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도널드 트럼프 2기 행정부가 북한 국적자 8명과 기관 2곳을 사이버범죄 등 불법 활동으로 얻은 자금을 세탁하는 데 관여한 혐의로 제재 대상으로 지정한다고 4일(현지 시간) 밝혔다. 미 재무부는 “이들은 북한 정권의 무기 개발을 위한 수익을 창출해 미국과 전 세계의 안보를 직접적으로 위협하고 있다”고 했다.
전날 미 국무부는 유엔 제재를 위반한 채 중국에 북한산 석탄과 철광석 등을 운반한 제3국 선박 7척에 대해 “즉시 유엔 제재 대상으로 지정해야 한다”고 밝힌 바 있다. 올 1월 트럼프 2기 출범 후 처음으로 북한 관련 유엔 제재를 요청한 것. 이어 불과 하루 뒤엔 북한 국적 개인과 기관을 대거 제재 리스트에 추가한 것이다. 이에 지난달 말 경주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를 계기로 방한한 트럼프 대통령이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에게 수차례 만나자고 했지만 북한이 불응한 게 연이은 제재 조치 결정에 영향을 끼친 것 아니냐는 분석도 제기된다.
미 재무부 해외자산통제국(OFAC)은 이날 “북한이 후원하는 해커들은 정권의 핵무기 프로그램을 지원하기 위해 돈을 훔치고 세탁한다”며 “재무부는 북한의 불법 수익원을 차단하기 위해 이러한 행위의 중개자와 조력자들을 계속 추적할 것”이라고 밝혔다.
재무부에 따르면, 북한 국적의 장국철과 허정선은 북한 은행원으로 530만 달러(약 76억 원) 상당의 암호화폐(가상자산) 등 자금을 관리했다. 재무부는 이 자금 일부가 미국인을 공격한 적이 있는 북한 랜섬웨어 조직과 연계된 것으로 보고 있다. 이에 이들을 북한 정권이나 노동당을 위해 수익 창출 활동에 관여한 북한인으로 판단해 제재 대상으로 지정했다.
북한 조선만경대컴퓨터기술회사와 그 회사 대표인 우영수는 중국인 명의를 이용해 불법 자금 출처를 숨긴 혐의로 제재 대상에 추가됐다. 또 제재 명단에 이름을 올린 류정신용은행의 경우 북한 금융기관으로, 제재 회피를 목적으로 북한과 중국 간 금융거래를 수행했다. 허용철·한홍길·정성혁·최춘범·리진혁 등은 중국 또는 러시아에 기반을 둔 북한 금융기관 대표들로, 이들은 미국 제재 대상인 북한 금융기관을 대신해 자금 송금 및 세탁 등에 관여했다.
재무부는 “북한은 WMD(대량살상무기)와 탄도미사일 프로그램 자금을 조달하기 위해 사이버범죄를 포함한 다양한 불법 행위에 의존하고 있다”며 “해커들에게 불법 수익 창출 임무를 부여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어 “북한 사이버 범죄자들은 고급 사이버 첩보 활동 수행, 파괴적인 공격, 금융 절도에 나서고 있다”면서 “지난 3년간 북한 연계 사이버 범죄자들은 주로 암호화폐 형태로 30억 달러(약 4조3200억 원) 이상을 탈취했다”고 덧붙였다. 그러면서 이러한 범죄 과정에서 고도화된 악성코드와 사회공학 기법 등이 활용됐다고 설명했다.
미 정부의 제재 리스트에 이름을 올라간 개인 및 기관의 모든 자산은 동결된다. 재무부 허가 없이 이들과 거래하는 것은 금지되고, 위반 시 제재나 법적 조치를 받을 수 있다. 다만 재무부는 “제재의 목표는 처벌이 아니라 행태의 변화를 유도하는 것”이라고 했다.
앞서 3일 국무부 관계자는 언론 브리핑을 통해 “7척의 선박이 불법적으로 북한산 석탄과 철광석을 중국으로 운송·하역한 것으로 나타났다”면서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안보리) 산하 대북제재위원회에 이 선박들에 대한 제재를 요청하겠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이 선박들은 북한의 핵 야망을 가능케 하는 물적 수단”이라며 “이번 제재 추진은 각국 해운업체와 보험사 등에 북한의 불법 밀수 행위에 가담하지 말라고 보내는 강력한 메시지”라고 강조했다.
이 같이 북한 제재 관련 발표가 잇따라 나오자 트럼프 행정부의 대북 전략이 일부 조정된 것 아니냐는 해석이 나온다. 트럼프 대통령이 최근 방한을 계기로 북-미 정상 회동을 시도했지만 무산되면서, ‘당근’은 물론 ‘채찍’까지 병행하는 방식으로 노선을 틀었을 수 있다는 것. 다만 국무부 관계자는 이와 관련해 전날 “이번 조치는 몇 달 동안 준비해 왔던 사안”이라며 선을 그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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