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기자의 인증샷] 정선아② “동대문 3-1 맞짱의 전설”

  • Array
  • 입력 2011년 6월 19일 16시 14분


코멘트

정선아는 2002년 뮤지컬 ‘렌트’의 ‘미미’ 역으로 데뷔했다. 1984년생이니 낭랑 18세 때의 일이다.
나이로 미루어 짐작할 수 있듯, 당시 그녀는 고등학교 3학년에 재학 중인 ‘고딩’이었다. ‘렌트’란 작품을 보신 분은 아시겠지만, ‘미미’는 약물 중독에 걸린 나이트댄서이다. 심지어 에이즈까지 앓고 있다. 고3이 맡기엔 전혀 어울리지 않는 역이지만, 정선아는 당당히 오디션을 통해 배역을 따냈다.

당시 정선아 본인도 이런 주위의 시선이 느껴졌는지 가급적 교복을 입고 연습실에 나타나는 것을 피했다. 어지간하면 사복을 입었고, 교복을 입고 있더라도 얼른 분장실에 뛰어 들어가 옷을 갈아입고는 했다.

최근 개최된 더뮤지컬어워즈 시상식에서 신시컴퍼니(당시 ‘렌트’의 제작사였다)의 박명성 대표는 수상 소감 중 “교복을 입고 왔다 갔다 하던 정선아가 이렇게 훌륭한 배우로 자란 것을 보니 감개무량하다”는 얘기를 했다.

이 말을 들으니 언젠가 사석에서 이건명 배우가 들려준 에피소드가 떠오른다. 그는 당시 ‘렌트’의 남자 주인공이었다. 다음은 이건명이 들려준 이야기.

“연습 들어가기 전에 분장실에서 거울을 보고 있는데, 누군가 뒤쪽으로 후닥닥 지나가는 거야. 여학생 교복같더라고. 순간 ‘아, 선아구나’ 싶었지. 고등학생인 줄이야 다들 알고 있지만, 사실 별로 의식하지 않고 있었는데, 막상 교복을 보니까 실감이 나더라고. 그 생각이 딱 드니까, 선아랑 키스를 도저히 못 하겠는 거야. 뭔가 내가 되게 나쁜 놈 같기도 하고. 그래서 연출님한테 ‘저 오늘은 선아랑 키스 안 하겠습니다’했지. 연출님도 사정을 듣더니 ‘그래라’하시더군.”

이 얘기를 듣더니 정선아가 깔깔깔 웃는다.

“기억나죠. 예술의전당 연습실이었거든요. 빨간색 교복이었죠. 그런데 전 관심없었어요. 그게 뭐 키스고 뽀뽀인가요. 당시 전 너무 신나기만 했어요. 너무 너무 좋아하는 ‘렌트’의 ‘미미’가 나라는 생각뿐. 뭐 지금 생각해보면 창피하기도 하지만.”

이왕 얘기가 나온 거, 정선아 학창시절과 관련된 에피소드를 하나 더 들려드리기로 한다. 정선아 주변에는 3-1 맞짱설이 전설처럼 떠돈다. ‘렌트’ 시절 길거리에서 3-1로 싸워 이겼다는 소문이다. 과연 소문의 진위는.

“사실이에요. 비 오는 날 동대문이었죠. 그날따라 제가 연습에 좀 늦었어요. 막 가고 있는데, 왜 그런 거 있잖아요. 여자 애들이지만 서로 ‘뭘 봐’, ‘왜 째려봐’ 하는 거요. 세 명인데, 먼저 시비를 걸어오더라고요. 저도 뭐 한 성격해서.”

“지하철 앞에서 싸웠죠. 결국 비 오는 날 먼지 나게 나한테 맞았지. 한 명은 그나마 얌전해서 옆에서 말리는 쪽이었고, 결국 두 명인데. 남자들도 원래 한 명만 잡으면 다른 친구들이 못 덤비잖아요. 한 명만 저도 집중적으로(이 장면에서 정선아는 주먹을 휙휙 휘둘러 보였다) … 흐흐흐. 연습실에 도착해서도 분이 덜 풀려 ‘아이씨 … 그것들이 어쩌구 저쩌구’하면서 오빠들한테 얘기했죠. 그때 오빠들의 ‘으아~’하는 표정이 기억나요.”

최근 뮤지컬 배우 차지연이 ‘나는 가수다’에서 임재범의 피처링을 맡고, 그가 쓴 노래로 음원 발표를 하면서 크게 주목받았다. 차지연은 정선아와 2006년 ‘드림걸즈’를 함께 했던 사이이기도 하다.

- 정선아 배우에게도 가수 제의가 많이 들어올 텐데요. 차지연 배우를 보면서 ‘나도 한 번 해볼까’하는 마음은 안 생기는지.

“음반뿐이 아닙니다 흐흐. 드라마도 있고, 영화도 있어요. 최근에는 ‘아이다’에서 ‘암네리스’할 때 괜찮은 영화 한 편이 들어왔었죠. 남자 주인공들이 대단했어요. 그런데 그게 좀 뭐랄까, 야하고 육감적인 캐릭터였죠. 아마 했으면 인터넷 검색어에도 오르고 했을 거예요.”

“고민도 하고, 여기저기 자문도 구해보고 했는데 결국 안 했어요. 뮤지컬 순수혈통을 자부하고 있는 제가 뮤지컬에 피해를 주고 싶지는 않았거든요. ‘아이다’에서 고매한 공주 역을 하고 있는데, 동시에 야한 역을 할 수가 없겠더라고요. 아무래도 (공연 중인) ‘아이다’ 이미지에 피해가 가겠죠. 그건 아니라고 생각했어요.”

- ‘아이다’ 때는 그렇다 치고 지금은 ‘악덕 부인’이니 할 수도 있지 않을까요.

“하하! 뒤로 스케줄이 많아서요(실제로 정선아는 ‘모차르트’ 이후 ‘아가씨와 건달들’, ‘에비타’ 등 연말까지 일정이 줄줄이 잡혀있다). 그리고 별로 안 땡겨요. 하고 싶은 게 뮤지컬에서도 많은데, 고갈되지도 않았는데요 뭐.”

말은 이렇게 하면서도 “솔직히 요즘 좀 흔들리고 있다”라고 털어놓았다. 뮤지컬 배우로서 자존감 하나 갖고 하는데, 주변(특히 제작사)에서 그렇게 보아주지 않는 데에 대한 섭섭함이다. 특히 방송 잠깐 갔다 왔다고 대우가 달라지는 걸 보면 마음이 상한다. “그런 점에서 최정원 선배는 정말 멋있다”라고 말했다.

“(방송에서 뮤지컬로 온 사람들 중) 저 만큼 뮤지컬을 사랑하는 사람이 있을까요? 방송에서 온 사람들에게 뮤지컬이 돈벌이가 될 수는 있어요. 하지만 그들이 과연 뮤지컬을 얼마나 사랑할까요. 그런 점에서 (김)준수는 다르지만요. 전 어려서부터 뮤지컬 배우가 꿈이었고, 현실로 하고 있고, 나의 인생으로 만들고 싶은 사람인데.”

“그들이 뮤지컬을 거쳐 다른 무대로 가는 것도 나쁘지 않아요. 하지만 뮤지컬을 하는 동안만큼은 사랑하면서 했으면 좋겠어요. 오죽하면 친한 연출가 선생님도 저한테 ‘너도 방송 갔다 와. 너 못하는 거 아니잖아’하시더라고요.”

“음반은 내고 싶었어요. 하지만 지금은 음악성에 대한 평가보다는 아이돌 … 걸그룹같은 친구들이 되는 시대잖아요. (기자: 아직 20대 아닙니까) 에이, 왜 그러세요. 그래도 OST나 CCM 앨범은 꼭 내고 싶은 마음이 커요.”

최근 오디뮤지컬컴퍼니 신춘수 대표와 인터뷰를 하면서 ‘앞으로 가장 전도가 유망한 젊은 배우를 꼽아 달라’고 했더니 ‘여자 중에서는 단연 정선아!’라는 답이 돌아왔다. 신대표는 정선아의 대표작 중 하나인 ‘드림걸즈’를 제작한 인물이다.

그런데 신대표는 ‘한 가지 조건이’있다고 했다. “뭔가 한 방이 ‘뻥’ 터져야 한다”라는 얘기였다.

“다들 그러세요. 이지나 연출님도 그러시죠. 그런데 그 ‘한 방’이란 게 뭐 …. 전 그렇게 유명해지고 싶지도 않고, 현재 만족하면서 즐겁게 하고 있는데요. 아마 (차)지연 언니가 임재범씨 피처링한 것 때문에 더 그런 말씀들을 하시는 것 같기도 해요. ‘너란 아이를 세상에 좀 알려라’, 이런 거겠죠.”

“그런데 뮤지컬에서 어떻게 더 ‘뻥’을 해요. 난 할 만큼 했거든요. 외국 스태프들 왔을 때 그 많은 친구들과의 치열한 경쟁 속에서 인정받았는데. 전 그게 ‘뻥’이라고 생각하거든요.”

- 소속사없이 혼자 활동하는 제약도 있지 않을까요.

“편해요. 물론 누가 도와주면 더 편하겠죠. 직접 통화하고, 스케줄을 잡고, 의상 챙기고. 이런 일이 힘이 들기도 하죠. 하지만 회사가 있어서 받는 스트레스보다는 낫다고 생각해요.”

잘 알려져 있지는 않지만 정선아도 한 때 소속사가 있었다. 앨범을 내기 위해 아는 가수 겸 배우의 소개로 회사에 들어갔다. 회사의 음악 프로듀서도 쟁쟁한 인물이었다.
하지만 1년 정도 있다가 제 발로 나왔다. 음악을 하고 싶었는데, 소속사에서는 드라마 쪽을 밀려고 했다. “이건 아니다”하고 결론을 내린 뒤, 깨끗하게 정리하고 그만 두었다.

세상 걱정없이 사는 것처럼 보이지만 정선아에게도 힘든 날이 있다. 2010년이 특히 그랬다. 눈이 날카로운 사람이라면 지난해 정선아의 사진을 보면 평소와는 조금 다른 분위기를 풍긴다는 것을 발견할 수 있을지 모른다.

“사람이 살면서 누구나 ‘업 앤 다운’이 있지만 전 다운이 거의 없는 편이었어요. 그런데 작년엔 너무 힘들었죠. 사랑의 아픔도 있었고, 가슴앓이도 있었고, 외로움도 컸죠. 혼자 사는 것에 대해 아무렇지 않았는데, 왜 그런지 우울하고 힘들고. 누가 어떻게 한 것도 아닌데 ‘난 정말 불행해’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작년엔 집에서 거의 안 나왔죠. 아마 작품도 ‘모차르트’만 했을 거예요.”

다행히 힘든 시기는 지났다. 어려서부터 가진 신앙의 힘이 가장 컸다. 지금은 행복하고 감사한 마음뿐이다. 뭘 해도 감사하다.

슬슬 인터뷰를 마무리지을 때가 되었다. 정선아를 만나러 가기 전 트위터를 통해 팬들의 질문을 받았다. “보내주신 질문은 꼭 물어보겠다”라고 했다. 그 약속을 지킬 시간이다.

- 정선아 배우의 몸매를 부러워하는 여성팬이 많습니다. 평소 관리는 어떻게 하는지.

“엥? 저 통통한데. 그런데 줄였다 늘였다가 하는 게 쉬워요. 브리트니 스피어스가 그거 잘 하잖아요. 제가 체형이 외국체형이거든요. 스몰 … 키는 작은데, 엉덩이 크고 (가슴도) 크고. 공연을 할 때는 어느 정도 의상에 맞추려고 노력하는데, 공연 딱 끝나면 폭식에다 푹 퍼져서 순식간에 5키로가 쪄버리는 스타일이죠.”

“더뮤지컬어워즈 시상식 때도 드레스 안 맞을까봐 걱정했어요. 시상식 4일 전부터 하루에 새 모이만큼 먹었죠. 일주일에 5키로가 빠지더라고요. 전 마른 건 싫어해요. 우리나라 여자 연예인들 실제로 보면 너무 말랐잖아요. 무대에서 어느 정도 보기 좋을 정도면 충분하지 않을까. 운동은 요즘 줄넘기해요. 많이 빠져요.”

- 지금까지 공연한 남자 배우 중 가장 호흡이 잘 맞거나 편했던 배우는 누구일까요. 참고로 김준수 팬 분이 물어보셨습니다.

“하하하! 일단 제 기억력이 제로에요. 아시는 분은 다 아시죠. 공연이 앙코르 들어갈 경우 어지간한 배우들은 초연 때 한 걸 잘 기억하는데 전 못 해요. 엄마가 늘 ‘넌 그 기억력으로 어떻게 대본을 외우니’하시죠. 순간 집중력이 강한 편이에요.”

“처음에는 (이)건명 오빠. 상당히 잘 맞았어요. 사실 아무 것도 모를 때라 오빠가 힘들었을 거예요. 준수도 너무 잘 맞죠. 둘이 소리가 잘 안 맞을 거 같은데 의외로 잘 맞아요. 준수 센스가 뛰어나서.”

- 다이어트 식단을 추천해달라는 팬이 있었습니다.

“오트밀이요! 아까 하루에 새 모이만큼 먹었다고 했는데, 그게 오트밀이었어요. 하루 한 끼. 오트밀은 인터넷으로도 주문할 수 있어요. 컵에 1/3 정도 넣고 물이나 우유를 두 배가량 붓고 기다리면 잔뜩 불어나거든요. 죽 같기도 하고 국물은 숭늉같고. 맛있어요. 하지만 장기간은 비추예요. 운동해야 해요.”

- 술을 잘 드신다는 소문이 있습니다만.

“술, 담배는 안 해요. 저랑 안 맞아요. 그런데 최근 안 사실인데요. 제가 술을 못 마시는 게 아니더라고요. 마음 단단히 먹고 지인 집에서 꽤 마셔 봤는데요. 하나도 안 취하는 거 있죠. 알고 보니 전 술을 잘 마실 수 있는 사람이더라니까요.”

“사실 어려서 데뷔하다보니 술자리 회식에 갈 일이 별로 없었죠. 가도 안주만 집어먹게 되고. 그래서 살찌고. 무엇보다 술 마시면 다음날 목소리가 안 나올까봐 무서웠어요. 술은 목에 안 좋잖아요. 안 좋은 건 하고 싶지 않아요.”



이렇게 해서, 1시간 30분에 걸친 기나긴 인터뷰가 끝났다 … 라고 하니, 정선아 배우가 “벌써요? 재밌는데. 좀 더 하면 안돼요?”한다. 속으로 꽤 기뻤다.

정선아는 기자의 속마음을 아는 배우이다. 산전수전 겪고 사는 기자의 마음을 아는데, 어찌 관객의 마음을 꿰뚫어보지 못하겠는가.

서두에 정선아를 두고 ‘만남의 회수가 늘어갈수록 다음번 만남을 더욱 설레게 만드는 사람’이라고 했다.

그녀와의 다음 인터뷰가 벌써부터 기다려진다.

정선아는 기자를 팬으로 만들어버리는 무서운 사람이다.

스포츠동아 양형모 기자 (트위터 @ranbi361) ranbi@donga.com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