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들은 믿어주는 어른이 필요… 한명만 함께 걸어도 다시 일어서”

  • 동아일보

자립청소년 알바 대타 뛰다 편의점 인수한 신부님, ‘별바라기’ 관장 송원섭 베드로
아동복지시설 나온 18세 아이… 자립은 ‘맨땅에 헤딩’과 같아
우울-무기력 증상 보인 60여명… 쉽게 포기 않도록 적응 도와
학대한 보육시설 고발도 진행

송원섭 신부는 “아이들의 홀로서기가 느린 것은 게을러서가 아니라 어릴 때 필요한 경험과 사랑을 못 받았기 때문”이라며 “오래 걸릴 수는 있지만, 스스로를 믿게 하고 희망을 품게 해준다면 얼마든지 혼자 설 수 있다”고 말했다. 인천=신원건 기자 laputa@donga.com
송원섭 신부는 “아이들의 홀로서기가 느린 것은 게을러서가 아니라 어릴 때 필요한 경험과 사랑을 못 받았기 때문”이라며 “오래 걸릴 수는 있지만, 스스로를 믿게 하고 희망을 품게 해준다면 얼마든지 혼자 설 수 있다”고 말했다. 인천=신원건 기자 laputa@donga.com
특이한 신부가 하나 있다.

편의점 ‘알바 대타’를 뛰고, 그도 모자라 가게를 인수까지 해버렸다. 낮에는 청소년을 학대하는 보육시설을 경찰에 고발하고, 밤마다 청소년들과 함께 운동한다. 그러기를 10여 년.

22일 인천 부평구 인천청소년자립지원관 ‘별바라기’에서 만난 송원섭 베드로 신부(관장)는 “자립준비청년들에게 가장 절실하게 필요한 건 그들을 믿어주는 어른”이라며 “함께 걸어주는 단 한 사람만 있어도, 아이들은 다시 앞으로 나아갈 수 있다”고 말했다.

자립준비청년은 아동복지시설, 쉼터, 위탁가정 등에 있다가 만 18세가 돼 시설을 나온 18∼24세 청년. 정부와 지방자치단체가 약간의 자립 지원금, 숙소 등을 지원하지만, 사실상 이들에게 자립은 ‘맨땅에 헤딩’이나 다를 바 없다.

‘별바라기’는 이런 자립준비청년 중 우울증, 무기력, 경계선 지능 등 심리적·정서적 치료가 필요한 청년들 60여 명을 송 신부와 10명의 사회복지사가 돌보는 곳이다. 2013년부터 관장을 맡고 있는 그는 “이런 청년들은 보육시설을 나와도 바로 사회생활을 할 수가 없기에 이곳에서 먼저 치료와 사회 적응 훈련을 한 뒤 나아지면 자립하는 과정을 거친다”고 설명했다.

얼핏 보육시설에서 살았다고 하면 자립심이나 생활력이 강할 것 같지만 현실은 반대인 경우가 많단다. 제대로 된 훈육을 받은 경험이 없다 보니 조금만 힘들어 보여도 포기하고 시도조차 하지 않는 습관이 배어 있는 경우가 많다.

“아이들이 힘든 일도 안 해보고, 대인 관계에도 어려움을 겪다 보니 사회 적응 훈련이 필요했어요. 편의점 아르바이트를 하면 여러 사람을 만나니 도움이 되겠다 싶었죠. 그래서 인근 편의점 사장님들과 계약해 정식으로 채용됐는데, 힘드니까 갑자기 전화해서 ‘아프다’며 새벽 근무를 안 나가는 일이 벌어지더라고요.”

밤새 남의 가게를 비워둘 수는 없는 일. 결국 ‘빵꾸’가 날 때마다 알바 대타는 그의 몫이 됐다. 좋은 마음으로 아이들을 채용해 준 편의점 사장들에게 더 이상 폐를 끼칠 수가 없어, 아예 인근 편의점을 직접 인수해 사회 적응 훈련장으로 이용하고 있다.

보육시설 고발은 마음의 문을 연 아이들의 말을 듣고 충격을 받아 벌어졌다. 지난해 경찰에 고발해 1곳을 폐업시켰고, 현재 2곳을 수사 의뢰한 상태다.

“자립준비청년 중에 아르바이트비로 자기가 한 살 때부터 살던 영유아 보육원 3∼5세 동생들을 늘 챙기는 애가 있어요. 8세가 되면 영유아 보육원을 나와 청소년 보육시설로 옮겨야 하는데, 동생들에게 늘 ‘거긴 절대로 가면 안 된다’고 당부하더라고요.”

송 신부는 “자기가 거기 나왔는데, 말도 못 하게 학대당했기 때문이라고 울면서 말하더라”며 “웬만하면 고발 같은 거 잘 못 하는데, 도저히 참을 수가 없었다”고 했다.

자립지원관 이름인 ‘별바라기’는 캄캄한 밤을 혼자 걷는 자립준비청년들에게 희망의 등불이 돼주자는 뜻이다. 송 신부는 “혼자 자립해야 하는 청소년들은 ‘엄마가 너무 그립고, 아빠가 너무 보고 싶어요’ ‘너무 외롭고, 쓸쓸하고, 슬퍼요’라는 말을 가장 많이 한다”며 “부모가 돼줄 수는 없지만, 그런 마음으로 함께하면 반드시 (아이들도) 달라진다는 걸 오히려 아이들을 통해 배우고 있다”고 했다.

#별바라기#송원섭 베드로#청소년 자립#보육시설#자립준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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