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료 테러’ 자작극 의혹[횡설수설/신광영]

  • 동아일보

6·3 지방선거를 한 달여 앞둔 4월 27일 부산의 한 교차로. 부산시장에 출마한 개혁신당 정이한 후보(38)가 출근길 유세를 위해 흰색 승용차 앞으로 다가갔다가 갑자기 주저앉았다. 승용차 운전석 문에선 갈색 액체가 흘러내렸다. 정 후보한테서 상황을 들은 개혁신당 측 설명은 이랬다. 운전자가 정 후보를 향해 “어린 놈의 XX가 무슨 시장이냐”며 아이스 커피가 담긴 컵을 던졌다는 것이다. 정 후보가 이를 피하려다 넘어지면서 머리를 다쳤다고 한다. 개혁신당은 “음료 테러”라고 규탄했다.

▷커피를 던진 운전자는 사건 당일 체포됐다. 정 후보와 같은 30대 남성이었다. 정 후보는 이 운전자를 면회한 뒤 언론사 카메라 앞에서 ‘선처 탄원서’라고 쓰인 서류를 경찰에 제출했다. 인터뷰에선 “이번 일로 제 또래들이 느끼는 삶의 무게를 이해하게 됐다”고 했다. 이후 그는 목 보호대를 두르고 유권자들을 만났다.

▷전재수 박형준 양강 구도였던 부산시장 선거에서 정 후보는 인지도가 낮은 정치 신인이었다. 국회의원 비서관과 국무총리비서실 사무관 정도 경력이 전부였다. 하지만 이 사건으로 이름이 널리 알려졌다. 며칠 뒤 정 후보는 지지율 저조로 TV 토론에 배제된 것에 반발해 단식 농성을 했다. 전 후보, 박 후보가 그를 위문하는 장면이 전파를 탔다. 결국 TV 토론에 나오게 된 그는 전 후보에게 거짓말탐지기를 내밀며 통일교 금품수수 의혹에 대한 입장을 밝혀 달라고 했다.

▷정 후보는 선거 직전 가족들과 유세차량에 올랐다. 병원장인 부친과 의대 교수인 부인, 생후 4개월 된 아들과 함께였다. 그는 “아이들이 꿈꿀 수 있는 부산을 만들겠다. 지금은 계란으로 바위 치기지만 부산 시민이 저를 바위로 키워 달라”고 했다. 하지만 먼 미래 다짐이 무색하게도 정 후보는 선거 이튿날 돌연 정계 은퇴를 선언한 뒤 잠적했다.

▷정 후보가 정계를 떠난 그날 경찰은 그의 선거 사무실을 압수수색했다. 커피를 던진 운전자와 짜고 자작극을 벌였는지를 가리겠다는 수사였다. 사건이 벌어지기 전 정 후보가 운전자와 통화했던 기록이 나왔고, 더구나 헬스 트레이너인 그 운전자는 정 후보와 알고 지내던 사이가 아닌지 경찰이 확인 중이다. 뇌진탕 진단을 해준 곳도 정 후보 부친이 운영하는 병원이었다. 정 후보 부친이 이사장으로 있는 고교 교사가 정 후보의 미국 대학 진학을 위해 학생부상 출석 일수 등을 허위 기재해 유죄 판결을 받은 사실도 드러났다. 의혹이 나날이 눈덩이처럼 커지고 있다.

▷이런 사람이 어떻게 부산시장 후보로 정당 공천을 받았는지 의아할 뿐이다. 당 대표가 사과하긴 했지만 검증 실패 책임을 면하긴 어려울 것이다. 테러 자작극이 사실이라면 젊은 정치에 기대를 걸었던 유권자에 대한 배신이고, 민주주의에 대한 테러가 아닐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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