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세인은 상처없는 판정승』…『美는 기동훈련만 요란』

  • 입력 1998년 2월 24일 19시 51분


사담 후세인 이라크대통령. 2차 걸프전의 위기를 고조시킨 장본인. 자국민 앞에서는 군복을, 외국대표를 만날 때는 신사복을 입으면서 항상 오만한 자세를 취하는 인물. 지금 세계에서 미국에 대드는 유일한 ‘싸움닭’이다. 이번 위기에서 ‘승자는 후세인’이란 것이 국제사회의 분위기다. 유엔의 설득을 받아들이는 형식을 취함으로써 초강대국 미국과의 싸움에서 크게 잃은 것 없이 의도했던 바를 얻어냈다는 것이다. 후세인은 우선 무기 사찰단원 중 미국인에 치우친 인적 구성과 유엔의 경제제재 해제 문제에 대한 국제여론 환기라는 당초의 목표를 어느 정도 달성했다. 또 △유엔 안보리의 분열 △아랍권의 동조 확대 △원유수출허용량 배가를 덤으로 얻었다. 뿐만 아니라 미국에 대한 국민적 저항감을 불러일으켜 경제난과 독재에 대한 불만을 잠재우는 소득까지 얻었다. 후세인과 미국의 대결은 쥐와 고양이의 싸움에 비유된다. ‘벼랑끝 전략’‘치고 빠지기의 명수’는 후세인이 즐겨쓰는 장기다. 이 과정에서 국민의 목숨을 담보로 잡고 자신의 약속 위반에 대한 국제사회의 비난쯤은 귓등으로 흘려버린다. 국제사회의 합리성 보편성은 마음에도 없고 자신의 이익만 추구하는 무뢰한 세계의 전술가다. 어떻게 했나 보자. 이번 사태도 4개월 전과 비슷하다. 지난해 11월 후세인은 전격적으로 미국인 사찰요원 추방 결정을 내려 세상을 놀라게 했다. 미국의 권위에 흠집을 내면서 경제제재 해제 여론을 조성하려는 의도에서 나온 계산된 행동이었다. 그는 미국만 물고늘어졌다. 미국의 독주를 불쾌하게 여기는 러시아 프랑스 등 유엔 안보리내 역학관계와 아랍권의 반미감정도 100% 활용했다. 무기사찰단 중에 미국인이 너무 많다. 이들은 후세인 정권의 붕괴를 목적으로 스파이 행위를 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미국이 항공모함을 걸프해역에 파견하는 등 뜻밖의 강수로 나오자 후세인은 러시아의 중재를 못이긴 체 받아들여 사찰단의 입국을 허용했다. 이라크는 그 대가로 러시아로부터 경제제재의 조속한 해제를 위한 노력을 약속받았다. 그러나 경제제재 해제의 조짐이 보이지 않자 후세인은 또다시 무기사찰단의 대통령궁 접근을 금지, 제2라운드로 들어갔다. 미국은 ‘이번만큼은 이라크를 확실히 손보겠다’며 공격준비를 진행했다. 사태를 지켜보는 국제사회는 후세인보다 오히려 조마조마한 심정이었다. 미국의 공격 의지가 확고하다고 판단한 후세인은 코피 아난 유엔사무총장을 불러들였다. 후세인은 위기의 절정에서 한발 물러서면서 미국의 김을 빼버렸다. 결국 미국은 요란하게 기동훈련만 한 꼴이 됐다. 그에 대한 아랍권의 평가는 엇갈린다. 지지를 보내는 편이 있는가 하면 쓸데없는 평지풍파를 일으킨다고 눈살을 찌푸리는 편이 있다. “후세인은 미국에 저항하는 유일한 상징이기 때문에 그가 타격을 입지 않을까 걱정이다.”(아랍의 한 외교관) “몇달에 한번씩 되풀이되는 쥐와 고양이의 숨바꼭질을 마음 졸이며 지켜보는 것도 이젠 지쳤다.”(요르단의 한 신문) 그러나 무기사찰 수용으로 쥐와 고양이의 싸움이 완전히 끝난 것으로 생각하면 오판이다. 일시적으로 타협할지는 모르지만 완전한 굴복을 모르는 후세인이 또다시 걸프해역에 폭풍을 몰고 올 것은 명백하다. 79년 집권이래 두차례의 전쟁과 수없는 국내외의 암살 기도를 모면하면서 철권통치를 계속하고 있는 60세의 싸움꾼. 사담이란 단어에는 ‘싸우다’‘도전하다’ ‘충돌하다’ 등의 의미도 있다. 사담 후세인은 언제까지 싸움꾼 역할을 할까. 〈고진하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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