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과 내일/장원재]선거 없는 해 재외선거관은 뭘 했을까

  • 동아일보

장원재 논설위원
장원재 논설위원
중앙선거관리위원회는 재외선거 도입을 앞둔 2011년부터 총 176명의 재외선거관을 해외 공관에 파견했다. 파견 기간은 최대 3년이었다. 그런데 재외선거가 치러지는 총선과 대선은 각각 4년, 5년마다 돌아온다. 그러면 선거가 없는 해에 파견된 선거관은 뭘 했을까.

한 선거관은 현지 한국학교의 학생회장 선거를 지도·감독했다고 한다. 현지 관계자는 “교내 선관위 구성부터, 후보자의 선거운동 방식, 개표 절차까지 단계별로 코칭했다”고 전했다. 해외에 파견된 공무원이 한국학교를 돕는 게 이상한 일은 아니다. 문제는 급여와 별도로 1억 원 이상의 체재비를 혈세로 지원받는 파견 선거관으로선 선거 없는 해가 되면 그만큼 할 일이 없었다는 것이다.

재외선거 홍보했는데 투표자는 줄어

한 아시아 국가에서는 자택에서 술에 취해 자주 고성을 지르는 바람에 이웃 주민들의 항의를 여러 차례 받은 선거관도 있었다고 한다. 이 이야기를 전한 외교 관계자는 “한마디로 나라 망신이었다”고 했다. 물론 해외선거 정보 수집, 투표율 제고 등을 위해 노력한 선거관도 있었을 것이다. 그렇다면 성과는 어땠을까.

지난해 발표된 감사원 감사 결과를 보면 2024년 22대 총선 때 선거관이 파견된 워싱턴, 파리, 도쿄 등 22개 공관의 평균 투표율은 3.7%였다. 선거관이 파견되지 않은 156개 공관 평균(6.8%)의 절반 남짓이었다. 해외에 파견된 20명 안팎의 선관위 소속 주재관들이 투표율 제고에 별 도움이 못 된 것이다. 지난 총선만의 일도 아니었다. 선거관이 파견된 2012년 19대 총선 이후 7번의 선거에서 모두 선거관이 없었던 공관의 투표율이 더 높았다.

오래 준비한다고 투표자가 늘어나는 것도 아니었다. 일본에 선거관이 상주하며 6개월∼1년간 준비한 대선 투표자 수는 2만5312명(2012년), 2만1384명(2017년), 1만8835명(2022년)으로 계속 줄었다. 반면 갑자기 잡힌 지난해 대선 땐 선거관 2명이 급파돼 두 달간 준비했는데, 투표자 수가 2만7453명으로 깜짝 반등했다. 외교부 관계자는 “선거를 여러 번 치르며 대사관과 영사관에 노하우가 쌓여 선거관이 장기간 나와 있을 필요가 없다는 뜻”이라고 해석했다.

현지어 구사 능력이 현저히 떨어지는 선거관도 상당수였다. 2011년 첫 파견 당시 “어학 능력을 따지면 파견할 사람이 없다”고 선관위가 요청해 외교부가 예외를 인정해 줬다. 하지만 이후에도 이 같은 관행이 이어졌다고 한다.

선관위는 “재외동포 대상 업무가 많아 어학 능력이 꼭 필요하진 않다”는 입장이다. 하지만 실제 파견 후에는 한국어가 서툰 동포가 적지 않고, 현지 자료 조사와 기관 협조가 필요하다며 월급 수백만 원을 주고 현지 직원을 채용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2년 전 총선 때만 선관위는 현지 직원의 인건비로 약 10억 원을 썼다. 대사관에 파견된 특정 부처 직원만을 지원하기 위해 전담 직원을 채용하는 경우는 흔치 않다.

성과, 책임 안 따지고 자리 지키기만 급급

현지에서 좋은 평가를 못 받거나, 투표율 올리기에 실패한 선거관도 귀국하면 상당수가 승진했다. 파견은 특혜처럼 주어지고, 성과는 묻지 않으며, 돌아오면 보상받는 구조다.

일이 있든 없든 자리를 늘리고 싶어 하는 건 공무원 조직의 생리다. 선관위는 2011년 첫 파견 때 55명을 22개월 동안 내보냈다가 ‘과도하다’는 비판을 받았다. 그러자 인원을 줄이는 대신에 기간을 최대 3년으로 늘렸다. 이후 장기 파견을 상시화하려다 여론의 역풍을 맞아 좌절됐는데, 2년 전 총선 때는 1년간 22명을 파견했다.

재외선거에서 성과를 못 냈던 선관위는 국내 선거 관리에도 실패해 6·3 지방선거에선 투표용지 부족 사태까지 벌어졌다. 책임은 흐리고 자리는 지키는 선관위의 조직 문화가 낳은 ‘예고된 부실’이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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