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굿모닝 도쿄] "日도 살기 좋은데 뭣하러 외국에…"

  • 입력 2000년 4월 10일 19시 43분


얼마전 제네바특파원 임기를 끝내고 돌아온 일본 기자 A씨의 얘기다. 그는 3년전 특파원 발령을 받고 중학생인 아들이 기뻐할 것이라고 생각했다. 스위스는 일본인이 가장 살고 싶어하는 나라이기 때문. 그러나 아들은 “일본도 살기 좋은데 무엇 때문에 외국에서 고생하느냐”는 뜻밖의 반응을 보였다. 서양이라면 무조건 동경하던 일본의 기성세대가 미처 예상하지 못한 ‘역습’이었다.

‘도메스틱(국내)파.’ 요즘 일본 젊은이들의 성향을 알 수 있는 키워드다. 해외여행 기회가 늘고 글로벌 시대가 되었지만 일본에선 오히려 내향화(內向化) 현상이 강해지고 있다.

이같은 현상은 해외여행과 대학진학에서 가장 두드러진다. 일본교통공사(JTB)에 따르면 지난해 4∼9월 해외패키지여행 참가자중 20대 여성은 전년동기보다 11%, 20대 남성은 7%가 각각 감소했다. 50대는 남녀 모두 10%이상 늘어난 것과 대조적이다.

대학에서 외국어나 국제관계를 전공하겠다는 젊은이들도 줄고 있다. 입시학원 가와이주쿠(河合塾)에 따르면 수도권 사립대의 17개 국제관계 학과중 최근 4년간 지원자가 늘어난 곳은 2개에 불과하다. 지원자가 절반으로 줄어든 학과도 적지 않다.

소비에서도 마찬가지다. 젊은이 대상 잡지 ‘아사양’ 3월호가 뽑은 최고 인기패션 브랜드는 일본산인 ‘소프’였다.‘어 베이직 에이프’ ‘넘버 나인’ 등 다른 일본 브랜드도 상위권에 올랐다. 패션상품 판매업체인 ‘빔즈저팬’ 관계자는 “요즘 젊은이들은 파리나 런던의 유행에 관심이 없다”고 말한다. 음악이나 영화에도 외국 것보다 일본 것이 훨씬 인기가 높다.

일본 젊은이들의 ‘국내지향’에 대한 평가는 엇갈린다. 일부에선 “외국문화를 접촉할 기회가 많아져 과거처럼 외국에 대한 외경심이나 선망이 적어졌기 때문”이라며 긍정적으로 본다. 그러나 “복잡한 것을 싫어하고 당장 편한 것을 좋아하는 극도의 무관심 탓”이라며 젊은이들의 줄어드는 호기심을 우려하는 사람들도 있다.

일본의 국내파가 ‘서양콤플렉스’에서 벗어나 독자적인 문화를 가꾸는 바탕이 될 것인지, 아니면 또 다른 형태의 국수주의에 빠져드는 계기가 될 것인지는 시간을 두고 지켜 볼 일이다.

<도쿄〓이영이특파원>yes202@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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