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패티김 딸 유고서 구호활동]『인간의 죄악 전쟁 참혹』

  • 입력 1999년 3월 31일 07시 45분


‘1990년 정아는 스물하나/1990년 꽃피는 스물하나…’

작곡가 작사가 연주가를 겸했던 고 길옥윤씨는 가수 패티김씨와의 사이에서 태어난 딸 정아를 위해 ‘1990년’이라는 노래를 만들었다. 정아가 18세 되던 87년이었다.

바로 그 정아(30·파울라 게디니)씨가 ‘발칸 전쟁’의 현장에 있었다. 유엔난민고등판무관실(UNHCR) 직원으로 작년 11월부터 유고 베오그라드와 코소보에서 일하다 북대서양조약기구(NATO)군의 공습 직전에 대피명령을 받고 헝가리 부다페스트로 갔다. 부다페스트의 정아씨와 30일 오후 국제전화가 연결됐다.

―공습 직전에 베오그라드와 코소보는 어땠는가.

“베오그라드 시민들은 언제 공습이 있을지 몰라 불안해 했다. 코소보의 알바니아계 주민들은 세르비아계 군이나 경찰이 보복할까봐 두려워 했다. 그들을 생각하면 지금도 가슴이 아프다.”

―세르비아 군이나 경찰이 알바니아계 주민을 학살한다는 데 그런 현장을 본 적이 있는가.

“지난해부터 유고군과 코소보해방군(KLA)의 전투가 계속돼 많은 사람들이 숨졌다. 나도 여러번 현장을 목격했다. 세르비아군이 알바니아계 주민을 일방적으로 학살하는 것만은 아니었다. KLA가 유고군이나 경찰을 살해하는 일도 있었다. 양쪽 모두 폭력의 가해자이자 희생자다.”

―유고군이 알바니아계 주민들을 쫓아내고 있다는데….

“그런 보도가 있는 것을 알고 있다. 그러나 강제추방 현장을 직접 보지는 못했다. UNHCR는 난민을 돕는 단체다. 누구의 편을 드는 단체가 아니다. 더 이상은 말할 수 없다.”

―난민들의 형편은 어떤가. 전염병에 걸리거나 굶는 사람은 없는가.

“날씨가 추워 고생하지만 건강상태는 비교적 양호하다. 전염병이 돈다는 보고는 아직 없다. 각국 정부와 국제단체의 지원으로 식량도 부족하지 않다. 우리는 오랜 기간 준비해 왔다.”

통화 도중 정아씨는 마케도니아 스코페로 급히 가야 한다며 양해를 구했다. 정아씨는 미국 UC데이비스에서 정치학을 공부하고 조지워싱턴대 대학원에서 외교학을 전공했다. 그후 보스니아 헤르체고비나의 난민구호활동에 참가했고 96년부터 UNHCR에서 근무했다.

〈구자룡·김태윤기자〉bonho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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