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의 향기]월드푸드 된 중화요리… 레시피는 ‘무한 변주’

  • 동아일보

쓰촨요리학교 최초의 서양인으로 30년간 중국-중식 탐구해 온 저자
지리적-문화적 환경에 의해 발전… 식감-풍미 등 세세하게 정성 들여
‘콩’ 이용한 두유-두부 음식 발달… 유럽의 치즈처럼 제조 방법 다양
◇웍과 칼/퓨샤 던롭 지음·윤영수 박경환 옮김/552쪽·3만2000원·글항아리

신간은 서양인 최초로 중국 쓰촨고등요리학교에서 셰프 훈련을 받고, 30년간 중국과 중식을 탐구해 온 영국인 저자가 쓴 책이다. 중국요리를 둘러싼 역사적 배경과 사회적 맥락을 담아 음식 이상의 이야기를 전한다. 게티이미지코리아
신간은 서양인 최초로 중국 쓰촨고등요리학교에서 셰프 훈련을 받고, 30년간 중국과 중식을 탐구해 온 영국인 저자가 쓴 책이다. 중국요리를 둘러싼 역사적 배경과 사회적 맥락을 담아 음식 이상의 이야기를 전한다. 게티이미지코리아
중국요리의 적응력은 실로 경이롭다. 서울은 물론이고 뉴욕과 바그다드, 스톡홀름, 나이로비, 퍼스, 리마까지. 세계 어디를 가든 중국요리를 마주치게 된다. 거의 모든 나라에는 ‘현지화된’ 중국요리가 있다. 그리고 그 음식 뒤엔 한국의 짜장면만큼 많은 뒷이야기가 숨어 있다.

서양인 최초로 중국 쓰촨고등요리학교에서 셰프 훈련을 받고, 30년간 중국과 중식을 탐구해온 영국인 저자가 쓴 중국미식인류학 책이다. 중국요리를 둘러싼 역사적 배경과 사회적 맥락을 담아 음식 이상의 이야기를 전한다.

서구에서 중식은 어떤 이미지일까. 저자에 따르면 “이토록 깊이 사랑받으면서 동시에 이토록 학대받는 요리는 아마 또 없을 것”이다. 세계적 인지도를 가지고 있지만, 값싸고 품격 낮은 ‘정크푸드’란 인식 또한 널리 퍼져 있다. 중국인이 쥐, 뱀, 고양이, 도마뱀을 먹는다는 편견은 대중문화에서 반복적으로 등장하는 주제다. 저자 역시 중국요리 전문가로서 “먹어본 것 중 가장 혐오스러운 음식은 무엇이었나” 같은 질문을 자주 받았다고 한다.

저자는 이러한 편견에 반기를 든다. 칼질, 요리법, 풍미, 식감 등 세세한 부분까지 정성을 들이는 중국요리의 절묘함은 어디에 내놓아도 손색이 없다고 자부한다. 무엇보다 중국은 지리적·미식적 환경이 다양하며, 협소한 시선으로는 그 깊이를 알기 어렵다고 강조한다.

특히 서양과 동양의 식문화 차이를 설명하는 부분이 흥미롭다. 대표적인 사례가 ‘콩’이다. 서양에서는 역사적으로 콩 발효 문화가 발달하지 않았다. 우유를 발효시켜 치즈를 만드는 문화는 발전했지만, 콩을 발효해 풍미를 더하는 방법은 연구되지 않았다. 17세기까지는 대두 자체를 잘 알지 못했다.

반면 중국에서는 대두를 갈아 두유를 만들고, 이를 응고시켜 두부(더우푸)를 만드는 문화가 발달했다. 두부는 단백질의 훌륭한 공급원이자 채식 위주의 식단을 맛있게 만드는 핵심 재료였다. 두유에 황금빛 유탸오(중국식 꽈배기)를 찍어 먹는 중국식 아침 식사는 콘플레이크에 우유를 넣어 먹는 영국식 아침 식사에 상응한다.

지금도 중국에는 유럽의 치즈 노점상처럼 두부 노점상이 있으며, 다양한 두부 제품을 판매한다. 일반 흰 두부뿐 아니라 하룻밤 동안 얼린 ‘둥더우푸’, 갓 내린 눈처럼 하얀 곰팡이로 덮인 ‘마오더우푸’, 얇은 두부를 돌돌 말아 부패 직전까지 숙성시켜 블루치즈 스틸턴처럼 강렬하고 거친 맛을 내는 ‘저장 두부’, 50m 밖에서도 냄새를 맡을 수 있는 ‘처우더우푸(취두부)’ 등 다양하다.

저자는 두부에 익숙하지 않은 서양인들에게는 마포더우푸(마파두부)를 권한다. 두부를 ‘채식주의자가 고기 대신 어쩔 수 없이 먹는 따분한 음식’ 정도로 여긴 사람일지라도 마파두부를 맛보면 생각이 달라질 거란다. 마파두부의 유래에 대한 설명도 빼먹지 않는다. 마파두부는 19세기 후반 ‘마맛자국이 있는 천 부인’, 줄여서 ‘천마파’라는 애칭을 가진 여성에게서 유래했다. 그는 청두 북쪽 완푸차오 근처에서 식당을 운영하면서 루비처럼 붉은 고추기름과 얼얼한 조피(제피)를 듬뿍 넣어 푸짐한 두부찜을 만들었다.

이 밖에도 중앙아시아로부터 맷돌을 들여와 국수와 면 요리를 탄생시킨 한나라, 몽골의 침략으로 수도를 남방으로 이전하며 남북 문화를 융합한 송나라 등의 이야기를 담았다. 서로 다른 문화가 접촉할 때 어떤 뜻밖의 멋진 결과를 만들어 내는지 보여주는 문화인류학서다.

#중국요리#중식#편견#식문화#미식인류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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