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병헌, 첫 사극서 길을 잃다

  • 동아일보
  • 입력 2012년 9월 4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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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일 개봉되는 ‘광해 : 왕이 된 남자’ 첫 사극 주인공 데뷔
광기의 왕 - 떠도는 만담꾼- 곤룡포 입은 가짜 임금… 1인3역 캐릭터 겉돌아


▲동영상=한효주 고백 “이병헌과 합방신 찍을 때…”
광해군이 자신과 똑같이 생긴 만담꾼 하선과 처음 마주하고 있다. 이병헌의 1인 2역 사극 연기는 이 장면을 만들어낸 세밀한 컴퓨터그래픽만큼 정교하지 못하다. CJ E&M 제공
광해군이 자신과 똑같이 생긴 만담꾼 하선과 처음 마주하고 있다. 이병헌의 1인 2역 사극 연기는 이 장면을 만들어낸 세밀한 컴퓨터그래픽만큼 정교하지 못하다. CJ E&M 제공
이병헌의 첫 사극 연기는 1인 2역 사이에서 길을 잃었다.

‘광해: 왕이 된 남자’(19일 개봉)에서 그는 곤룡포(왕의 집무복)와 누더기 옷을 번갈아 입는다. 조선의 폭군 광해군, 그리고 그와 똑같이 생긴 만담꾼 하선의 옷이다. 광해군 8년, 임금은 자신의 목숨을 노리는 신하들에 대한 분노와 두려움에 점점 난폭해진다. 도승지 허균(류승룡)은 임금을 대신해 위험을 떠안을 대역으로 기방에서 재담으로 연명하는 하선을 끌어들인다. 왕과 외모도 말투도 똑같은 하선은 임금의 내밀한 곳까지 알고 있는 중전(한효주)과 마주치지 않기 위해 애쓴다.

● 곤룡포는 잘 어울리지만…

이병헌은 영화 ‘악마를 보았다’ ‘달콤한 인생’, 드라마 ‘올인’ ‘아이리스’ 등 40여 편의 필모그래피를 새긴 톱스타. 하지만 사극 연기는 그가 입은 곤룡포처럼 무거워 보였다.

가장 큰 이유는 복잡한 캐릭터. 광기로 눈먼 왕과 15세 기녀의 아픔에도 눈물 흘리는 소심한 하선 사이를 오가야 한다. 여기에 하선은 곤룡포를 입는 순간 또 다른 인물이 된다. 결국 이병헌은 한 이야기 안에서 세 인물을 연기해야 하는 어려움과 싸워야 한다. 드라마와 달리 극의 흐름대로 촬영하지 않는 영화에서 삼색 캐릭터의 감정을 이리저리 오가기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다.

특히 그의 연기는 하선이란 옷을 입었을 때 남의 옷을 입은 것처럼 어색했다. 임금을 조롱하는 광대 하선의 모습은 ‘배우 이병헌’과 물과 기름처럼 겉돈다. 그동안 주로 카리스마 있는 연기를 해온 그는 이 작품에서 어깨에 ‘힘’을 빼진 못했다.

3일 시사회 직후 간담회에서 그도 이런 부분을 인정했다. 그는 “광해와 하선을 어떤 수위로 표현해야 할지 (추창민) 감독에게 끊임없이 물었다”고 말했다.

류승룡 한효주 등 바늘 하나 들어갈 구멍 없이 탄탄한 연기를 한 다른 배우들과 비교해도 그렇다. 류승룡은 전작 ‘내 아내의 모든 것’에서의 코믹 캐릭터를 잊게 할 매력적인 정극 연기를 선보인다. 비운의 왕비로 핏기 가신 얼굴을 한 한효주도 다음 작품이 궁금해지게 한다. 류승용은 “이병헌은 혼자만 연기를 잘하는 것이 아니라 상대를 빛나게 하는 배우다”라고 했다. 하지만 이번에는 상대만 빛나게 한 것으로 보였다.

TV CF에서조차 자동차를 꼭 사야 할 것 같은 신뢰감을 안기던 그의 목소리도 장점을 잃었다. 그는 “처음 해보는 사극 말투가 재밌었다”고 했지만 대사 전달에는 장애가 됐다.

● 이야기도 코믹과 정극 1인 2역


코미디와 정극을 오가는 추 감독의 연출은 가끔 나락으로 떨어질 위기를 맞지만 무리 없는 줄타기에 성공한다. 추 감독은 ‘마파도’ ‘사랑을 놓치다’ ‘그대를 사랑합니다’ 등을 연출했다. 임금이 되자 ‘뒤’를 닦아주는 궁녀들에게 놀라고, 내시에게 “왜 ‘그것’이 없냐”고 묻는 하선을 그린 코믹한 초반부와 왕이 되기로 결심한 진지한 하선을 담은 후반부의 연결은 매끄럽다. 추 감독은 “코믹 연기를 유치하지 않게 보여주려고 노력했다”고 했다.

하지만 이야기는 ‘승화’되지 못하고 대중의 취향을 고려해 ‘탈색’된 느낌이다. 이 영화의 애초 포인트는 왕이 되려는 광대의 욕망과 좌절, 그리고 절대 권력 앞에 인간 존엄을 강탈당한 한 인간의 비애를 절절히 그려내는 것이었다. 그러나 이 메시지는 끝내 종착역에 닿지 못했다.

시종일관 진지한 연기로 변신을 선보였던 김인권(호위무사)은 광해군이 잘못을 용서하자 꺼이꺼이 우는 장면에서 예전의 코믹 연기로 갑작스럽게 후퇴한다. 비단 옷의 올이 나간 듯한 느낌이다. 15세 이상.

민병선 기자 bluedot@donga.com
#영회#프리뷰#광해#이병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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