류승범, 냉혹한 살인자가 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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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09년 12월 29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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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용서는 없다’ 내달 7일 개봉
감정기복 감춘 채 복수극 펼쳐

“착한 사람, 좋은 사람이 되고 싶어요.”

28일 서울 강남구 청담동에서 만난 배우 류승범(29)은 여느 배우와 달리 손수 차를 몰고 나타났다. 6개월 전부터 소속사도, 매니저도 없이 혼자 약속을 잡고 운전도 한단다. 직접 골라 입고 온 옷도 지인의 결혼식 때 즐겨 입는 검정 재킷. 그는 ‘혼자서 다 해내기’의 이유를 “자유롭고 싶어서라기보다 좋은 사람이 되고 싶어서”라고 말했다.

“친해지면 본의 아니게 상처 주잖아요. 상처 주게 될 사람을 한 명이라도 줄이고 싶었어요. 아무 도움 없이 내 힘으로 살아보고도 싶고…. 잘한 선택 같아요.”

착하고 싶다는 소망과 달리 내년 1월 7일 개봉하는 영화 ‘용서는 없다’에서 그는 환경운동가 출신 살인범 이성호 역을 맡았다. 어릴 적 겪은 사건을 복수하고자 끔찍한 살인을 저지르지만 눈에 힘을 주지도, 분노에 몸을 떨지도 않는다. 후줄근한 차림에 얼굴을 절반쯤 가린 긴 웨이브 머리는 보헤미안처럼 보인다. 그렇게 그는 위악도 위선도 없이, ‘착한 놈인지 나쁜 놈인지 도통 알 수 없는’ 살인자를 연기했다.

영화 ‘용서는 없다’에서 배우 류승범은 용서를 할 수 없어 복수를 하게 된 살인범 이성호 역을 맡았다. 그에게 용서를 못할 정도로 분노를 느낀 적이
있냐고 물었더니 “자고 나면 뒤끝 없는 스타일”이라며 “화가 머리끝까지 치밀어도 한참 운 뒤 기도하면 끝난다”고 했다. 염희진 기자
영화 ‘용서는 없다’에서 배우 류승범은 용서를 할 수 없어 복수를 하게 된 살인범 이성호 역을 맡았다. 그에게 용서를 못할 정도로 분노를 느낀 적이 있냐고 물었더니 “자고 나면 뒤끝 없는 스타일”이라며 “화가 머리끝까지 치밀어도 한참 운 뒤 기도하면 끝난다”고 했다. 염희진 기자
“배역을 위해 머리를 기른 건 아니에요. 안 감아도 티가 안 나니 편하더라고요.(웃음) 배역에 맞춰 살을 빼거나 외모에 변화를 주지는 않아요. 배우의 생김새는 고체 덩어리일 뿐이죠. 중요한 건 이 작품을 통해 류승범이라는 사람의 철학이 얼마나 바뀌느냐는 겁니다.”

그는 한 작품을 하면 상대 배우와 동거를 할 만큼 연기에 두 발을 다 담그는 스타일이다. 하지만 주어진 배역에만 빠지는 몰입형 배우는 지양한다. 그는 “퍼즐 맞추듯 배역에 나를 끼워 맞추는 꼭두각시 배우는 되기 싫다”고 했다. “이성호 역을 나보다 잘할 수 있는 배우는 세상에 널렸다. 살인자 역의 최고봉은 케빈 스페이시(‘세븐’ ‘유주얼서스펙트’ 등에 출연한 미국 배우) 아니냐”고도 했다.

“촬영 기간 내내 최고의 살인자를 연기하려 나를 바치는 건 ‘좀 아닌’ 것 같아요. 배우라는 직업이 내 삶을 위해서 하는 거 아닌가요? 내 시간 바쳐 남의 인생을 충실히 산 것만으로 받은 돈값은 한다고 생각해요. 대신 이 영화를 통해 만난 사람들과 순간들을 통해 인생을 풍요롭게 만들고 싶어요. 그건 다음 작품을 위해서도 좋은 일이죠.”

그렇다면 이 작품을 통해 그의 인생은 얼마만큼 달라졌을까. 그는 “외로움을 많이 타게 됐다”고 말했다. 하지만 몇 초도 지나지 않아 전매특허인 역삼각형 입술 모양을 지어 보이며 해맑게 웃었다. “요즘 영화 ‘방자전’을 촬영 중인데요. 제가 맡은 역할은 당최 정체를 알 수 없는 이몽룡이거든요. 야설(야한 소설)적인 농담이 자주 등장해서 그런지 요즘엔 ‘야설적인 게 과연 나쁜 것이기만 한 걸까’를 고민하고 있어요. 무지 심각하게.”

대리 인생을 통해 스스로의 인생을 쉼 없이 가꿔 나가는 삶. 그는 배우가 가진 특권을 기꺼이 누리고 있는 듯 보였다.

염희진 기자 salthj@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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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부 염희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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