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소평 사망/떠오르는 후계자 5명]

  • 입력 1997년 2월 20일 20시 01분


▼江澤民▼ 후계지도층의 핵심. 70세. 鄧小平(등소평)이 생전에 자신의 후계자로 선택한 인물로 널리 알려져 있다. 문민 기술관료출신이며 기계 전자분야에서 경력을 쌓은 후 85년이후 상해(上海)시장으로 재직했다. 89년의 천안문유혈사태와 관련해 군대동원 결정을 옹호했지만 천안문사태와는 무관한 편. 군부에 대한 영향력을 키우려고 노력해 왔으나 군경험 부족은 전면적인 권력투쟁 과정에서 큰 약점이 될 듯. ▼李鵬▼ 68세로 국무원총리. 48∼54년 러시아에서 엔지니어 교육을 받은 후 기술관료로 두각을 나타냈다. 옛 소련식 중앙집권 경제계획의 신봉자로 알려져 있다. 중국의 초대총리로 존경받았던 周恩來(주은래)의 양자. 그러나 천안문 학살에 광범위하게 연루돼 인민들로부터 인기가 매우 낮다. 내년에 총리임기가 끝나며 향후 거취는 불투명. ▼李瑞環▼ 63세. 목공출신으로 한때 국가모범노동자 칭호까지 받았으며 고향인 천진(天津)에서 시장을 지냈다. 천안문유혈사태후 정치국원에 임명됐다. 온건 개혁주의적 성향 때문에 주로 지식인층에서 폭넓은 지지를 받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喬石▼ 절강성태생이며 72세. 중국의 의회격인 전국인민대표대회(全人大)상무위원장이지만 영향력은 주로 국가의 안보 및 정보를 책임졌던 전력에 근거. 16세 때 당료로 출발, 66∼76년 문화혁명 기간중 박해를 받았으나 정치생명을 유지. 87년 축출된 개혁주의자 胡耀邦(호요방)당총서기와의 밀접한 관계에도 불구하고 위상이 계속 높아졌다. 가장 강력한 「킹 메이커」로 지목받고 있다. ▼朱鎔基▼ 91년 부총리로 임명된 뒤 1년만에 국가경제 전반을 책임지는 인물로 부상. 68세. 상해(上海)시 주요당직을 거쳐 88년 江澤民(강택민)에 이어 상해시장을 지냈고 89년 소요당시 상해의 유혈사태를 피해 인민들의 신임이 두터운 편. 실용개혁주의자로 외국에서도 높은 평가를 받고 있으나 경제개혁이 실패할 경우 가장 먼저 표적이 될 위험도 안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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