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수 적은 후배는 촬영장 한 켠에 묵묵히 앉아있을 때가 많았다. 경험 많은 선배는 후배의 마음을 이해했다. 감정의 기복이 심한 역할을 온전히 홀로 소화해야 하는 후배의 책임이 어느 정도인지 짐작할 수 있었다. 그런 선배를 둔 후배는 든든했다. 서로가 서로를 배려하고 속내까지 위로하는 현장. 20일 개봉한 영화 ‘찌라시:위험한 소문’(찌라시·감독 김광식)의 촬영장이 그랬다. “긍정의 에너지가 풍성했다”고 돌이킨 선배 정진영(50)과 후배 김강우(36)를 18일 서울 삼청동의 한 카페에서 만났다. 두 배우 모두 웃음도, 말수도 늘었다.
■ 영화 ‘찌라시’ 주연 정진영
쉼 없는 강행군…배우로서 욕심 때문 연기를 쉽게 여기지 않으려는 의도다
정진영은 얼마 전 유시민의 책 ‘어떻게 살 것인가’를 읽었다. 그 잔향이 여전히 남아있다.
“읽다보니 문득 어떻게 살 것인가가 아니라 결국 어떻게 죽을 것인가를 말하는 책이란 생각이 들었다”고 그는 말했다. 가슴에 다가온 책의 영향일까. “좀 웃기게 들릴 수도 있다”는 전제와 함께 그는 “요즘은 삶 그리고 생사에 대한 문제에 관심이 간다”고 했다. 그런 정진영의 관심을 영화로 옮기면 마음은 달라진다. 흥이 나는 듯 보였다. “어쨌거나 촬영장에 있을 때 가장 즐겁다. 잡념마저도 사라진다”고 했다. 김강우와 마찬가지로 그 역시 코미디와 액션, 풍자를 섞은 ‘찌라시’에 참여하며 상당한 에너지를 받은 듯했다.
“우리끼리 우스개 소리로 이 영화를 ‘세운상가 블록버스터’라고 불렀다. 영화를 찍은 곳도 실제로 서울 명동의 뒷골목 상가 거리였다. 그 배경처럼 어수룩한 사람들이 스스로 최첨단이라고 주장하면서 막강한 적을 이겨낸다. 설정 자체가 좀 웃기지 않나. 하하!”
그동안 ‘찌라시’는 사회와 현실 고발의 메시지를 담은 영화가 아니냐는 추측을 받아왔다. 하지만 정작 영화가 공개된 뒤 관객의 반응은 달라졌다. ‘유쾌하다’는 의견이 대부분이다.
정진영은 “격조 있는 오락영화”라고 ‘찌라시’를 소개했다.
“촬영 때 (김)강우부터 생글생글 웃길래 이유를 물으니 기분이 좋다고 하더라. 그런 기운이 (관객에게도)전해지지 않을까.”
영화에서 그는 증권가 사설정보지를 직접 만들어 배달하는 박사장 역을 연기했다. 밥벌이 수단으로 온갖 소문을 팔지만, 그 역시 한때는 의협심 강했던 기자였다. 바닥까지 내려온 우곤(김강우)을 도와 사건의 진실을 파헤치는 조력자이기도 하다.
‘찌라시’에 관한 한 해박한 지식을 풀어내는 극중 박사장의 모습과 달리 정작 정진영은 영화를 찍기 전까지 정보지에 대한 지식이 전무했다. “잘 모르기도 했거니와 보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다. 촬영 도중 실제 정보지를 딱 한 번 받아 읽었지만 “별로 와 닿는 내용은 없었다”고 했다.
정진영은 쉬지 않고 연기하는 배우다. 비중보다 이야기와 작품의 의미가 먼저다. 이달 초 개봉한 ‘또 하나의 약속’이나 지난해 흥행한 ‘7번방의 선물’에 비중이 적은 조연으로 참여한 것도 그런 이유에서다.
드라마 출연에도 박차를 가한다. ‘브레인’ ‘사랑비’ 등 매년 한 편씩 소화하고 있는 그는 4월부터 방송하는 SBS ‘엔젤아이즈’로 다시 안방극장을 찾는다. 올해 연말께는 블록버스터 ‘국제시장’으로 다시 관객과 만난다.
“솔직히 얘기하면 배우로서 욕심은 더 생긴다. 그걸 좋은 의도이자 뜻으로 생각하려고 한다. 욕심을 다 채우려는 게 아니니까. 매 순간, 연기를 쉽게 하고 넘기고 싶지 않은 거다. 더 어렵게 하려는 거다.”
정진영은 매니저 없이 일한다. 시간에 쫓기며 드라마에 출연할 때만 운전기사를 잠시 고용한다. “꼭 똑같이 해야 한다는 기준은 필요 없지 않느냐”며 “매니저를 두면 남 탓을 하기 쉽다”고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