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50원대 고환율 시대, 이달 주요 9개국중 가장 큰폭 올라

  • 동아일보

서학개미 투자 늘고 달러 수요 급증
원-달러 보름새 1.4% 뛰어 1453원
“외인 국채 계속 팔땐 1500원 갈수도”

서울 외환시장에서 원·달러 환율이 전 거래일 주간거래 종가(1467.7원)보다 10.7원 오른 1457.0원에 주간 거래를 마감한 14일 오후 서울 중구 하나은행 본점 딜링룸에서 딜러가 업무를 수행하고 있다. [서울=뉴시스]
서울 외환시장에서 원·달러 환율이 전 거래일 주간거래 종가(1467.7원)보다 10.7원 오른 1457.0원에 주간 거래를 마감한 14일 오후 서울 중구 하나은행 본점 딜링룸에서 딜러가 업무를 수행하고 있다. [서울=뉴시스]
한미 관세 협상의 세부 작업이 막바지였던 11월 초 보름 동안 원-달러 환율이 다른 주요국 통화들에 비해 유독 많이 오른 것으로 나타났다. 올해 들어 연평균 환율은 국제통화기금(IMF) 외환위기 직후인 1998년 평균 환율(1394.97원)을 넘어서 사상 처음 1415원대에 올라섰다. 미국 주식을 사들이는 ‘서학개미’들과 미국에 투자하는 기업들이 늘어 원화 대신 달러화를 찾는 수요가 증가한 영향으로 풀이된다. 미국 기준금리 인하 기대가 옅어지며 투자자들은 안전자산인 달러를 더 사들이고 있다.

16일 서울 외환시장에 따르면 14일 원-달러 환율의 야간 거래 종가(15일 오전 2시 기준)는 1453.10원으로, 지난달 31일 1433.00원에 비해 1.4% 뛰었다. 같은 기간 미 뉴욕시장에서 거래된 일본 엔화, 중국 위안화, 유로화, 영국 파운드화 등 주요 8개 통화의 환율보다 더 상승했다. 한국은행에 따르면 올해 들어 14일(오후 3시 반)까지 평균 원-달러 환율은 1415.28원으로, 1998년 연평균 환율을 넘어 역대 처음으로 1415원을 뛰어넘었다.

서학개미들과 한국 기업들이 미국 투자를 위해 원화를 달러화로 대거 바꾸며 원-달러 환율이 오른 것으로 분석된다. 외국인투자가들은 이달 들어 코스피에서만 9조 원 넘게 순매도했고, 같은 기간 서학개미들은 미국 주식을 36억3376만 달러(약 5조2889억 원) 순매수했다.

미국 연방준비제도(Fed·연준)의 금리 인하가 늦어지며 불확실성이 커지자 비교적 위험자산인 한국의 주식과 채권을 팔고 안전자산인 달러화를 사두려는 투자자들이 늘었다.

시장에서도 환율 전망치를 올리고 있다. KB증권은 올해 4분기(10∼12월) 원-달러 환율을 1420원으로 전망하면서도 외국인들이 국채를 계속 팔 경우 1500원까지 오를 수 있다고 내다봤다.

외국인 9조 팔고, 서학개미 5조 美투자… 달러 수요 늘어 환율 상승


[뉴노멀이 된 고환율]
환율 6거래일 연속 1450원 웃돌아… ‘달러 공급처’ 기업은 환전 미뤄
“1500원 갈수도” 물가 상승 우려… 국민연금 환헤지 등 안정방안 거론

원-달러 환율의 주간 거래 기준 종가가 7일부터 6거래일 연속 1450원을 웃돌고 있다. 탄핵 정국, 도널드 트럼프 미국 행정부의 관세 발표가 이어진 3∼4월 이후 다시 고환율의 일상화가 재연됐다. 당시에는 달러화가 강세였지만 현재는 ‘약달러’ 상황이라 원화의 약세가 더 특징적이라는 평가가 나온다.

● 서학 개미 이달 2주간 사들인 美주식, 전달의 절반 넘어

달러 수요가 폭발적으로 늘면서 수급에 균열이 생겼다. 16일 한국예탁결제원에 따르면 이달 3∼14일 국내 투자자들은 미국 주식 36억3376만 달러(약 5조2889억 원)어치를 순매수했다. 서학 개미들의 이달 미국 주식 매수 추세는 지난달보다도 빠르다. 지난달 서학 개미는 미국 주식을 68억5499만 달러 순매수했는데, 이달 들어 2주간 이미 전달 순매수 규모의 절반을 넘어섰다.

서학 개미들은 미국 주식이 급락할 때마다 저가 매수에 나섰다. 빅테크 기업 메타가 지난달 30일 실적 발표 후 주가가 급락하자 서학 개미들은 하락세인 메타 주식을 5억5988만 달러나 사들였고, 메타 주가의 움직임을 두 배로 추종하는 상장지수펀드(ETF)도 2억7079만 달러나 사들였다.

미국 주식 투자를 위한 달러 환전은 느는데, 국내 달러 공급은 더뎌 원-달러 환율이 더 오르고 있다. 익명을 요청한 외환시장 관계자는 “달러 수요가 늘고 있어 미국에 투자를 늘려야 하는 기업들이 달러를 원화로 환전할 유인이 줄었다”며 “외국 시장에서 벌어온 달러가 시중에 공급되지 않고, ‘경상수지 흑자가 곧 원화 강세’였던 과거 공식도 흔들리고 있다”고 말했다.

● 물가, 금리, 증시 모두 불확실

글로벌 경기 상황이 불확실해지며 안전자산인 달러 수요가 는 점도 환율 상승의 요인이다. 미국 연방준비제도(Fed·연준)의 매파 인사들이 잇따라 관세 정책으로 인한 물가 상승 우려를 내놓으며 다음 달 금리 인하 가능성이 상당히 낮아졌다. 한국과 미국의 기준금리가 역전된 상태로 39개월이나 이어지는 상황에서 외화가 유인될 요인이 더 줄어든 셈이다. 외국인 투자가들은 이달 들어 국채 3조5937억 원 규모를 팔아치웠다.

또 AI 관련 주식 고평가 논란으로 글로벌 증시가 흔들릴 때마다 외국인 투자가들은 급격하게 오른 국내 반도체 주식을 팔며 차익 실현에 나섰다. 외국인 투자가들은 이달 들어 코스피에서 9조1279억 원을 순매도했는데, 이 중 85%가 SK하이닉스(5조7515억 원), 삼성전자(2조375억 원)였다.

고령화로 향후 한국의 장기 저성장이 우려되는 구조적 문제도 있다. 하인환 KB증권 연구원은 “일본처럼 기업은 성장하면서 가계가 빈곤해지면 증시는 성장하는데 원화의 약세가 장기화되는 상황이 이어질 수 있다”고 설명했다.

● “원-달러 환율 1500원까지 오를 수도”

원-달러 환율이 계속 오르면 수입 물가가 상승해 국내 소비자들과 기업들의 비용 부담이 커질 수 있다. 류진이 KB증권 연구원은 “높아진 환율은 원자재 수입 의존도가 높은 기업과 산업에 부담을 키울 수 있다”고 분석했다.

외국 자본이 국내 증시를 외면하고 한국 투자를 꺼리면 장기적으로 한국 경제 성장도 지장을 받을 수밖에 없다. 석병훈 이화여대 경제학부 교수는 “한국과 미국 경제의 기초체력 격차가 벌어졌다는 (투자자들의) 판단이 환율에 나타난 것”이라며 “기업들의 대미 투자가 계속 는다면 원-달러 환율이 1500원 수준까지 올라갈 수 있다”고 관측했다.

뛰는 환율을 잡을 해결사로 국민연금의 환 헤지가 거론됐다. 구윤철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14일 “국민연금과 수출업체 등 주요 수급 주체들과 긴밀히 논의해 환율 안정 방안을 마련하겠다”고 밝혔는데, 시장에서는 이를 국민연금의 환 헤지를 통한 시장 개입으로 받아들였다. 다만 국민연금을 동원해 외환시장 안정에 나서면 장기적인 수익률은 손해가 발생할 수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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