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웅본색을 우린 왜 80번이나 봤을까?”…수없이 되감은 김보성-김민종 35년 의리[유재영의 전국깐부자랑]

  • 동아일보
  • 입력 2025년 12월 20일 13시 00분


[32] 의리 중의 의리, 대한민국 대표 깐부 김보성-김민종


깐부. ‘같은 편’, 나아가 ‘어떤 경우라도 모든 것을 함께 나눌 수 있는 사이’라는 의미의 은어(속어)죠. 제아무리 모두 갖춘 인생이라도 건전하게 교감하는 평생의 벗이 없다면 잘 살았다고 말할 수 있을까요. 좋은 인간관계는 건강에도 긍정적인 영향을 준다고 합니다. 깐부들 사이에 피어나는 ‘같이의 가치’를 소개합니다.


“민종아. 우리 제대로 ‘영웅본색’ 한번 찍자. 형 평생 꿈이야. 의리!” “알았어요. 형. 투자 받아 오세요.” 대한민국 ‘대표 의리남’ 김보성(왼쪽)과 김민종이 다시 의기투합했다. 유재영 기자 elegant@donga.com
“민종아. 우리 제대로 ‘영웅본색’ 한번 찍자. 형 평생 꿈이야. 의리!” “알았어요. 형. 투자 받아 오세요.” 대한민국 ‘대표 의리남’ 김보성(왼쪽)과 김민종이 다시 의기투합했다. 유재영 기자 elegant@donga.com

● 홍콩 느와르 한 장면이 평생의 신조로

“민종이가 주윤발이었고 제가 적룡이었어요.”

의리로는 둘째가라면 서러워할 사람, 배우 김보성은 35년 전 어느 하루를 인생 최고의 날로 기억한다. 배우 김민종을 친동생 같은 평생 인연으로 마음에 새긴 날이다. 둘은 좁은 방에 나란히 앉아 비디오를 틀었다. 1980년대 홍콩 느와르의 상징 ‘영웅본색’ 1편이었다. 주인공을 맡은 배우 저우룬파(주윤발·마크 역)와 티룽(적룡·송자호 역)이 만들어 낸 우정과 의리에 푹 빠졌다. 그 시절 청춘 남자라면 둘 중 하나는 자신 같다는 감정이입을 해 봤을 테다. 두 배우의 진한 감성은 남자들에게 ‘우정의 표준’으로 새겨졌다.

김보성과 김민종은 1989년 신인으로 청춘영화 ‘행복은 성적순이 아니잖아요’ 에 캐스팅돼 서로를 알게 됐다. 그 후 영웅본색을 80번가량 같이 봤다. 우정을 따질 땐 흔히 만난 햇수나 같이 먹은 끼니 수를 따진다. 하지만 둘은 영웅본색 우정의 표준에 걸려들었다. 몇 년간 헤어졌던 저우룬파와 티룽이 재회하는 3분가량 신. 김보성과 김민종은 아예 장면 속 배우들을 따라했다. 저 둘을 닮아 가자고 했다. 영웅본색 주인공들의 우정은 둘의 삶을 관통하는 신조가 됐다. 삶이 흔들릴 때마다 돌아가야 하는 좌표였다. 20일 김보성과 김민종은 서로 얼굴을 보자마자 35년 전 그날 얘기를 한다. 의리의 장면을 재생한다.

## 영웅본색(英雄本色) 한 장면

조직 핵심으로 책임을 떠안고 체포돼 복역하다 출소한 송자호는 택시회사에 취업한다. 자신이 모는 택시에 기대 신문을 보며 큰길 건너편 건물 입구 쪽을 살핀다. 조직에서 형제처럼 지낸 동생 마크가 시야에 들어온다. 허름한 차림에 다리를 절뚝이는 마크가 주차된 승용차 앞 유리를 수건으로 닦는다. 과거 조직에서 송자호와 마크의 부하였던 담성(이자웅 분)이 차에 타면서 마크에게 ‘점심 사 먹으라’며 지폐 몇 장을 내던진다. 마크는 쓸쓸히 돈을 줍는다. 송자호 복역 중에 조직 권력 구도가 바뀌어 담성이 보스가 됐다. 마크는 담성에게 복수하려다 다리에 총을 맞았다. 말을 잇지 못하던 송자호는 마크를 뒤따라간다. 처량하게 혼자 밥을 먹는 마크의 이름을 부른다.

“마크. 편지엔 이런 얘기 없었잖아.”

마크는 음식을 제대로 삼키지 못한다. 눈물을 삼키며 손을 내민다. 둘은 와락 껴안는다.

“마크, 내 다리를 자른다 해도 너에게 보상이 될 수는 없을 거야.”
“바보 같긴. 다 내 잘못이야. 형이랑 상관없어… 다시 보니 기쁘다. 여전히 멋있네.”

김보성과 김민종이 절대 잊지 않고 있다는 ‘영웅본색’ 1편의 명장면. 저우룬파(오른쪽)와 티룽의 감동적인 재회. 유튜브 캡처
김보성과 김민종이 절대 잊지 않고 있다는 ‘영웅본색’ 1편의 명장면. 저우룬파(오른쪽)와 티룽의 감동적인 재회. 유튜브 캡처

김보성과 김민종은 이 장면에서 소중한 것을 알았다.

마크는 송자호를 기다렸다. 부하의 배신으로 인생 밑바닥까지 떨어졌지만 형이 올거라 믿었기에 버텼다. 극적으로 보자마자 알았다. 둘 사이에 원망은 없다. 대신 깊은 이해가 있다는 것을. 우리 관계는 영원히 끝나지 않을 거라는 확신만 남는다.

김보성에게 그 3분은 이렇다.
“민종이하고 저렇게 살면 좋겠다 싶었어요. 제 인생 꿈이 됐죠.”
그 다짐은 35년이 지나도 그대로다.

● 형의 대단한 선택… 어머니의 오곡밥이 만든 가족

영화 ‘행복은 성적 순이 아니잖아요’ 촬영 당시 김보성(가운데)과 김민종. 깊은 인연의 시작이다. 왼쪽은 여주인공 이미연. 김보성 제공
영화 ‘행복은 성적 순이 아니잖아요’ 촬영 당시 김보성(가운데)과 김민종. 깊은 인연의 시작이다. 왼쪽은 여주인공 이미연. 김보성 제공

‘행복은 성적 순이 아니잖아요’에서 김민종은 당초 주인공 고교생 김봉구로 캐스팅됐다. 프로필 포스터까지 찍었다. 김보성은 단역이었다. 제작 과정에서 주연이 교체됐다. 김보성이 김민종 캐릭터에 더 어울린다는 의견이 나왔다. 김보성이 주연을 맡게 됐다. 둘 모두에게 난감한 순간이었다. 김보성은 너무 미안했다.

“민종이가 나중에 맡은 손창수 역할을 하고 싶다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갑자기 주인공을 하라는 거예요. 그때 민종이가 충격을 받고 바닷가에 갔어요.”
“형, 바닷가는 아니고. 한강….”

김보성은 김민종을 찾아갔다. “네가 힘들면 나도 영화 안 할래.”

김보성의 마음 씀씀이에 감동을 받았다. 김민종은 김보성을 만류했다. 실망한 마음을 추스르고 강우석 감독을 찾아가 아무 역할이나 시켜 달라고 했다. 그렇게 반항아 기질이 강한 아웃사이더 손창수 역을 맡았다. 배역 정리가 잘 된 덕인지 영화는 흥행했다. 둘의 관계는 더 단단해졌다.

“최종 캐스팅됐을 때 형하고 그냥 부둥켜안았던 기억이 나요. 형이 배려해 줘서 남자의 의리를 알았죠.”(김민종)

두 사람은 김보성 집에서 영웅본색을 계속 봤다. 김보성 어머니는 김민종에게 늘 오곡밥과 불고기 반찬을 차려 주셨다. “아들 많이 먹어.”

단순한 밥상이 아니었다. 사회에서 만난 형과 동생을 가족으로 이어준 증표다.

“형 어머니를 잊을 수가 없어요. 형 집에 가서 하룻밤 자고 일어나면 늘 그 밥상을 차려 주셨죠. 형과 내 우정을 구현해 주신 분입니다.”





“형. 고마워요. 힘들 때 옆에 있어 줘서.” “민종이 어머님은 내 어머님이지.” 김민종 모친의 묘소를 찾아 동생을 위로하는 김보성(오른쪽). 두 사람이 어머니 사랑을 추억하고 있다.  SBS ‘미운우리새끼’ 유튜브 캡처
“형. 고마워요. 힘들 때 옆에 있어 줘서.” “민종이 어머님은 내 어머님이지.” 김민종 모친의 묘소를 찾아 동생을 위로하는 김보성(오른쪽). 두 사람이 어머니 사랑을 추억하고 있다. SBS ‘미운우리새끼’ 유튜브 캡처

형 어머니를 기억하다 보니 김민종 눈가가 촉촉해진다. 2020년 갑자기 운명을 달리한 자신의 어머니가 생각난다. 잘해 드린 게 없어 후회가 많이 남는다.

“지금 어머니가 많이 아프셔서 입원해 계시는데 민종이가 자주 찾아와요. 어머니가 민종이만 오면 힘을 내세요. ‘또 왔네. 또 왔네’ 하시더라고요.”(김보성)

“형. 사랑한다는 말을 자주 해 드리세요. 우리 어머니 살아 계실 때는 그 말이 참 어색했어요. 내가 어머니한테 하지 못한 교감을 형은 나눴으면 해요.”

“민종아. 어머니가 음식을 전혀 못 드시는데 며칠 전에 네가 그랬잖아. ‘형이 말하는 걸 어머니는 다 알아들으신다. 사랑한다는 말을 들으실 수 있다는 것만으로 형은 행운이다.’ 민종이는 저보다 어른이에요. 형 같은 동생이라고 할까. 민종이하고 멀어질 수 있다는 생각이 안 들어요. 사람끼리 친하다가 안 좋을 수도 있는데 민종이하고는 전혀 그럴 일 없을 겁니다. 친동생한테 미안하지만 민종이가 더 친동생 같아요.”

● 가장 먼저 달려와 줄 한 사람

김보성(오른쪽)과 김민종의 우정을 다룬 1993년 신문기사. 김보성은 김민종과 볼 만한 액션영화에 같이 출연하고 싶다는 희망을 얘기했다. 김보성 제공
김보성(오른쪽)과 김민종의 우정을 다룬 1993년 신문기사. 김보성은 김민종과 볼 만한 액션영화에 같이 출연하고 싶다는 희망을 얘기했다. 김보성 제공

누구와 비교할 수 없다. 김민종에게 김보성은 무슨 일이 생겼을 때 “가장 먼저 달려와 줄 단 한 사람”이다.

“무조건 김보성 형이죠. 비행기나 배가 못 뜬다고 해도 수단 방법 안 가리고 올 거예요. 그 믿음이 저에겐 자신감과 의지가 돼요. 제가 자신있게 연예 활동을 할 수 있는 이유에요.”

그렇다면 김보성에게 김민종이란? 망설임 없이 말한다.

“기꺼이 목숨을 내놓을 수 있는 유일한 사람입니다. 민종이를 위해서라면 죽을 수 있어요.”

김민종은 형이 참 고맙다. 오래 아껴둔 김보성을 수식하는 문구가 있다. 한 번도 얘기해 주지 않았지만. 고마워 불러 본다.

“형은 나의 1호 연예인이에요. 2호는 이경영 형이고. 형이 1호에요.”

김보성이 눈물을 쏟는다. “진짜?”라고 물으며 또 운다.

“형 때문에 김민종의 역사가 시작된 거잖아요. 뜨거웠던 사춘기 시절을 아주 멋지게 장식해 준 형이니 무엇과도 바꿀 수 없죠. 다른 사람이 넘볼 수 없는 진한 감성이 있어요. 형과 저 사이에는.”

김보성으로선 별 볼 일 없는 형인데 이렇게 거창하게 생각해 줄 줄은 몰랐다.

동생은 형이 건강을 챙기면서 오래 옆에 있어 주길 원한다.

“형. 이제 격투기 그만해요. 형 맞는 걸 도저히 못 보겠어. 의리로만 나와 치고받고 합시다.”
“민종아. 나눔의 의리를 보여줘야 하니까 한 번만 이해해 주라. 정의와 의리를 하도 외쳐서 내가 막살 수도, 가만있을 수도 없어. 김보성 삶은 ‘다 주으리’ 인생 아니냐. 걱정하지 마. 하하.”

“보성이 형, 격투기 그만하고 의리 대결하자고요.”  이렇게 걱정하고 보듬으니 동생이 형 같다. 유재영 기자 elegant@domga.com
“보성이 형, 격투기 그만하고 의리 대결하자고요.” 이렇게 걱정하고 보듬으니 동생이 형 같다. 유재영 기자 elegant@domga.com

● 형과의 애틋한 감정이 영화 캐스팅으로


김민종은 20년 만에 영화 ‘피렌체’ 주인공으로 스크린에 돌아온다. 내년 1월 7일 개봉이다. 이탈리아에서 전부 찍었다. 중년 남자가 과거의 상실을 지나 자신을 회복하는 이야기다. 올 10월 미국 글로벌 스테이지 할리우드 필름 페스티벌에서 작품상, 감독상, 각본상 3관왕을 차지했다. 김민종이 등장하는 예고편 릴스 조회수도 1억1000만 회를 넘어섰다. 이 작품의 시작에도 김보성이 있었다. 함께 출연한 방송에서 두 사람이 보여준 어머니를 향한 감정이 감독의 마음을 움직였다.

“처음 얘기하는 건데, 형 때문에 내가 캐스팅된 거예요. 보성이 형하고 나온 SBS ‘미운 우리 새끼(미우새)’를 보고 감독께서 저를 선택하셨다고 해요.”

어머니 돌아가시고 얼마 안 돼 묘소에서 어머니를 추억했다. 김보성이 생전 김민종 어머니가 좋아한 안개꽃을 들고 왔다.

“형과 함께 어머니에 연결된 저의 감정선이 피렌체 주인공 정서와 딱 맞았다는 말씀을 해주셨어요. 미우새 제작진한테도 참 감사해요. 부모 자식 사이 소통의 중요성을 알게 해 준 멋진 프로그램입니다. 형은요. 또 자신감을 줬어요. 중년의 저를 감성적으로 잘 받아 줘요. 최고의 형입니다.”

“방송을 떠나서 정말 내 가슴에서 우러나온 거야. ‘친동생’이니까. 그 마음이 진실이 아니라면 어떻게 영웅본색 얘기를 하겠냐. 하하.”

김보성이 십수 년 전 김민종을 생각하며 쓴 시. 그동안 남에게 보여준 적이 없다. 다음 세상에도 형제로 만나길 바란다는 마음을 실었다. 김보성 제공
김보성이 십수 년 전 김민종을 생각하며 쓴 시. 그동안 남에게 보여준 적이 없다. 다음 세상에도 형제로 만나길 바란다는 마음을 실었다. 김보성 제공

김민종을 향한 직진은 한결같다.

“민종아, 나는 불교의 윤회를 믿어. 인연의 순환 속에서 재회한다는 희망이잖아. 너한테만 그런 운명적인 느낌을 받아.”

영웅본색 주제가 ‘당년정(當年情)’에 이런 구절이 있다.

今日我 与你又试肩并肩
오늘, 나 다시 너와 어깨를 나란히 하고

어제도, 오늘도, 내일도 계속 의리를 외치고, 외칠 두 사람. 김보성 제공
어제도, 오늘도, 내일도 계속 의리를 외치고, 외칠 두 사람. 김보성 제공

当年情 此刻是添上新鲜
그때의 정은 지금 이 순간 새로움을 더해가네

一望你 眼里温暖已通电
널 바라보니 눈 속의 따스함이 이미 통하고

心里边 从前梦一点未改变
마음 속 이전의 꿈은 조금도 변하질 않았네

이런 포즈 그대로 김보성 김민종 주연 ‘영웅본색’ 포스터가 됐으면 한다. 유재영 기자 elegant@donga.com
이런 포즈 그대로 김보성 김민종 주연 ‘영웅본색’ 포스터가 됐으면 한다. 유재영 기자 elegant@donga.com

● 비디오는 끝났지만 의리는 여전히 재생 중

둘은 틈만 나면 영웅본색을 이야기한다. 김보성은 진짜 영화를 찍고 싶다. 진지하다. 시간이 흘러도, 세상이 바뀌어도 어떤 관계는 끊어지지 않는다. 떨어뜨리려는 힘이 작동해도 끝내 남는 인연이 있다. 35년 넘게 둘이 증명해 왔다. 이를 영화로 남기고 싶다.

“민종이하고 영웅본색 찍잖아? 그러면 은퇴해도 상관없어. 평생 꿈이거든. 그 영화 하나면 돼, 민종아.”

“형이 투자자 끌어오면 무조건 할게요. 당연한 정이지.”

“정말이지? (문서로 남겨 놓으려는 제스처) 나, 또 눈물 나려고 해.”

비디오 재생 버튼 하나가 둘의 평생을 결정했다. 언젠가 또 누를 것 같다.
#깐부#우정#영웅본색#의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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