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플Q|20년음악캠프지기배철수] 신선 놀음 20년…“나는 세상 모르고 살았노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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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0년 2월 10일 07시 00분


□ 배철수-그의 음악캠프 20년

“철들면 재미없다.” 3월 19일이면 MBC FM ‘배철수의 음악 캠프’ 20주년을 맞는 DJ 배철수. 그동안 지내온 모든 시간이 행복했다는 그는 20년의 긴 시간 동안 똑같은 행복감을 청취자에게도 선사했다.
“철들면 재미없다.” 3월 19일이면 MBC FM ‘배철수의 음악 캠프’ 20주년을 맞는 DJ 배철수. 그동안 지내온 모든 시간이 행복했다는 그는 20년의 긴 시간 동안 똑같은 행복감을 청취자에게도 선사했다.
“오늘은 어머니가 안 계신 날. 식구들이 다 외출을 해서 반겨줄 사람이 없는 날입니다. 어떤 친구를 불러내 어디서 맛난 걸 먹을까 고심하다가 그냥 집으로 갑니다. 쌀을 씻어 밥을 안친 다음, 냉장고 대신 찬장을 뒤집니다. 반갑게도 햇김이 있습니다. (사이) 갓 지은 뜨끈한 밥에 살짝 구운 파래김을 얹어 양념장에 찍어먹는데 괜히 흐뭇해집니다. 동치미와 오징어젓, 파래김만으로도 흐뭇한 만찬이 될 수 있다는 건 분명, 행복한 일입니다.(사이)별 거 아닌 것 때문에 괜히 기분이 좋아진 적, 다들 있으실 겁니다.(중략) 사소한 것들이 우리를 행복하게 합니다.….”

8일 오후 6시 라디오에선 롤링스톤즈의 ‘새티스팩션’을 클래식으로 편곡한 시그널 음악이 어김없이 흐르고 배철수는 또박또박 오프닝 멘트를 했다. 그의 말대로 “별 거 아닌 것” 혹은 “사소한 것들”이 주는 “행복”을 떠올리며 잠시 “흐뭇해”졌다.

이런 오프닝은 MBC FM ‘배철수의 음악캠프’(이하 ‘음악캠프’)가 지닌 매력이다. 마이크 앞에서 수많은 청취자들을 만나온 배철수가 3월19일이면 ‘음악캠프’ 방송 20주년을 맞는다. 이제는 유일한 팝 음악 전문 프로그램 진행자로서 그는 1990년 문을 연 후 지금까지 “정말 모든 시간이 행복했다”며 웃었다.

- 정말 모든 시간이 행복했나요.

(날 의심하냐는 표정으로 또박또박)“처음 시작할 때부터 ‘할 말이 없으면 차라리 음악을 틀지’라는 생각을 해왔습니다. 거짓말하지 말자고 했어요. 난 빈 말은 하지 않아요. 하하!”

- 방송 20년을 맞는 소감은 어떤가요.

“신선놀음에 도끼 자루 썩는지 모르게 20년이 확 갔습니다. 가끔 너무 행복하게 방송했기 때문에, 이렇게 혼자 행복해도 되나 생각도 가끔 합니다. 초년 고생이 조금 심했기 때문에 그 대가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웃음)

- 초년 고생이라면….

“어 렵게 살았죠. 경제적으로도 그렇고. 어린 나이에 아침이 오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생각한 적도 있어요. 차라리 잘 때가 가장 행복했으니까. 우리 세대가 뭐...다 진짜 어려웠죠. 젊어 고생은 사서도 한다는데, 그게 방송하는 입장에서는 도움이 되는 것 같기도 해요. 고생했으니 얘기할 거리도 많고. 굴곡 없는 삶도 재미없잖아요.”

- 첫 방송 첫 곡이 뭔지 기억하나요.

“그 걸 모르겠어요. 청취자도 모르고, 기록이 남은 것도 아니고. 굳이 알 필요가 있나 싶어요. 하하! 20년쯤 되니까 집사람(‘음악캠프’ 첫 PD였던 박혜영 MBC 부국장)과 처음 방송할 때 이야기를 종종 하는데, 내 처라서 하는 얘기가 아니라, 방송은 첫 PD가 중요합니다. 첫 PD를 잘 만났어요.”

- 20년 동안 개편 때 ‘잘릴 수도 있다’는 걱정을 하진 않았나요.

“1980년에 6개월 동안 FM에서 DJ를 하다 속된 말로 잘렸죠. ‘음악캠프’를 할 때 1년은 채우자고 생각했어요. 당시 내가 일반적인 방송 스타일은 아니었죠. 대부분 미성이고 속삭이듯 방송하던 때니까. 거칠게 진행을 하니 적응하지 못한 분들도 계실 거예요. 위기가 왜 없었겠어요. 세월이 지나니 개성이 된 거지. 뭐.”(웃음)

- 콧수염과 청바지가 마치 상징처럼 된 것 같아요.

“바꾸기엔 너무 늦었죠. 20세기엔 머리를 뒤로 묶고 다니기도 했어요. 그때 작가 이외수 선생과 똑같다는 말도 들었죠. 하하!”

- 오프닝 멘트와 ‘철수는 오늘’도 ‘음악캠프’의 상징이죠.

“김 경옥 작가 덕분이죠. 오래 함께 하다보니 생각이 닮더라고요. 원고가 마음에 안 들어 방송하지 않은 건 한 세 번 정도?”

- 늘 또박또박 멘트를 하는데 특별히 익히셨나요.


“우리말은 숨 쉴 때 쉬고, 띄어쓰기된 부분은 조금씩 띄어 읽어야 해요. 지금도 평소 말할 때나 방송할 때나 똑같지 않나요. 평소 말할 때는 조금 흘리기도 하는데 녹음해서 들어보니 그건 아니더군요. 방송은 정확해야죠.”

- 음악 창작 활동에 대한 욕망은 없나요.

“만일 다시 시작한다면 80년대 내 것보다 더 좋은 음악을 해야 하는데, 그렇게 될 수 없어요. 최근 휘트니 휴스턴 콘서트를 보는데 눈물이 나더라고. 역경을 이기고 재기했는데, 카랑카랑했던 목소리와 외모가 예전 것이 아니더군요. 열심히 하려는 것은 같았는데…. 나도 방송을 하지 않았다면 음악을 하고 있을 텐데, 과연 전보다 잘 할 수 있을까요?”

- 좋은 방송, 재미있는 방송이란 뭘까요.

“내 가 아무리 재미있어도 듣는 분들이 ‘이 자식이 무슨, 이런 얘길 해?’라고 말할 수 있죠. 라디오는 마음에 안 들면 진짜 안 들어요. TV는 그렇지 않죠. 무지하게 씹으면서도 끝내 봅니다. ‘음악캠프’는 우리끼리 하는 얘기와 같습니다. ‘음악캠프 가족’이라고도 하죠. 같은 취향을 가진 사람들이 모이는 공간, 일종의 커뮤니티처럼. 그래서 청취자들과 내가 닮아가나봐요.”

인터뷰를 마치고 나서는 길에 한 게시물이 눈에 들어왔다. 밸런타인 데이를 앞두고 MBC 라디오국이 여성 DJ들에게 ‘남성 DJ 중 초콜릿을 준다면 누구에게?’라며 ‘재미삼아 물었다’는 내용이었다. 1위가 배철수였다. 김미화는 “옷을 잘 입는 모습이 테리우스처럼 멋있다”며, 오지혜는 “공정무역(저개발국 생산자들의 물품을 공정한 가격을 지불하고 수입해 경제적 자립과 해당국 어려운 이들을 돕는 소비문화운동) 초콜릿을 이해해줄 것 같다”며, 차미연 아나운서는 “너무 말라 초콜릿으로 살 좀 찌우라”며 그를 꼽았다. 이들의 ‘추천사’ 속에 배철수가 고스란히 앉아 특유의 너털웃음을 웃고 있었다.

□ 배철수, 그는 누구?

○1953년 8월18일 태어남.
○1978년 항공대 재학 중 TBC 해변가요제 ‘세상 모르고 살았노라’ 인기상(그룹 활주로)
○1978년 MBC 대학가요제 ‘탈춤’ 은상(그룹 활주로)
○1979년 이봉환, 지덕엽, 이응수 등과 그룹 송골매 결성. 1집 발표
○1981년 지덕엽과 이응수가 탈퇴한 송골매에 구창모, 김정선, 오승동, 김상복이 합류
○1981년∼ ‘빗물’, ‘어쩌다 마주친 그대’, ‘모두 다 사랑하리’ 등 히트곡 다수
○1982 년∼1985년 MBC 10대 가수상 및 KBS 가요대상 록 그룹 부문 연속 수상
○1990년∼ 9집 발표한 뒤 송골매 해체. MBC ‘배철수의 음악캠프’ 20년간 진행

윤여수 기자 tadada@donga.com
이해리 기자 dlgofl1024@donga.com
사진|양회성 기자 yoha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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