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방관들은 워낙 건강해 보이니까, 정신적 힘듦을 이겨내는 노하우가 있다고 생각했어요. 그런데…, 그냥 참고 있는 것뿐이더라고요.”
3일 서울 중구 명동대성당에서 만난 천주교 서울대교구 직장사목팀의 강혁준 아우구스티노 신부(소방공무원 사목 담당)는 외상후스트레스장애(PTSD)나 우울증 등 정신적 고통을 겪는 소방관들에 대한 관심과 지원이 절실하다고 강조했다.
서울대교구는 2018년 8월 전 교구 중 처음으로 소방공무원 담당 사목을 신설했다. 강 신부는 지금까지 7년 째 전문 상담·치유사 및 자원봉사자들과 함께 개별 및 집단 상담, 예술 치료 등을 통해 소방관들의 마음 건강을 돕고 있다.
강 신부는 “흔히 소방관이 위험한 재난 현장에서 많이 숨진다고 생각하지만, 실제로는 순직보다 극단적 선택이 더 많다”라고 했다. 최근 소방청이 국회 국정감사에 제출한 자료를 보더라도, 2015~2024년 위험 직무 순직 공무원은 35명. 반면 같은 기간 극단적 선택은 134명에 이른다. 지난 여름엔 2022년 이태원 참사 현장에 출동했던 소방관 2명이 잇달아 숨진 채 발견됐다. 두 사람 모두 여러 차례 심리 상담 및 치료를 받은 것으로 알려져 안타까움이 컸다.
소방관들의 심리적 건강도 적신호를 보내고 있다. 지난해 소방청의 전체 소방공무원 마음 건강 상태 설문조사에 따르면 6만여 명 중 4375명(7.2%)이 PTSD로 치료받고 있었다. 극단적 선택 시도로 인한 치료는 3141명(5.2%), 우울증은 3937명(6.5%), 수면장애는 1만6921명(27.9%)이었다. 거의 절반(46.8%)이 정신적 고통을 겪고 있는 셈이다.
강 신부는 “한 은퇴한 소방관은 지금도 눈을 감으면 화상(火傷)을 입고 엄마를 찾다가 숨진 아이의 울음소리가 들려 치료를 받고 있다”며 “많은 소방관이 몸이 아프거나 마음이 힘들 때 환청, 환각, 탄 냄새 등이 나타나는 증상을 겪는다”고 했다. 소방관 중엔 김치나 회를 못 먹는 이들도 상당수라고 한다. 김치는 피, 회는 인명 피해 현장을 연상시키기 때문이다.
“소방관들의 마음 건강은 치료도 필요하지만, 운동으로 평소 몸 건강을 관리하듯 예방하는 게 중요해요. 평상시에 마음 회복 탄력성을 높이는 프로그램을 제공하고 지속해서 단련하는 게 가장 좋습니다. 그런데 워낙 일이 힘들고, 긴급 출동이 많아 꾸준히 단련할 시간을 갖는 게 쉽지 않아요.”
때문에 각 소방서에서 마음 건강 단련·치료 프로그램을 꼭 근무 시간에 했으면 좋겠다고도 권했다. 강 신부는 “안 그래도 힘들어 쉬고 싶은데, 근무 끝난 뒤 누가 하고 싶겠느냐”라며 “소방관들도 ‘난 괜찮은데 무슨 치료를 받아’라고 생각하면 안 된다”고 했다. 머리로는 괜찮은 것 같아도, 자신도 모르게 증상이 쌓여 시간이 지난 뒤 나타나는 경우가 많다.
가톨릭 전 교구에서 소방관 담당 사목은 강 신부가 유일하다. 소방관 전담직도 10여 년간 경찰 사목을 담당하며 소방관들의 고충을 알게 된 그가 당시 서울대교구 총대리였던 손희송 주교에게 건의해 신설됐다.
“한 구급차 소방관은 위급 환자를 태우고 병원 ‘뺑뺑이’를 하다 결국 집에 내려줬던 일을 겪은 뒤 지금도 운전대를 못 잡고 있어요. 그만큼 소방관들은 다양한 종류의 정신적 고통에 시달리고 있습니다. 소방관 처우를 개선해야 한단 공감대가 널리 형성돼 있는 만큼, 이들의 마음 건강을 돕는데도 사회의 적극적인 지원이 필요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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