양육비를 대는 것은 말도 안된다”고 주장하고 있다.그러나 주법 통일 전국위원회 소속인 존 샘프슨 텍사스대 교수는 “아버지는 유전인자를 넘어서는 차원의 존재”라는 말로 양육비 논쟁에 대한 입장을 밝혔다.

<강수진기자>sjka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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