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치 종주국」위상 흔들…日업체들『직접생산 유리』

  • 입력 1999년 5월 17일 19시 28분


한국 김치업체들이 일본시장에서 밀려날 위기에 처했다.

17일 일본 유통업계에 따르면 그동안 일본 수입업자를 통해 한국산 김치를 간접수입해온 일본 주요 유통업체나 식품제조업체가 한국 김치업체를 사들이거나 합작생산형태로 한국산 김치를 직접 수입할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특히 C사 I사 J사 등 일본 대기업들이 ‘한국업체 사냥’을 검토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이는 일본에서 김치를 생산하거나 수입업자를 통해 한국김치를 수입하는 것보다 직접 한국에서 김치를 생산해 수입하는 것이 유리하다는 판단에 따른 것이다. 경영기반이 취약한 상당수 한국 김치업체가 경제위기로 자금난이 심화돼 일본기업의 매수제의에 응할 가능성이 높아진 점도 작용하고 있다.

한국김치업체중 처음으로 일본시장을 개척한 충북 보은의 진미식품은 13년간 김치를 납품해온 일본 대형유통업체 D사로부터 최근 거래중단 통고를 받았다.

일본의 식품제조업체인 C그룹 계열의 S사가 한국의 중견김치업체인 A사 등으로부터 직접 김치를 수입해 훨씬 싼 값으로 D사에 납품키로 했기 때문이다.

진미식품 등 기존 한국업체의 김치가 일본 유통점에 진열되기까지는 일본 수입업체와 중간도매업자를 거쳐야 하는 반면 일본 C사는 바로 한국김치를 들여와 유통점에 직접 납품하므로 물류비용 등에서 경쟁이 되지 않는다. S사는 앞으로 한국 A사와 합작공장을 설립해 김치를 수입하는 방안도 추진중이다.

일본의 한국무역 소식통은 “C사의 결정은 궁극적으로 한국내 기업매수 및 직접생산을 겨냥한 1단계 조치로 보인다”며 “한국이 ‘김치종주국’에서 밀려나는 것은 시간문제”라고 말했다.

이에 대해 한국 A사 관계자는 “C사가 일본에서의 판매를 책임지는 업무제휴형태이며 자본참여에 관한 논의는 아직 없었다”고 설명했다.

진미식품 이진옥(李珍玉)사장은 “이런 추세로 가면 한국 김치업체는 일본땅에서 설 자리가 완전히 없어질 것”이라며 “모두 문을 닫든가, 아니면 자금력을 바탕으로 한 일본대기업에 팔리는 길밖에 없다”고 말했다.

일본 주요기업이 한국 김치업체 매수를 본격화하면 한국 김치시장조차 일본 자본의 직간접적 영향하에 놓일 것이라는 우려도 나오고 있다.

〈도쿄〓권순활특파원〉shkwo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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