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클린턴 「증언비디오」공개]「벌거벗은 대통령」?

  • 입력 1998년 9월 21일 19시 47분


8월17일 연방대배심 폐쇄회로 카메라 앞에 선 빌 클린턴 미국대통령은 더이상 자신만만한 대통령이 아니었다. 그는 스타검사팀의 질문공세에 땀을 흘려야 했고 때로는 검사팀에 대한 분노를 감추지 못했다. “성적 관계는 있었지만 성관계는 없었다”는 궤변도 동원했다.

21일 오전 9시(현지시간). 미국의 주요방송이 일제히 클린턴대통령의 증언모습을 방영하면서 세계 최강국 대통령의 ‘벌거벗은’ 모습이 드러났다. 초반 기싸움은 스타검사팀의 완승. 로버트 비트만검사가 르윈스키와의 섹스에 대해 집요하게 구체적인 질문을 던졌다.

“르윈스키와 성관계를 맺은 건 분명하지요?”(검사팀)

“…”(클린턴)

“르윈스키가 특별한 성관계를 가졌다고 했는데 구체적으로 무엇을 말하는 겁니까.”(검사팀)

“미 대통령으로서의 품위를 지키고 싶소. 엄연히 이건 사생활에 관한 문제 아니오.”(클린턴)

7,8분이나 지났을까. 클린턴대통령이 허리를 곧추세우며 준비한 장문의 석명서를 읽어내려갔다. 인정할 것은 인정하겠지만 미국대통령을 세워놓고 ‘지극히 개인적인’ 부분에 대해 구체적인 진술을 하라는 것은 모두를 위해 바람직하지 않다는 요지였다.

클린턴은 때로는 철학적인 답변으로 초점을 흐리기도 했다. 대통령직과는 상관없는 사생활 문제라면서 “인간사의 수수께끼인 성문제를 다루는 만큼 신중해야 한다”는 주장을 폈다.

질문과 답변이 겉돌면서 양측의 감정은 일촉즉발 상태까지 이르렀다. 초반 가라앉았던 대통령의 음성도 점차 높아져갔다. 한시간 가까이 신문이 중단되기도 했다.

신문이 재개돼 스타검사팀이 다시 오럴섹스에 대해 질문공세를 퍼부었지만 공방은 계속됐다. 신문이 겉돌자 한 배심원이 참다못해 발언권을 신청했다. “대통령답게 답변하셔야 하는 것 아닌가요. 르윈스키와 오럴섹스가 있었다면 있었다, 아니면 아니다 분명하게 답해주세요.”

정면에 놓인 카메라를 응시하던 클린턴의 얼굴이 굳어졌다. 여유를 되찾으려는 듯 자리를 고쳐앉기를 수차례. 땀이 흥건히 밴 주먹에 힘이 들어갔다. 왼편에 자리한 변호인단에게 눈길을 돌렸으나 뾰족한 대책이 있을리 만무했다.

“르윈스키와는 ‘다정한’ 사이였습니다.”

클린턴은 동문서답식 답변으로 배심원의 항의섞인 질문을 의도적으로 무시했다. 그러나 추상같은 검사팀의 신문이 계속됐다.

“대통령, 지금 카메라가 돌아가고 있어요. 분명하게 진실을 밝혀야 합니다.”

클린턴의 ‘준비된 미소’가 점차 사라졌다. 탄탄대로를 달려온 자신에게 이런 수모를 안긴 스타검사팀에 대한 적개심마저 드러났다.

“스타검사팀, 당신들은 사생활 문제를 미국에서 가장 중요한 이슈로 만들었소. 수사과정에서도 르윈스키의 집을 급습해 무려 5시간이나 외부와 차단한채 수사를 했소.”

특별검사팀은 왜 하필이면 르윈스키가 선물한 넥타이를 매고 나왔느냐며 질문의 방향을 돌렸다. 대통령이 당황하는 기색이 역력했다.

“모, 몰랐소. 알았다면 일부러 매고 나왔겠어요.”

클린턴대통령은 화면을 통해 연결되는 21명의 배심원을 향해 처절한 ‘설득전’을 펼쳤다. 1월 폴라 존스 성희롱사건때 한 “르윈스키와 성관계를 갖지 않았다”는 진술이 위증이 아니도록 하는데 초점을 맞추며 변호사다운 논리로 일관했다.

“어쨌건 나는 르윈스키와 법률적 의미의 성관계는 갖지 않았습니다. 결코 위증을 한 적이 없어요.”

그러나 클린턴은 시간이 흐를수록 초라해진 자신의 이면을 수사검사와 배심원들에게, 그리고 이번에는 미국민의 뇌리에 선명히 각인시켰다.

〈김승련기자〉srkim@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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