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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2000년 3월 17일 19시 09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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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해자 이모씨 등 14명은 사고 직후인 97년 8월 초 ‘항공기 추락사고 피해자를 위한 국제 소송팀이 설명회를 개최한다’는 연락을 받았다. 당시 이씨 등은 괌 메모리얼 병원에서 응급치료를 받은 뒤 국내로 이송돼 서울 H병원에서 함께 치료받고 있었다.
제럴드 스턴스 변호사 등 미국내 항공기사고 전문 변호사들과 법무법인 대륙(대표 함승희·咸承熙변호사)이 컨소시엄을 구성해 소송비용, 예상 손해배상액, 소송절차 등을 구체적으로 소개했다. 다른 미국계 변호사들도 독자적으로 ‘출장 설명회’를 개최했다.
스턴스 변호사팀의 소송 전략은 분명했다. 배상금액이 낮은 국내 법원에서 대한항공을 상대로 싸우지 말고 미국 법원에서 미국 정부를 상대로 거액의 배상금을 받아내자는 것이었다. ‘항공기 사고에서 피해자가 항공사를 상대로 손해배상을 청구할 때 청구액은 14만5000달러(약 1억6000만원)를 넘을 수 없다’고 규정한 바르샤바 협약을 비켜갈 수 있는 묘안이기도 했다.
스턴스 변호사팀에는 미국 샌프란시스코 소재 2개 로펌(법률회사) 외에도 버클리대 법대에서 항공법을 강의하는 월터 펙터 교수도 가세했다. 이들은 98년 뉴욕발 스위스행 스위스에어 항공기 추락사고, 96년 9월 나리타공항에서 이륙 중 발생한 일본항공(JAL)기 화재 사고 등 국제적인 대형참사를 맡는 등 항공사고 소송의 베테랑이었다.
첫 작전은 ‘소송없는 합의’로 배상금을 받아낸다는 것이었지만 미국 정부는 완강했다. 사고 이후 “사고는 전적으로 대한항공측 책임”이라는 세계 각국의 언론 보도를 근거로 내세웠다.
스턴스 변호사팀은 처음부터 끝까지 심리과정을 지켜보는 배심원이 책임소재는 물론 보상액수까지 결정하는 미국 사법제도의 특성을 살려 배심원들의 동정심을 유발하는 소송기법을 쓰기로 했다. 98년 8월 소송을 낸 뒤 이런 전략으로 압박해 들어갔으며 드디어 작전은 성공했다. 청문회 때 중화상을 입은 20대 청년의 진술을 들은 뒤부터 배심원의 태도가 눈에 띄게 달라지기 시작했다. ‘자기 영토에서 발생한 사고의 피해자에게 책임이 없다며 합의를 거부하는 정부의 태도’에 등을 돌리기 시작했던 것.
미국 법무부는 결국 ‘일단 배상은 한 뒤 대한항공에 구상권을 행사하라’는 스턴스 변호사의 제안에 따라 협상 시작 2년여 만에 합의금 지급을 약속했다. 그러나 지난 수개월간 스턴스변호사는 미 법무부 고용 변호사들이 최종 ‘권리 포기서’의 문구를 31번이나 수정할 것을 요구해 와 ‘마지막 순간’까지 가슴을 졸여야 했다고 말했다.
<김승련기자>srkim@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