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 고흐, 영혼을 담은 인물화/파스칼 보나푸 지음·이세진 옮김/296쪽·2만9000원·미술문화
생전 인물화 작업에 큰 애착 보여
모델료 부족해 자화상 그리기도
“내가 제일 좋아하는 것, 나의 직업에서 나머지 전부보다 훨씬 더, 아주 많이 좋아하는 것은 초상화 작업이야. … 내가 한 세기 후의 사람들에게 환영처럼 보일 초상화들을 그렸으면 좋겠어. … 현대적 색채 감각을, 개성을 고양하고 표현하는 수단으로 활용하여 그렇게 하려고 노력해.”
1890년 6월 5일 빈센트 반 고흐가 여동생에게 보낸 편지다. 오늘날엔 반 고흐의 그림 가운데 ‘별이 빛나는 밤’이나 ‘해바라기’ 등이 특히 폭넓은 사랑을 받고 있지만, 생전 화가는 인물화에 큰 애착이 있었다. “나는 인물, 인물, 여전히 인물을 그리고 싶다네. 그 갈망을 다스릴 수가 없네.”(1888년 에밀 베르나르에게)와 같은 편지가 이를 뒷받침한다.
전시 기획자이자 프랑스 파리8대학에서 미술사를 오래 가르쳤던 저명 학자가 반 고흐가 남긴 편지 수백 통과 초상화 및 자화상 150여 점을 통해 화가의 내면과 예술 세계를 조명한 책이다.
반 고흐가 그린 인물은 소수를 제외하면 거의 제3신분(성직자와 귀족이 아닌 농민과 도시민)이었다. 노인, 어부, 매춘부, 농부 등이 화가의 캔버스 앞에 섰다. 초상화가 뭔지도 모르는 사람들이 대부분이었다. 저자는 “중요한 인물이었던 적이 없는 사람들에게 그들의 자리를 내어주는 것을 빈센트는 자신의 사명으로 삼았다”고 했다.
모델료는 오랫동안 반 고흐의 걱정거리였다. 드물지만 화가의 어려운 형편을 모델이 알아차릴 때도 있었다. 1882년 편지에 따르면 어느 날은 ‘오지 말라’고 했는데도 모델이 찾아왔다. 포즈를 취하러 온 게 아니라, 먹을 것은 있는지 보러 왔던 것이었다. 강낭콩과 감자를 갖고. 반 고흐는 “인생에는 그래도 애쓸 가치가 있는 것들이 있구나”라고 썼다. 모델을 구하기 어려웠던 반 고흐는 결국 자신을 그렸고, 그렇게 걸작으로 손꼽히는 그의 자화상들이 탄생했다.
저자는 에턴과 헤이그를 시작으로 뉘넌, 안트베르펜, 파리, 아를, 생레미드프로방스를 거쳐 종착지 오베르쉬르우아즈까지 화가의 행적을 따라가며 그의 초상화를 좇는다. 책장을 넘기다 보면 초상화엔 “화가의 영혼 깊은 데서 우러난 독자적 생명력”이 있다던 화가의 말에 고개가 끄덕여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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