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진 PD “장애 18년, 갈증의 세월이었다”

  • 스포츠동아
  • 입력 2018년 10월 16일 06시 57분


연출자로서 마지막 작품을 내놓게 된 KBS 드라마국 김영진 PD. 2000년 사고 이후 휠체어에 의지하면서도 드라마 연출에 대한 의지를 잃지 않았다. 사진제공|KBS
연출자로서 마지막 작품을 내놓게 된 KBS 드라마국 김영진 PD. 2000년 사고 이후 휠체어에 의지하면서도 드라마 연출에 대한 의지를 잃지 않았다. 사진제공|KBS
■ 퇴직 전 마지막 작품 마친 1급 장애 김영진 KBS PD의 끝나지 않은 꿈과 도전

98년 50% 시청률 ‘야망의 전설’ 연출
가족과 휴가 보내다 사고 하반신 마비

11월2일 밤 방송 ‘엄마의 세 번째 결혼’
2020년 정년 이전 마지막 작품이지만
“다시 대본 공부”…확고한 현역 의지


2000년 가을의 어느 날이었다. 서울 여의도 KBS 별관 드라마국에서 지금은 드라마 ‘그 겨울, 바람이 분다’, ‘아이리스’, ‘라이브’ 등으로 명성을 얻은 김규태 PD가 캠코더를 들이댔다. KBS 드라마국 소속의 아직 조연출이었던 그는 선배 PD의 쾌유를 빌어 달라고 부탁해왔다. 선배 PD는 그해 7월 미국 시카고에서 불의의 교통사고를 당한 뒤 아직 의식을 되찾지 못하고 있었다. 김 PD는 선배에게 영상을 보내 의식을 다시 찾는 데 도움을 주고 싶다고 말했다.

김규태 PD의 선배는 1998년 KBS 2TV 주말극 ‘야망의 전설’의 연출자 김영진 PD(58)다. 최수종, 채시라, 유동근 등이 주연한 드라마는 50%대 시청률을 기록하며 아직도 회자되고 있다. 이듬해 역시 주말극 ‘사랑하세요?’로 또다시 시청자의 사랑을 받는 김 PD는 이 드라마를 마치고 당시 미국에 머물던 가족을 만나 모처럼의 휴가를 즐기다 사고를 당했다.

사고로 심각한 척추 손상을 입은 김 PD는 이후 무려 넉 달 동안 의식불명 상태에 놓였다. 가까스로 깨어나 그해 12월 귀국했다. 사고 이후 그의 쾌유를 빌며 최수종, 이승연, 염정아, 추상미, 류시원, 김민종 등 연기자들이 CF 출연료를 전액 치료비에 보태라며 내놓기도 했다. 드라마 연출자로서 능력은 물론 평소 배려와 따뜻한 심성으로 선후배 PD들은 물론 연기자들로부터도 받은 보답이었다.

하지만 그는 결국 하반신을 자유롭게 쓸 수 없는 아픔을 겪어야 했다. 사고 이후 18년 동안 여전히 일주일에 한 차례 병원을 오가며 재활치료를 받고 있기도 하다.

드라마 촬영 현장에서의 김영진 PD. 사진제공|김영진 PD
드라마 촬영 현장에서의 김영진 PD. 사진제공|김영진 PD

1987년 KBS에 입사해 올해로 재직 31년째를 맞는 그가 최근 스포츠동아에 드라마 연출 은퇴작을 만들게 됐다는 소식을 알려왔다. 2020년 6월 정년퇴직을 앞두고 내년 7월 안식년을 갖기 전 마지막 연출작을 선보이게 됐다. 11월2일 밤 10시 방송하는 KBS 2TV ‘드라마 스페셜 - 엄마의 세 번째 결혼’이다. 2015년 ‘드라마 스페셜 - 유리 반창고’ 이후 5년 만의 연출작이다. 드라마는 딸을 위해 어쩔 수 없는 선택에 나선 엄마의 이야기를 통해 화해의 메시지를 전한다. 이일화, 이열음, 한인수 등이 주연했다.

독실한 기독교 신자이기도 한 김 PD는 기도문 형식의 편지에서 9월9일 드라마 촬영 이전 기획 및 캐스팅 단계부터 10월1일 촬영을 마치기까지 과정을 전했다. 휠체어에 의지해 전남 담양으로 촬영지 사전답사를 가는 승합차에 오르며 장애인으로서 겪어야 하는 어려움과 이때 받은 스태프의 따스한 도움, 1급 지체장애인이지만 영상 제작에 대한 자극을 주었던 메타세콰이어길에 관한 단상 등은 물론 편지는 드라마 제작일지라 할 만하다.

그는 편지에서 “단막극을 하다보면 참 구차하다는 생각이 들곤 했다. 몸이 힘들어도 연속극쯤은 충분히 감당할 수 있는데, 나도 잘나가는 피디였는데…”라며 잠시 회한을 감추지 못했다. 하지만 “연출에 대한 갈증이 언제나 힘겹게 같이했다”면서 “장애 18년은 멈춘 드라마 연출에 대한 갈증의 세월이었다”며 자신의 일에 대한 애정을 드러냈다.

이어 “드라마를 하고 싶어 3수까지 해 입사한 KBS. 이런저런 과정을 거쳐 20년이 넘는 경험을 하였으나 참 미숙하다. 디테일이 부족하다”는 그는 “지금까지 드라마를 한 것은 수준 낮은 요구를 잘 받아들여 촬영해준 촬영감독과, 연결이 안 되는 영상을 편집자가 지혜를 발휘해 잘 붙여준 덕”이라며 “기꺼이 노력을 베풀어준 스태프”에게 공을 돌리며 겸손해 했다.

김영진 PD는 현업 연출자로서 마지막 작품 ‘엄마의 세 번째 결혼’의 모든 작업을 마쳤다. 하지만 그는 여전히 현역으로서 일할 것임을 다짐하기도 했다. 김 PD는 “기본으로 다시 돌아가겠다”면서 “연출자의 제1 필요 능력은 대본 장악력이다. 대본 공부부터 다시 시작하겠다”고 밝혔다. “이번 생에서는 틀렸다고 포기하지 않겠다”는 그는 “하는 데까지 해보고 그래도 안 되면 천국에 가서라도 제대로 된 연출을 하겠다”고 말했다.

윤여수 전문기자 tadada@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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