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찬용 칼럼니스트‘맞아. 내가 예전에 동아일보에 예능이 권력이라는 원고를 썼지…’라는 생각을 한 곳은 어떤 웹 예능 촬영장이었다. 그 원고를 쓴 뒤 나는 몇 군데 직장을 거쳐 프리랜서가 되었다. 프리랜서니까 불러주는 대로 웬만하면 다 나간다. 내가 변한 만큼 세상도 변했다. 내가 출연한 예능 프로그램은 방송국에서 제작하되 송출을 유튜브로 했다. 그래서인지 진행자는 연예인이고 게스트는 연예인이 아니었다. 영상 출연 경험이 있는 비연예인. 이를테면 나처럼.
잡지 에디터로 일하던 시절에도 방송과 예능계로 진출한 선배들이 있었다. 자리 잡은 선배, 고전하는 선배, “몇 시간을 촬영했는데 내 부분은 다 편집됐다”는 선배도 있었다. 그때는 막연히 ‘다른 영역이니까 어려운 게 당연하지’라고 생각했다. 게스트석에 앉은 당사자가 되어 카메라들과 마주하고 있으니 정말 그럴 만했다. 화살처럼 오가는 말들 사이에서 정신이 없었다. 내가 출연했던 프로그램은 점잖은 편이라 그나마 내가 말할 틈이 있었다. 정통 코미디 예능에선 한마디도 못 했을 것 같다.
방송인 이경규를 인터뷰한 적이 있다. 그는 예능 잘하는 일을 두고 ‘프로그램이 추구하는 바를 표현’하고, ‘대본이 없는데 자기 걸 챙기’고, ‘물줄기를 이쪽으로 돌리’는 일로 정리했다. 게스트 입장이 되어 보니 정말 그랬다. 흐름을 끊지는 않되 흐름을 돌려야 했다. 구체적으로는 A 씨가 하는 말을 끊으며 들어가거나, B 씨가 흘린 말을 받아서 더 키워야 할 때도 있었다. 운동선수 같은 순수 순발력과 베테랑의 경험이 모두 필요했다. A급 예능인들의 비싼 몸값을 새삼 이해했다.
예능에 대해 쓴 몇 년 전 원고에서 나는 예능화가 한국의 특징이라고 했다. 아니었다. 정도 차이만 있을 뿐 예능화는 전 세계적 특징이다. ‘흑백요리사’만 봐도 알 수 있다. 시즌 1 우승자 에드워드 리와 시즌 2 우승자 최강록의 공통점은 예능 경력직이라는 점이다. 최강록은 풍부한 방송 경력으로 이미 캐릭터가 만들어진 상태다. 에드워드 리는 2010년부터 미국 요리 프로그램에 출연했으니 사실상 프로 방송인 수준의 방송 경험이 있다.
그러나 예능 프로그램으로 만든 인지도는 순간 폭발까지다. 그 폭발력을 이어가는 건 자신의 몫과 역량이다. 에드워드 리의 책을 읽으며 깨달았다. 에드워드 리는 글을 엄청나게 잘 쓴다. 경험은 풍부하고 문장은 유려하며 사상은 깊고 표현은 솔직하다. 이렇게 훌륭한 문장가가 요리도 잘하고 방송까지 잘하니 잘될 수밖에. 그는 자신의 책 ‘스모크&피클스’에서 정리했다. “스포츠로서의 요리는 계속될 것이다. 시인과 화가는 조금 괴로워질 것이다.” 시대를 이렇게 간결하게 통찰하는 문장가가 예능을 하고 있을 뿐이다.
즉, 이 시대에 필요한 건 예능적 역량일지도 모른다. 예능적 역량은 무엇일까. 흐름을 끊지 않은 채 내 쪽으로 돌리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결국 매력이 답인 듯하다. 아주 모호하고 가변적인 힘 말이다. 매력의 세계는 정답도 없고 유효기간도 없으며 공평하지도 않다. 하이테크를 통한 무한 채널의 시대에 우리는 정말 어려운 세계에 들어와 버렸다. 각자의 매력을 겨루는 디지털 야생 시대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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