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유선 “딸이 연기하겠다면? 다른 꿈 권하고 싶어요”

  • 스포츠동아
  • 입력 2019년 5월 17일 13시 03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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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일 개봉하는 영화 '어린 의뢰인'의 주인공 유선. 아동학대 방지 홍보대사로도 활동한 경험이 있는 그는 영화에서 어린 남매를 학대하는 상황을 그리는 과정이 "힘겨웠다"고 돌이켰다. 사진제공|이스트드림시노펙스
22일 개봉하는 영화 '어린 의뢰인'의 주인공 유선. 아동학대 방지 홍보대사로도 활동한 경험이 있는 그는 영화에서 어린 남매를 학대하는 상황을 그리는 과정이 "힘겨웠다"고 돌이켰다. 사진제공|이스트드림시노펙스
“영화에선 쉽지 않은 도전을 해왔지만 이번엔 특히 ‘자아’와 많이 부딪혔어요. 실제로 아이를 키우는 엄마이다 보니 감정적으로 충돌하는 부분이 많았죠. 제 모습에 관객이 분노한다면 그걸로 성공이에요.”

배우 유선(43)이 ‘낯선’ 모습으로 돌아왔다. 22일 개봉하는 영화 ‘어린 의뢰인’(감독 장규성·제작 이스트드림시노펙스)을 통해서이다. 어린 의붓딸과 아들에 폭력을 일삼고, 그도 모자라 학대를 견디다 못한 아들이 죽게 되자 딸에게 거짓 자백을 강요하는 ‘극악한’ 인물이 유선을 통해 완성됐다.

마침 같은 시기 유선은 KBS 2TV 드라마 ‘세상에서 제일 예쁜 내 딸’을 통해 주말 저녁마다 시청자와 만나고도 있다. 딸이자 며느리, 누군가의 엄마이고 아내로도 살아가는 현실감 넘치는 인물을 친근하게 그려낸 덕분에 시청자의 호응도 상당하다.

영화와 드라마에서 보이는 모습이 극단적으로 갈린다. 왕성한 연기활동을 벌이는 배우여야 맞이할 수 있는 상황이 유선 앞에 놓였다.

● 아동 학대 가해자 연기 “이렇게 힘들 줄”

유선은 ‘어린 의뢰인’의 시나리오를 읽고 “꼭 필요한 영화가 나왔다는 반가움”부터 들었다고 했다. “아이들을 대하는 어른들의 무심함, 복지 제도의 한계, 법의 함정까지 다룬 이야기”라는 마음이 앞선 탓에 미처 자신이 어떤 역할을 맡아야 하는지 계산하지 못한 채 의욕적으로 나섰다. “촬영하기 전까지 이렇게 힘들 줄은 몰랐다”는 말을 몇 번이나 꺼냈다.

‘어린 의뢰인’은 최근 심각한 사회 문제가 되고 있는 아동학대를 전면에 다룬다. 10살 소녀가 7살 동생을 죽였다는 충격적인 자백 이후, 복지센터에서 이들 남매와 인연을 맺은 젊은 변호사 정엽(이동휘)이 의문을 품고 사건에 뛰어든다. 유선은 재혼으로 두 남매의 새 엄마가 되는 지숙 역이다. 밥을 흘린다고, 잠을 자지 않는다고, 아이들을 ‘고문’에 가깝게 학대하면서도 그걸 ‘모성’이라고 외치는 인물이다.

놀랍게도 영화는 실화를 바탕으로 했다. 2013년 일어나 국민적은 공분을 산 ‘칠곡 계모 아동학대 사건’이 극의 모티프다.

유선은 지숙을 연기하면서 “이유를 찾을 수 없었다”고 했다.

“감독님도 지숙은 아무런 이유를 주고 싶지 않다고 했죠. 관객을 광분하게 만드는, 악의 끝 같은 인물로 그리고 싶다고요. 그래도 저는 연기해야 하는 입장이니 어느 정도의 분석은 필요했어요. 분노조절장애가 있고 사기죄로 구속된 경험, 법대 출신이라고 거짓말 하는 설정이 시나리오에 있기도 했고요. 누군가의 보호를 받지 못한 채 자라난, 괴물 같은 사람인 것 같아요.”

사실 유선은 아동학대 문제에 관해서만큼은 누구보다 할 말이 많다. 영화에서는 학대 가해자를 연기했지만 실제 그는 2017년 보건복지부 아동학대 예방 홍보대사를 맡아 활동할 정도로 관련 문제에 관심을 가져왔다.

홍보대사 활동 목적은 뚜렷했다. “학대 피해 신고 비율을 높이는 것”이다. 이를 위해 유선은 신고 필요성을 담은 영상을 촬영해 교육기관이나 경찰서 등에 제공하기도 했다. 이런 경험으로 인해 이번 영화는 그에겐 더욱 남다를 수밖에 없다.

“아동학대가 비현실적으로 느껴질 수도 있어요. 불행하게도 현실에서 비일비재한 일이죠. 아동학대 가해자의 80% 정도가 친부모라는 사실은 더더욱 가슴이 아파요. 우리 영화에서도 담임선생님이 아이가 학대 당해온 걸 알고 있지만 모른 척 한 상황이 나오잖아요.”

유선은 “촬영장으로 향하는 발걸음이 어느 때보다 무거웠다고”도 말했다. 누구한테 하소연 할 수도 없는, 혼자 풀어야할 숙제였다. 특히 영화 속 어린 두 자녀와 극단적인 상황으로 치닫는 장면을 촬영할 때면 “빨리 끝나면 좋겠다”는 주문을 외울 만큼 힘겨운 시간이었다.

그 과정에서 유선은 아동학대 가해자에 대한 처벌이 미미하다는 생각도 갖게 됐다고 털어놨다. 실제로 영화 모티프가 된 칠곡 아동학대 사건의 경우 가해자가 14년형을 선고받은 점을 짚으면서 “외국의 사례처럼 더 엄격한 기준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 주말드라마에선 또 다른 ‘세계’…“아이 키우는 마음 그대로”


영화에서 한 발 물러나 드라마로 온다면 그는 전혀 다른 삶을 살아가고 있다. 시청률 30%를 웃도는 KBS 2TV ‘세상에서 제일 예쁜 내 딸’은 주말극 특유의 폭발력을 발휘하면서 중, 장년 세대의 뜨거운 관심을 얻고 있다. 인기의 중심에 유선이 있다.

드라마에서 그는 세 자매의 맏딸이자, 홀로 딸들을 키운 친정엄마에게 자신의 딸 양육까지 맡긴 강미선을 연기한다. ‘워킹맘’이자 시부모님과 가까이 살면서 이런저런 스트레스에 시달리는 상황도 그리고 있다.

“‘내 이야기’라고 공감해주는 의견도 있고 ‘요즘도 이런 며느리가 있느냐’는 반응도 접해요. 미선이랑 비슷하게 사는 며느리들이 정말 많이 있더라고요. 며칠 전에 온라인 댓글을 봤는데 ‘누가 요즘 이러고 사느냐’고 쓴 글에, 다른 누리꾼이 ‘그렇게 살고 있는 1인입니다’라고 답을 달았더라고요. 하하!”

2011년 결혼해 올해 여섯 살이 된 딸을 둔 유선은 드라마에서처럼 실제 친정엄마의 도움으로 아이를 키웠다고 했다. 극 중 엄마인 연기자 김해숙과 티격태격, 옥신각신하면서도 애정을 나누는 친정엄마와 딸의 관계가 실제 자신과 다르지 않다는 설명이다.

“‘바람이 찬데 왜 아이를 얇게 입히느냐’부터 사소한 육아 문제로 엄마와 많이 부딪혔어요.(웃음) 김해숙 선생님께서 드라마 속 저의 모습을 보면서 아이 키우던 때가 떠오른다고 하시는데 저도 그래요. 김해숙 선생님을 보면서 저희 엄마가 떠오르거든요.”

유선은 ‘일하는 엄마’이다보니 요즘처럼 영화 개봉과 드라마 촬영에 겹칠 때면 아이와 보내는 시간이 적을 수밖에 없다. 아무리 바쁜 일정을 소화하더라도 아이와 반드시 하는 일은 있다.

딸과 서로 가슴과 가슴을 맞대고 몇 초간 꼭 껴안는 포옹이다.

“저도 처음 부모가 된 거라 처음엔 육아를 책으로 배울 수밖에 없잖아요.(웃음) 여러 책에서 아이가 태어나고 몇 년간은 무조건 사랑으로 키워야 한다고 써 있었어요. 심장과 심장을 맞댄 포옹이 좋다는 걸 보고 충실히 따르고 있죠.”

유선의 딸은 엄마의 드라마를 챙겨보는 ‘열혈 팬’이다. 엄마가 나오는 장면에 너무 집중한 나머지 현실과 드라마를 구분하지 못할 때도 있다고. 특히 요즘 ‘세상에서 제일 예쁜 내 딸’에서 유선이 극 중 어린 딸 ‘다빈이’를 챙기는 모습을 보고, 실제 유선의 딸은 질투심을 표현하고 있다고 한다.

“제가 드라마에서 ‘다빈아~’라고 부르고, 어른들도 저를 ‘다빈 엄마’라고 칭하잖아요. 그걸 보던 딸아이가 어느 날 ‘엄마 나도 배우 할래’ 그러더라고요. 하하! 제가 대본 연습할 때 옆에 와서 다빈이의 대사를 맞춰주기도 하죠.”

훗날 진짜 배우가 되겠다고 나선다면 유선은 그런 딸을 지지해 줄 수 있을까.

“다른 꿈을 권장하고 싶죠. 너무 관문이 좁으니까요. 배우들이 자녀가 연기하는 걸 말리는 이유는 대부분 비슷하지 않을까요.”

이해리 기자 gofl1024@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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